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충무로야사]추억의 명화 그 주제음악들 (외국영화 편)
[연재 충무로야사]추억의 명화 그 주제음악들 (외국영화 편)
  • 이진모 /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 승인 2010.07.0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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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작 '러브스토리'
오랜만에 한때 영화감독으로 관객들에게 꽤 이름을 알렸던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벨소리대신 영화 (러브스토리) 테마곡이 감미롭고 애잔한 리듬으로 흘러나온다.

에릭 시걸의 동명소설로써 전 세계 독자와 관객들을 고급한 최루성 감상주의에 몰입시켰던 이 영화는 웬만한 영화 매니아층의 귓가에는 아직도 마치 자신의 아픈 추억인양 맴도는 명곡이다.

영화감독 아더 힐러가 연출하고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공연했던 이 영화의 주제가는 프랑스영화 클로드 를루슈가 연출했던 (남과 여)의 주제가로 일약 명성을 날렸던 프란시스 레이가 작곡한 피아노와 트럼펫의 페이소스한 선율과 앤디 윌리엄스의 녹아내릴 듯 한 초코아이스크림 같은 음색이 잘 조화된 영화주제가 이다.

후배는 일부러 그랬는지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고 계속 음악을 들려주었다. 한참 후, 후배가 전화를 받자 이번에는 내가 즉시 응답을 하지 못했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장면들과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퍼의 환영이 파노라마처럼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영화에서는 테마곡이 그만큼 깊은 감동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영화음악의 대가라면 프란시스 레이 뿐 만 아니라 르네 클레망이 연출한 (금지된 장난)과 (태양을 가득히), 페데리코 펠리니가 연출한 영화 (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등의 주제가를 작곡한 니노 로타는 단연 영화음악의 불세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금지된 장난의 나르시소 예페즈가 연주한 기타 선율의 (로망스)와 태양은 가득히의 (플레인 솔레일)은 지금도 명동, 대학로, 신촌 등 카페에서 추억처럼 아련하게 들리는 발군의 명곡 들이다.

또 있다. 데이비드 린의 (닥터 지바고) 주제가를 작곡한 모리스 자르,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황야의 무법자) 등 다양한 장르로 관객 동원의 활력소가 되었던 엔니오 모리꼬네, 그 외 헨리 멘시니, 드미트리 티옴킨 등 그 숱한 영화와 주제가의 음악 천재들을 일일이 거명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지면이 모자라도 거를 수 없는 영화 주제가 한 곡이 있다. 우리가 헐리우드영화처럼 쉽게 접할 수 없는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 이 영화의 주제가야 말로 전기한 영화음악과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을 애이는 리듬이다.

물론 이 영화의 주제가는 영화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라 저 유명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2악장이기 때문에... 그러나 아무리 모차르트 곡일 지라도 그냥 듣는 느낌과 영화를 보면서 듣는 느낌은 정말 판이하다.

스웨덴에서 영화를 영상 철학으로 사유한 잉마르 베리만과 대등한 존재였던 (보 비더버그) 감독은 스웨덴의 왕궁 발레리나였던 (피아 디거마크)를 기용해 마치 후기 인상파의 대가였던 프랑스의 저명한 화가 클로드 모네의 움직이는 화폭을 보는듯한 느낌은 모차르트 음악과 함께 당시 헐리우드영화, 프랑스영화, 이태리영화에 경도 되었던 외국영화 매니아층들의 매너리즘에 빠진 문화적 영혼을 뒤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가 데뷔작이자 은퇴작이었던 (피아 디거마크)의 마치 루벤스나 램브란트 그림에 나올법한 완벽한 미모는 영화 테마곡을 변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에 마치 들꽃 만개한 초원에 비상하는 흰 새와 같은 승화된 영상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먹을 게 없어 백작 출신 근위대 장교인 남주인공 (스파레)가 꽃잎과 풀잎을 뜯어 먹다가 권총 자살해버리는 마지막 시퀀스의 빈 화면에 들리는 테마 뮤직과 그 다음의 정적은 관객들로 꽉 찬 극장 안을 텅 빈 느낌으로 몰아넣었다.

그래! 이제 외국영화 주제음악에 대해서는 이쯤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괜히 제 풀에 흥분하는 눈먼 자의 감상쯤으로 오인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주 독특한 애국심으로 우리영화의 주제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춰보자.

아무렴 우리영화, 국산영화, 당시 충무로에선 멜로도 아닌 구닥다리 신파영화나 일본영화용어로 도다바다액션영화라고 했던 영화들의 주제가는 니노 로타나 모리스 자르, 프란시스 레이처럼 세련되고 승화된 선율은 아니지만 그 시대 나름의 애환을 아주 절절하게 구성진 이미자의 음색에 실어 관객에게 눈물을 쏟게 했던 우리 된장영화, 남진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비롯해 패티김의 (초우) 최희준의 (하숙생)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거리) 문정숙의 (나는 가야지) 최무룡의 (외나무 다리)

아무렴, 유행가란 영화와 맞물려 영화 주제가가 관객의 귀에 다시 들려 올 때 펠리니의 영원불멸한 고전 (길)에서 젤소미나가 찌그러진 트럼펫으로 잠파노의 구박을 받아가며 불던 그 애절한 선율처럼 하릴없이 비오는 충무로를 서성거리며 애써 추억을 되새김질 하려는 군상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간절한 환청일수 밖에 없지 않을까?!                                                          
(정리 한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