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내면을 훔치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내면을 훔치다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7.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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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속에 자연·인간·문명 담아내는 작가 권치규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일산에 있는 권치규 작가의 자택은 정말 아름다웠다. 잘 가꿔진 정원, 그 속에 여기저기 펼쳐져있는 조각 작품들은 마치 예술 공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집 안에도 작품들이 많이 배치돼있어 화랑의 분위기마저 물씬 났다. 작업실이 살림집 바로 옆에 붙어있는 탓에 수시로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의 부인인 김경민 작가도 조각가다. 그의 모든 것은 조각과 함께 숨쉬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조각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과시하는 그와의 인터뷰는 때론 가볍고 때론 진지하게 진행됐다.

◈조각은 내 운명

고향이 경상북도 상주인 권치규 작가는 미술학원을 다닐 기회가 없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미술대회에서 많은 상을 수상할 만큼 타고난 손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당시 미술부로 유명한 함창고등학교에 다니던 형님으로부터 미술선생님을 소개받게 된다.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그 분의 미술수업을 듣게 됐고, 자연스레 함창고등학교로 입학하게 됐죠. 그 후부터는 조소과만 바라보고 열심히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어릴 때와 다르게 전국미술실기대회가 많았는데, 나가서 큰 상은 다 휩쓸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고등학교 졸업 후 영남대학교(경상북도 경산시 소재)에 입학을 하게 된 그는 스스로 더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재수를 결심, 노력 끝에 홍대에 입학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는 당시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던 신정수 조각가가 있었다.

“재수 기간 동안 신정수 조각가님 밑에 들어가 조수생활을 했어요. 이론 공부는 하나도 못했을지언정 실질적인 작품참여를 통해 실기를 많이 배웠죠. 그 분과 함께 한 공부가 분명히 플러스 요인이 됐어요. 그 분 작업실이 지하실이었는데, 불을 끄고 자면 아침이 오는 줄 모르고 계속 잘 정도로 깜깜했어요. 그 먼지 많던 곳에서 줄곳 생활 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일찍부터 좋은 은사님들을 만나 조각계에 입문하게 된 권 작가에게 조각이란 운명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

“중학교 때부터 좋은 선생님, 좋은 환경을 만났죠. 참 좋았어요. 시골에 그 정도 대가 분이 올 일이 없는데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어요. 이런게 바로 운명아닐까요?(웃음)”

◈실험적 정신으로 공공작품을 휩쓸다

권치규 작가는 공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8년 6월 충남 아산시청 앞에 세워진 조선 초 대표적인 청백리 고불(古佛) 맹사성 동상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당시 공모로 당선이 됐는데, 훌륭한 인물을 조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는 그는 고(故)추송웅(연극배우), 아펜젤러(배재대학교 설립자) 등 인물과 관련한 동상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외에도 여러 공공작품들을 만들었는데 특히, 17m 크기의 대전-당진고속도로 준공 기념 작품인 ‘동서남북’과 20m의 오정대로 준공 기념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권치규 작가의 당산-대전간 고속도로 준공기념 공공작품 '동서남북'

“사업비가 각각 5억, 8억씩 들어간 대형작품이죠. 도로공사 관계자분이 ‘지금껏 본 것 중에 제일 멋지다’고 감탄하셨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죠”

이처럼 많은 조형물을 제작해 온 그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인연이 깊기도 하다. 지난 2009년 11월, 본지 창간  1주년을 기념해 문화예술 및 관련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과 업적을 보인 인물을 선정, ‘제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을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쓰였던 상패를 제작해 기증한 이가 바로 권 작가였다.

“최근 몇 년 간 제 작품에 욕망이란 주제로 사과가 많이 들어가고 있어요. 당시 사과나무미디어 그룹(본지 사명(社名))이라고 해서 우연히 제가 추구하는 아이템과 일치했었죠”

현재 작품 속에서 사과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그는 초창기 시절부터 인간의 잠재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되돌아보면 하나의 흐름이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추구 하는 방향”이라는 그는 재료나 기법에 대한 변화를 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Life-욕망/ 64x19x40cm/ Acrylic on Bronze/ 2008

▲자연-인간-문명/ 170x45.5x45.5cm/ Acrylic on FRP/ 2008

“대학 졸업 후부터 계속해서 실험적인 재료를 써왔어요. 건축 재료들을 조각에 이용했죠. 1996년도 미술 대전에서 조각부문대상을 받았을 당시 ALC라고 하는 발포 시멘트를 사용했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완전한 재료가 아닌데도 15여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작품이 멀쩡해요. 현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신소재가 엄청나게 많아요. 조명과 빛에 관련해서도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오는 7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인사아트센터)에서도 MDF(건축용 중질 섬유판(Medium Density Fibreboard)에 우레탄 특수 도장을 한 작품을 선보인다는 권치규 작가. 그의 실험적인 작품이 늘어갈수록 우리나라 조각계도 한 걸음씩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

권치규 작가에게 1998년은 의미 있는 해다. 일산으로 이사하고, 그 해 결혼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를 묻는 질문에 첫 개인전을 꼽은 권 작가는 “처음이라는 것 외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IMF로 어려웠던 시기기도 했죠. 지금 와이프랑 산에 올라가 나무를 직접 해서 난방을 했던 기억이 나요. 기름난로에 기름 값이 너무 비싸서 말이죠(웃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전시관 1, 2층을 다 쓰고 야외 광장까지 썼을 정도로 의욕이 넘쳤던 기억이 나요. 첫 개인전에서 보여 줬던 이런 의욕과 열정이 지금까지도 작업하는데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부부 조각가로 유명한 권치규, 김경민 작가는 2008년 11월 26일부터 12월 9일까지 ‘권치규-김경민 조각展(인사동 선아트센터)’를 열어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1996년에 처음 만나 연애를 할 때도 남들처럼 커피숍이나 영화관 등은 가보지 않은 채 같이 재료를 구하고 작업을 하며 데이트를 했다는 천생연분 조각가 부부.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많이 다르다.

“와이프는 사회를 꼬집는 풍자적 요소가 많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다가가기 쉬운 부분들을 고집하죠. 저는 인간 내면에 대한 부분이라 좀 심오하고요(웃음).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게 좋다고 생각해요. 서로 너무 같다보면 둘 중에 한 명이 다른 한명에게 섞여 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때는 누구라도 한사람은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흔히 부부 예술가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충돌이나 라이벌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두 부부는 한 명이 해이해지면 다른 한 명이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자극을 준다고 한다. 둘 다 이 분야를 너무 잘 알다보니 서로 조언도 해 준다고 한다.

“단점이라면 이 (예술)세계를 너무 잘 안다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조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가 외부에서 하는 활동을 멋있게 볼 수도 있겠지만 속사정을 아는 와이프는 가볍게 봐버려요(웃음). 하지만 제가 힘들어 하는 부분에 대해 이해 해 줄 수 있는 동시에 어려운 미술환경에서 잘 살아 남았다는 것을 이해해 줘서 고마울 뿐이죠”

◈완벽하지 않으면 작품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각은 3차원적 구성이다. 정밀한 스케치가 필요한 예술이다. 때문에 대부분 크게 스케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권치규 작가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케치를 할 때 항상 A4에 몇 점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로 그림을 그린다.

크게 그릴 때 보다 퀄리티가 높다보니 작품으로 옮겼을 때 스케치의 느낌을 못 나타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영감 그 자체(스케치)에 인위적 요소가 가미되면 즉각 알아챌 수 있는, 완벽한 작품을 위한 그만의 습관인 것이다.

입체적 특성을 지닌 조각이기에 작은 스케치가 때로는 불편하지 않을까하는 기자의 걱정은 한낱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대학교 3, 4학년 때 연예인 닮은 엄지손가락만한 인형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원래부터 작고 정밀하게 작업 하는 것에 익숙하죠”

작업실과 집을 함께 쓰는 만큼 주변의 환경이 예술인 그는 작업기간보다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기간이 더 길다. 아니, 집의 풍경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 자체에 조각이 녹아있다.

‘그가 곧 조각이고 조각이 곧 그’일 정도로 조각과 일심동체를 이루는 권 작가는 그의 세 자녀 역시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손재주가 타고나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문득, 부부조각가를 뛰어넘은 가족조각가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만드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만약 조각을 하고 싶다 하면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생각이에요”

◈작가와 관객모두 폭 넓은 생각 가져야

요즘 예술은 장르를 논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탈 장르화의 길을 걷고 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조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다.

서원대학교(충북 청주시 소재)에서 화예디자인 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기도 한 그는 미래의 조각가들에게 이런 점을 이용해 ‘폭 넓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기가 가진 상식으로 능동적으로 표현 하면서 조각과 접목할 수 없다고 생각 했던 것과 접목해 보는 등 많은 시도를 하면 (조각가를 꿈꾸는 많은 후배들이) 자신만의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자신의 작품을 보러 전시회를 찾아주는 모든 이들 역시 ‘폭 넒은 생각’으로 자유로운 상상의 놀이를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췄다.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자유롭고 폭 넓게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시회를 하면서 ‘어떤 주제를 가진 전시다’라고 명시는 하지만 그런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마음대로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뜻이죠. 그래서 앞으로는 작품의 제목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사과에 ‘욕망’이라는 제목을 지으면 모두들 ‘선악과’에만 맞춰 생각하게 되는 반면 추상적인 제목을 던지면 사과를 보면서 ‘수확’과 같은 풍요로움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욕망의 존재, 즉 자연과 사회라는 한계 안에서 존재하는 보편적 동시대인의 내면을 작품으로 상징화해 소통의 문을 열고 있는 권치규 작가. 그 소통의 문으로 한 발짝 들어가 인간의 내면에 대해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심미적 즐거움을 맛 볼 날이 기다려진다.

권치규(權治圭) 작가 프로필

199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99 성신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2008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수료
현 서원대학교 겸임교수

수상
2005 Osaca art fair 우수작가상
2003 중국 상하이 Art salong 청년 작가상
2002 대한민국미술축전 최우수상
1996 제1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조각부문 대상)

개인전 15회
단체전 및 초대전 200여회

아트페어
2010 홍콩 호텔아트페어 (하이야트 홍콩)
2009 마니프국제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2007 부산롯데아트페어(부산롯데, 가양갤러리)
2005 베이징 화랑아트 페어 (중국북경, 선화랑)
        Osaca art fair (osaca-Japan)
2002 화랑미술제(예술의 전당, 가람화랑)
        북경 아트 페어(중국 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