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제 지속되는 한 내 문학 활동은 계속 될 것”
“남북문제 지속되는 한 내 문학 활동은 계속 될 것”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7.07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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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와 열정으로 가득 찬 분단문학의 선구자, 소설가 이호철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올해는 6·25전쟁 발발 60주년이다. 그 어느 때보다 호국보훈의 의미가 큰 해다. 하지만 이산가족에겐 그 어느 때보다 고향이 더 생각나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6·25전쟁과 민족분단의 비극, 이산가족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뤄온 분단문학의 중심 소설가 이호철(79)에게도 올해는 특별하다. 수많은 곳에서 강의와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물론 24여회의 소설 독회를 모은 <선유리>를 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소설가 이호철을 서울 불광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목소리에서 열정이 넘쳐흘렀다.

◈독서수준이 바로 그 나라 문화수준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숙명적이었다. 내 첫 기억이 책이다. 4살 땐가, 종조부께서 내 육촌형에게 주려는 천자문 한 권을 한 손에 들고 계셨다. 마을훈장에게 부탁해서 얻어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바보들한테는 책을 주면서 나는 안준다’는 생각에 너무 서러웠다. 그날의 기억은 날씨까지 기억날 정도로 생생하다. 그 책 생각이 날 때마다 매일매일 울던 나를 보고 증조부님이 서당에 가서 그 책을 사흘 만에 베껴서 내게 주셨다. 그 이후로도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는 수준이 남달리 꽤 높았다. 이미 그때부터 문장도 쓰고 했었다.

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이 폴란드어(1998), 일본어(1999), 독일어(2002)를 비롯 불어, 중국어, 영어판으로도 나오는 등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를 뭐라 생각하시는지요

이번에 헝가리어로도 번역 될 예정이다. 동독에 가서 독회를 하는데 독일 아줌마들이 “독일이 1946년에 공산화 될 때 하고 이북이 공산화 될 때 하고 어쩜 그렇게 비슷하냐” 고 질문 하더라. 독일도 우리 역사를 보며 공감하는 것이다. 세계에 많은 사람이 내 소설의 진미를 알아준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방면에 대해 나만큼 자세히 알고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소설은 이북에 살아본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다. 내 후배들한테 참 미안한 소리지만, 그들의 소설은 내 성에 안찬다. 왜냐면 모든 작가는 궁극적으로 자기가 살아낸 만큼 담아내는 것이니까.
10개 국어로 번역 된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문학적 역량이라 본다. 사람들한테 감동을 줘야 하지 않은가? 나만의 특색, 나 아니면 쓸 수 없는 문장을 써나가고 있다.

최근 24여회의 소설 독회를 모은 <선유리>를 발간하셨습니다. 소설 독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3년에 독일에서 열린 세계문학연대에 초청받아서 가게 됐다. 그때 독일 소설가 마틴 발저(Martin Walser)가 두 명의 교수와 예나대학, 에어푸르트, 라이프치히 등 주로 동독 쪽으로 돌아다니면서 독회하는 모습을 봤었다. 마틴 발저의 독회를 직접 가보기도 했다. 거기는 200명 정도가 왔는데, 보니까 50, 60대의 훤칠한 당대의 유력자, 중역들이었다. 그들이 작가의 책을 한권씩 들고 독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전부 줄서서 마틴 발저의 사인을 하나씩 받아서 가더라.
그 곳에서 소설독회라고 하면, 극장에 표를 사서 들어가서 하는 것이었다. 나도 에어푸르트에서 <남녘사람 북녘사람> 독회를 했다. 그때는 주최 측에서 티켓을 안 팔고 그냥 했는데 150명쯤 왔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어 시간 독회를 진행 하는데, 질문 수준도 참 높고 책도 다 읽고 왔더라. 그때 동독의 뿌리 깊은 문학 수준에 감탄했다.
이 후 미국에서 한 달 동안 <남녘사람 북녘사람>과 단편집으로 독회를 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서 독회를 해보자고 제안이 왔고, 2006년 9월부터 한 달도 빠지지 않고 23편의 작품의 독회를 했다.
내가 하는 독회 행사는 단순한 문학 행사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려면 일반 독서수준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내 책이 너무 깊이 있고 어려우니까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사람들이 꺼린다. 독일에서는 7판쯤 팔렸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권력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야

올해는 6·25 발발 60주년입니다.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으로 알고 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내가 이북에서 고3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정확히 7월 7일에 인민군으로 동원이 됐는데,  8월 26일에 울진까지 내려갔더랬다. 따발총을 들고 울진에 적군도 몇 없는 곳에 보충 군력으로 한 달간 지냈다. 그러던 중 9월 26일 추석날에 국군들이 울진까지 올라오더라.
중대장이 자신은 부대원들을 데리고 죽변으로 갈 테니, 나는 중대 지키는 동료들을 데리고 뒤따라오라고 지시했다. 본부로 돌아가는 길에 뒤에서 총알이 날아오길래 막 달려서 혼자 태백산맥 쪽으로 들어가다가 월정사에서 노승을 만났다. 그가 야양으로 간다기에 같이 따라가서 이틀인가 삼일인가 자고 목숨을 건졌다.
10월 4일날 산속에서 총과 무기를 모두 버리고 스님이 준 옷을 입은 채 산을 내려갔다. 그때 야양으로 내려가서 포로로 잡혔다. 잡혀서 부터의 얘기가 <남녘사람 북녘사람>의 내용이다. 그때 그 사람 만나서 살아 있는 거다.

통일에 대한 갈망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에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여기저기 신문에서 나보고 글 쓰라고 난리다. 지겨울 정도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통일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내 소설도 요즘 젊은이들이 안 좋아한다. 오히려 외국에서 우리에게 더 관심을 가지더라.
분단문학도 크게 보면 문학인데, 분단문학이라고 나눠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듯하다. 분단이라는 말도 싫고 통일이라는 말도 싫다. 둘 다 부담스럽다. 통일이란 물이 차올라서 넘치듯이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지 남북통일 운동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비켜나고 실제로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오르내리는 일이 생기면 자연히 통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안함 사태 등으로 남북관계가 전면 중단 위기에 처한 지금의 상황이 어떠신지요

요즘은 이런 얘기하기 조심스럽다. 사실, DJ나 노무현 정부 때 이북을 너무 잘못 길들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때 우린 너무 퍼줬다. 물론 한민족이니까 양쪽 다 굶는 사람은 없어야겠지만 너무 퍼 주기만 했다.
어떤 시각에서는 이명박씨를 이해 할 수도 있다. 우리도 영원히 계속 퍼주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전체적으로 남북문제는 길게 놓고 보면 분명 좋은 방향으로 가리라 믿는데, 그 속도가 너무 지지부진하다.

◈진정한 작가 정신으로 자신만의 스타일 고집해야

집필할 때 나름의 습관이나 철칙이 있으신지요

철칙이랄 것도 없지만, 그때그때 운에 따른다. 떠오르면 속필 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1000장을 하룻밤에 손이 떨리도록 다써놓고 다음날 아침에 마음에 안 들어서 다 버린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각각의 작가는 정신적인 무언가가 꼭 하나씩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는 하도 깔끔을 떨어서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면서 문고리를 잡다가 찝찝한 생각에 또 손을 씻는다더라(웃음)

올해 7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동력이나 특별한 관리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열의와 열정으로 신나게 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좀 더 열심히 쓸 걸’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과거나 지금이나 나만큼 쓰는 사람은 없었다. 80 나이 다 되서 책을 내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책을 많이 써도 계속 새로운 소재가 떠오른다. 남북관계가 계속 있다면, 나도 계속 쓸 거리가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제대로 검증 안 된 문인들이 마구 배출되는 ‘문인양산’ 현상이 문제인데요. 이를 비롯해 우리나라 문학계의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잡지가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읽은 책도 별로 없으면서 빨리 자기 것을 쓰려고 한다. 우리 때는 남의 좋은 소설을 읽는 것으로 공부 했는데. 돈만 있으면 다 출판사와 계약 하고 책을 내다보니 저질 책들이 난무하고, 정말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제대로 된 소설가가 별로 없다.
요즘에 지방 가보면 작가라는 명함 들고 문인행세를 하며 사기꾼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학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당대의 문학이라는 것은 희귀해야 한다. 정말 작가정신을 지니고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 스타일만 고집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너도나도 글 쓴다고 하고, 또 서로 잘났다고 하니, 나로선 보기 민망하다. 

소설가 등 문학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으시다면

요즘 나는 쓴 소리 한다고 욕 들어먹을까봐 조심스러운데(웃음). 글쎄. 좋은 예술가라는 것은 운명이고 타고나는 것이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어야 한다.
만약 재능이 있다면 좋은 글을 많이 읽기 전에는 함부로 대들지 마라. 함부로 글 쓰는 사람 천 명 중 한 명이 잘될까 말까다. 문학을 하겠다 소설을 쓰겠다 하는 사람은 일단 매일매일 일기를 쓰면 된다. 일기를 쓰면 그만큼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좋은 책을 계속 읽으며 공부를 해라. 다른 사람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쓰는지 배워라. 이 나이를 먹어서도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고 그 것에 관해 쓸 수 있으니까.
또한, 성실해야 한다. 요즘 작가들은 작가 스스로가 독서량이 너무 적다. 성실히 책을 읽어야한다. 마지막으로 열의를 가져야 한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앞으로도 쓸 글이 많다. 계속 사랑해 주고 지켜 봐주면 고맙겠다.

이호철 작가 프로필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
1950년 고교시절 한국전쟁 발발로 인민군에 동원되어 국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 그 해 12월 월남
1955년 문학예술의 탈향, 이듬해 마상에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1961년 단편 <판문점>으로 제 7회 현대문학상
1962년 단편 <닿아지는 살들> 제 7회 독립문학상
1966년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으로 제 4회 대한문학상
1985 자유실천 문인협회를 대표 역임
1992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피상됨

▲소설집 <나상>, <이단자>, <문>, <소슬한 밤의 이야기>, <이산타령 친족타령> ▲단편소설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북풍>, <물은 흘러서 강>, <까레이우라>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 ▲산문집 <문단골 사람들>, <세기말의 사상기행>, <한 살림 통일론> 등이 있으며, 지난 6월, 24여회의 소설 독회를 모은 <선유리>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