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7가지 ‘다중인격’이 만들어낸 영화
내안의 7가지 ‘다중인격’이 만들어낸 영화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2.25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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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심리 드라마 ‘블러디쉐이크(Bloody Shake)’ 김지용 감독 인터뷰

 


‘블러디쉐이크’로 장편영화에 데뷔하는 김지용 감독은 영화계에서는 아직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나리오 집필부터 시작해 독립영화,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을 제작 및 연출, 편집하고 그 중에는 수상한 작품도 있다. 또한 삼성 애니콜, 리트머스, 나나맥스, TG 등 CF와 뮤직비디오까지.. 그의 프로필은 예사롭지 않았다.
호주 멜버른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그의 나이 스물여덟에 처음 맡은 영화가 40억원이나 들어간 대작이었지만 아쉽게도 제작 중단 사태를 맞았다.
이후 열심히 씨를 뿌린 3편의 영화도 그리 쉽게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영화에 대한 뚝심하나로 포기하지 않고 무던히 애써온 김지용 감독이 그간 쌓아온 실력과 영화에 대한 애정을 전부 쏟아 부어 ‘블러디쉐이크’를 들고 나왔다.


일단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묘하게 어울리는 두 단어 ‘Bloody’와 ‘Shake’의 조합. 알듯 말듯 모호함 속에서 ‘피범벅’이 떠올랐다.

김지용 감독은 조감독과 쉐이크를 먹다 문득 우리들의 인간관계가 뒤죽박죽 얽혀있는 세상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는 “결국 블러디쉐이크(Bloody Shake)라는 영화는 그 인간관계에서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던 희로애락을 극단적으로 표출해 피가 난무하는 ‘빌어먹을 세상’을 표현한 것”이라며 작품을 설명했다.

‘빌어먹을 세상’이라니 요즘처럼 믿을 사람 없는 사회에게 던지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니 영화 내용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블러디쉐이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지닌 기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7명의 인물에게서 벌어지는 5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사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랑, 욕망, 시기, 질투, 분노, 집착 등으로 인해 상상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흘러간다. 한 인물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이 다른 인물에게 뜻하지 않게 영향을 미치며 사건은 끊임없이 전개 되는 ‘판타지 심리 드라마’

◆ 현실이 만들어 내는 ‘극단의 끝’은 무엇인가

이 색다른 장르의 영화 탄생 배경은 이렇다.
영화로 두 번의 고배를 맛본 김지용 감독은 연극 연출로 잠시 방향을 틀었지만, 연극을 한다니 오히려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아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6개월간 카레를 먹으며 극단아이들과 합숙했다. 그 생활이 극단적인 생각들을 끊임없이 이끌어 냈다. 그 극단의 끝에서 ‘왜 우리는 바닥까지 떨어지고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을까’하는 ‘블러디쉐이크’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7개의 극단적인 캐릭터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일 수 있지만 이들이 모여 생기는 극단적인 상황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김감독은 “한 마디로 내안의 7가지 다중인격이 만들어낸 영화다. 대부분의 상황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또 다른 상상의 하나일 뿐 누군가는 한 번쯤 상상했을지도 모른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덧붙여 “상사한테 깨지고 후배한테 밀리고 가정불화 등 일상을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며 수많은 상상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이 현실에서 일어난다. 다만 현실이 만들어 내는 ‘극단적인 상황의 끝’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감독의 이번 작품은 촬영 스타일도 독특하다.
제한된 또는 이미 설정한 정보가 담긴 대본 대신 소설처럼 쓴 추상적인 대본과 최소한의 콘티만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대본에 의해 자유로운 상상에 제한을 받을 것 같아서 사고의 극단, 행위의 극단, 촬영의 극단까지 가고 싶어서 내린 결정.

김감독은 “덕분에 스텝들은 무지 힘들어했고 나는 할 수 있는 상상은 다해보고 촬영에 적용해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연출부 한 명 없어도 믿고 따라와 준 배우와 스텝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특히 80%가 세트 촬영이라서 폭염의 날씨에 살수차를 동원해 비씬을 찍어야 했던 것 말고는 오히려 상황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내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담아낼 수 있었다”며 흡족해했다.

‘블러디쉐이크’의 제작사인 (주)팜코리아미디어의 대표이기도 한 김지용 감독은 자유로운 독립 제작 방식을 위해 회사의 지분을 스텝과 나눠 제작했다. 그는 “투자사나 다른 어떤 제한 없이 스텝들과 함께 참여한 작품이기에 객관성을 잃지 않은 작품”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최고의 환경에서 만들면 37억원 정도나 들어갔을 이번 작품은 총 6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그간 공연예술계에서 쌓은 노하우와 여러 편의 단편영화로 갈고 닦은 실력으로 편집과 CG 등의 후반작업도 감독과 스텝들이 직접 했기 때문.

김감독은 “처음에 우리가 이 돈으로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해보니까 할 수 있더라. 그만큼 한국의 영화들이 제작비에 거품이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 관객 마음 다독이고, 소통할 수 있는 작품

저예산 독립영화라 완성도나 스케일, 연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의 연기나 연출이 후지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에 그는 “잃을 것이 없어 배우, 스텝 모두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돈 많이 들인 영화가 잘된다는 선입견을 버려라. 이런 영화 본 적 있나?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라며 “기존에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없어 부담도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 '블러디쉐이크'의 김지용 감독과 주인공을 맡은 배우 '전혜진'을 만나 남산 자락에 자리한 예쁜 찻집에서 즐거운 수다.
그런 이유로 PPL(영화, TV 등 각종 매체에서 기업의 제품을 등장시켜 소비자들에게 의식, 무의식적으로 자사 제품을 광고하는 것)을 전혀 협찬 받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
김감독은 “수 자원공사에서 물을 지원받고 지하철 공사나 특히 에덴의 동쪽 촬영지인 순천시에서 세트촬영을 할 때는 전봇대를 뽑아줄 정도로 대단한 지원과 세트장 및 촬영 장소에 적극 협조해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백만을 넘어섰고 작년에는 단편영화 나홍진 감독의 장편데뷔작 ‘추격자’도 흥행 대박과 함께 각종 상을 휩쓸었다. 현재 영화계는 소위 독립영화 출신 감독들이 선전하고 있다. 이는 관객들이 더 이상 배우나 감독이 아니라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김지용 감독의 바람도 그랬다.
“배우나 감독보다도 영화를 보고 와주면 좋겠다. 다양한 장르에서 일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다.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작품으로서 한 차원 높게 봐 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분명 상업영화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들었으니 새로운 시선으로 편안하게 봐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몽환적 현실과 극단적 상상이 만나 그 끝을 향해 극으로 치닫는 관객의 마음을 다독이고,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다음 달 23일부터 4일간 열리는 ‘홍콩 필름마켓’에 갈 준비로 요즘 김감독은 낮과 밤을 잊은 채 후반작업에 한창이다.

‘홍콩 필름마켓’은 CJ 나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이서 주로 가는 곳으로, 김감독은 “독립단편이나 단편영화는 뜨기 힘들어 우리 같은 작품도 묻힐 수밖에 없다. 직접 가서 바이어들과 부딪쳐 설득할 것”이라며 참석 이유를 밝혔다.

“다행히도 LG에서 대형 화면을 협찬 받아 바이어들에게 3분간 ‘블러디쉐이크’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고 덧붙였다.

엄청난 제작비와 스타배우가 출연하는 스케일 큰 영화는 아니지만 ‘판타지 심리 드라마’라는 장르를 개척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이 되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

 

▲ 김지용 감독의 '블러디쉐이크'의 주인공 시각장애인 수경 역의 배우 '전혜진'이 열연하고 있는 모습 
▲ 김지용 감독의 연출을 믿고 따라가는 스텝들과 함께 촬영 중인 진지한 현장 분위기 

 

 

 


 

 

 

 

· Silver TV 편성기획 팀장

· M&F Global 기획 이사

· 극단 인디퓨쳐 대표 역임

· 현 (주)팜코리아미디어 대표

· 영화 ‘블러디쉐이크’ 제작,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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