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여행기 - 강애나 시인
독자여행기 - 강애나 시인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7.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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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고풍스러운 전통이 살아숨쉰다

영덕으로 가는 길

6월 20일 여행 작가와 각 신문사 기자, 방송피디들이 모여 서울에서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를 떠났다. 40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서울 인사동에서 아침 일곱시 반에 출발해 영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고등어찜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바닷가 석리 트레킹을 했다. 우리나라에 해수욕장은 많지만 석리처럼 맑고 깨끗한 해수욕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닷가 주위의 가파른 바위들을 걸어가며 보는 바다의 절경은 막혔던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멀리 보이는 산맥은 영덕의 바다를 둘러싸고 있었고, 바다는 옥색치마 풀은 듯 바닥까지 미역줄기가 드러나 있었다. 장대한 바위들은 바다를 지켜주었으며 군데군데 갯바위 낚시꾼도 보였다. 맑은 바다 속에는 소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모래사장은 십리정도 아름답게 펼쳐진 오팔색이었다. 뒤를 보니 한 백 가구 정도살고 있는 것 같다. 여관이나 모텔은 찾아보기 힘들고 깨끗한 민박집이 눈에 보였다.

석리의 바닷가 사이사이 검은 무더기가 뭔가 봤더니 홍합이었다. 아직은 덜 자란 것들이었다. 석리의 아쉬움을 남긴 채 차유마을로 떠나봤다. 석리보다 더 아름답고 가파른 바위들이 나를 맞이했다.

오토캠프장에서

우리는 풍력발전단지로 길을 돌렸다. 네델란드의 연구 기술진들을 끌어 모아 전기풍차를 세웠다고 했다.
저녁이 되니 뿌연 저녁 안개와 핑크색 노을이 먹다 남은 와인을 쏟아 부은 것 같았고, 떼구름이 놀다간 자리엔 해 걸음이 바쁘게 석양의 둥지를 틀었다.

아름다운 신록이 우거진 곳에 저편에는 연회장의 무대들도 마련되어있고, 군데군데 보이는 하얀 풍차는 우주 속을 달려가는 로켓전사 같았다. 뉘엿뉘엿 다가오는 어둠 속에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여섯시 반 즈음되니 산봉우리에 붉은 풍선 하나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괴시리 마을에서

괴시리 마을은 목은 이색선생의 출생지로 200년 된 전통가옥이 그대로 보전되어 고풍스러웠다. 나는 향수에 취한 마음에 꼭 외갓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괴시리 마을의 이름은 목은 이색선생님이 중국 괴시리 마을과 지형이 흡사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더러는 사는 집도 있고, 더러는 여름에는 어르신들이 집을 지키고 있다가 겨울엔 아들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집은 사람의 운기에 따라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에 집에 사람이 있으면서 조상들의 얼을 지켜야만 집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인량리 마을에서

인량리 마을도 전통고택 가옥으로 구성된 전통마을로서 국가 지정 민속자료로 충효당 외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있다. 인량리는 예로부터 어질고 용의 터로 휼륭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한 오래된 집으로 향하니 백일홍 나무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엔 할아버지가 한 분 살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옛날 집을 현대식 부엌으로 고쳐 생활하고 계셨다. 오래된 가마솥만이 부뚜막 위에서 주인의 체취를 맡고 있었다.

인량리 마을의재룡 이씨 전통가옥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농장을 거쳐 고추밭 오솔길 사이를 통해 재룡 이씨 고 가옥에 가 보니 아직은 집을 고치고 있어 기와가 널부러져 있었다. 한 풍수가가 말하기를 용의 기가 끊어진 곳이라 사람이 살아도 좋지 못 하다고 했다.

윗체에 올라가 보니 이상한 나무가 있었다. 양쪽 연리지처럼 양쪽 팔을 벌린 것 같은 나무였다. 두 팔을 벌린 나무는 선비를 많이 태어나게 해서 효자나무라고 했다.

뒤쪽 오솔길로 들어서니 삼백년 문화보호재 은행나무가 마을조상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옆쪽을 바라보니 몇 백 년 된 향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청송 얼음골로

인량리를 뒤로하고 청송 얼음골로로 향했다. 일행들은 얼음골 길게 늘어진 인공폭포의 절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얼음골 약수터에 오니 시원한 계곡과 깨끗한 개울에서 송사리 떼들이 자기만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줄을 서서 차례대로 물을 받는 동안 약수굴에 들어가 여름을 잊었다.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 들었다. 더운 여름철엔 이 산이 더 추워져 얼음이 언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송군 과장님은 얼음골 약수로 만든 막걸리는 이고장의 명물이라며 자랑 하셨다.

주왕산으로 향하여

주왕산으로 가는 길의 푸른 솔들은 하늘을 받치고 있을 만큼 꼿꼿했다. 우리들은 짚신을 신고 대 법당 마당을 통과했다.

주왕산의 제 1폭포로 향하여 가는 길에 송사리 떼들이 옹기종기 물살을 거슬렀다. 바위에 오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아들바위가 눈에 띄었다.

깎아 내린 듯한 절벽에 평풍처럼 이끼들이 끼인 곳에 여러 개의 부처 손바닥이란 이끼종류의 식물이 예쁜 장미모양 같았다.

더 올라가 보니 수영장 같은 계곡물이 모여 푸르고 맑은 옥색물의 감로수가 고여 있었다. 금새 뛰어내려 내 몸을 담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동굴이 이어진 곳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조금 들쑥날쑥 험했지만 스릴있었다. 주왕산을 뒤로 하고 저녁 만찬이 기다리는 약수탕 닭백숙을 맛있게 먹으러 갔다.

약수터가 있는 곳 식당으로 가보니 벌써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술  한잔에 약수 닭백숙이 나왔는데 겉껍질이 약간 파랗다. 닭살을 씹는 이 맛은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며 입속에서 녹아나 삼키기 조차 아까웠다.

모두들 푸짐하게 닭 백숙을 먹고 난 후 예정대로 우송당 문화공연장으로 향했다.

우송당 문화공연장에서

누군가의 ‘사랑 하였으므로 행복 하였네’라는 시낭송을 시작으로 육군 사관학교와 각 대학에서 민요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나와서 직접 민요에 대해 해설해 주셨다. 퉁수와 함께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주셨던 교수님은 양귀비처럼 아름다웠다.

교수님의 제자들이 꽹과리, 북과 장구를 신명나게 치자 어깨가 절로 들쑥날쑥 거렸다. 사랑가, 춘향가, 흥부전 등을 창곡으로 불러 주었을 때는 서로들 앵콜이 쏟아졌다. 옆 자리에선 다도가 이루어져 전통의 향기에 물씬 느껴졌다.

사물놀이로는 접시돌리기가 이어졌다. 서로들 높게 올려 담붓대로 받기도 하고 돌리기도 하고 다리 밑으로 넣어서 돌리기도 하고 앞으로 던져서 돌리기도 하며 묘기를 보여줬다. 커다란 굴렁쇠 같은 크기의 접시를 재미나고 흥겹게 돌리는 장면은 모두의 눈을 흐뭇하게 했다.

즐거운 공연을 마치고 송 고택으로 향하여 방을 배정 받았다. 방은 안채에 있었는데, 그 집은 영종 때 지은 심호택이란 민간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심호택은 원래 농사꾼이었다. 어느 날 지나가는 스님께 심씨가 들고 있는 찬밥을 내드렸더니 스님께서 고마워하며 무엇을 바라는가 하시며 물었다. 심씨왈 “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시는데 아직도 장례 터를 마련하지 못하였사오니 스님께서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시면 더는 바랄게 없나이다”. 스님께서 동서남북을 둘러보시더니 동쪽에 해 뜰 때 빛을 제일 먼저 내리는 장소라 해서 며칠을 더듬고 찾아보니 뒷산 소나무 옆이었다고 했다.

그 후 논 한마지기에 쌀이 한 섬지기라면 두 섬 지기가 나왔고 재산은 날이 갈수록 불어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쌀을 퍼주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에겐 언제나 쌀 한가마니 내어줬다. 언제나 굶고 가는 적이 없는 인심 좋은 심부자 댁 이였다고 전한다.

주산지에 올라가 보니

새벽 다섯시가 넘어서 주산지에 오르니 왕버들이 천연스럽게 물을 내리 깔고 있었다. 안개가 휩싸여 선녀가 나온다는 주산지에는 구성진 뜸북이 소리가 울려퍼졌다.

솔기온천으로 향하여

온천물은 부드럽고 맑았다. 그곳 주인은 직접 나염을 해서 인사동이나 각 절에 판다고 했다. 소슬밥상 백반을 맛나게 먹을 때. 청송군수님이 식당 주인에게 물어 스카프 40장만 마련하라고 하신다. 귀한 선물을 받고 군수님과 명함을 주고 받으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파프리카 체험장에서

파프리카 체험장으로 가서 파프리카 맛을 보러 갔는데 주인은 따지 말라신다. 잘 못 따면 다음해에 수확이 안좋다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신발바닥에 소독약을 묻히고 들어갔다. 노란색 파프리카 한 덩이를 들고 와작 깨물어 먹어보니 신선함과 달콤함이 혀끝을 놀라게 했다.

이후 고사리 체험장으로 갔다. 고사리는 아무 곳에서 돌봐주지 않아도 절로 크게 되므로 큰 손을 보지 않아도 잘 크는 훵기(이끼류)식물이라 했다. 고사리를 직접 따는 즐거움을 맛보고 주인이 직접 따서 말린 고사리 한포도 받았다.

골뱅이 농장 체험장

뗏목을 준비해서 우리는 사진을 찍는데 뗏목이 뒤뚱뒤뚱 안절부절이다. 그곳은 양식장으로 골뱅이 이외도 각종 어항류의 고기를 키우기도 했다. 우리는 그곳을 둘러보고 나와서 산나물 정식에 약수물로 만든 동동주를 마시며 산채 정식과 오리고기를 포식하고는 서울로 출발해야 했다.

청송을 남겨두고 오니 청송의 시가 절로 나온다

청송 산천을 돌아 보니/ 강애나

평풍같은 얼음골 폭포, 아픈 마음 떨쳐 내리고
들어간 약수터  더운 몸 냉동되어 겨울 산신 되었구나
주왕산 용의 혈맥 풍경은 천국에 오니
풍요로운 농작물 인심도 참 고와라
유교사상 맥 이어 전통 고택보존 선조의 유산
산천경계 황혼질때 노을빛 주렁주렁 사과알에 옮겨 담고
산딸기 아가씨 붉은 입술로 청송청송 노래 부르네
우지짖는 새들도 늘어진 왕 버들 가지에 안개를 털어내면
높은 봉우리 고사리 산채들이 지천으로 바람 몰고 오고
돌무더기 숨어서 흐르는 물에 개골개골 청아한 시조목청
주왕산 골짜기 유리같은 폭포수 송사리 떼 한가로움 눈에 담아두니
백리 길도 달려와  햇살이 피어나는 눈 부신 청송으로 다시 또 오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