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인어도시’
[리뷰] 연극 ‘인어도시’
  • 박소연 기자
  • 승인 2010.07.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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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된 자들에게 건네진 죽음으로의 초대장

[서울문화투데이=박소연 기자]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그들은 겁쟁이다. 인간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는 그들은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지레 겁을 먹고는 점점 자기 안으로 잠식한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온 몸에 명품을 두르고 아들을 유학까지 보내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사라지지 않는 눈의 비린내와 남편의 외도, 아들의 죽음이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순수했던 영혼은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고, 연이은 자살시도로 자신의 생을 내팽개치기에 이른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건 자신의 ‘죽음’ 뿐이다. 짙게 드리워진 고독의 그림자를 발끝에 달고 위장된 삶을 연명해가던 그들은 결국 한 달 내내 비가 내리는 호스피스 병동 7002호로 숨어든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육신에게 찾아온 죽음의 부름에 선뜻 응하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누군가와 같이 어울려 살고 싶은, 가늘고 길게 산 삶이 창피한,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게 궁금한, 겁 많은 ‘실격된 인간’인 까닭이다. 아프지 않게 꿀꺽, 통째로 삼켜주겠다는 아구의 말을 피해 이들은 여전히 굶주린 아귀처럼 다투며 자신의 넋두리를 찬찬히 쏟아낸다.

이때 어디선가 홀연히 등장한 인어는 그네들에게 모든 걸 홀연히 털어버리고 인어도시로 올 것을 부드럽게 종용한다. 그들의 넋두리를 구구절절 다그치고 보듬으며 인어는 차가운 죽음의 손길을 툭, 내민다. 강 너머 그곳에는 더 이상의 불확실한 생도, 숭고한 희생도, 처절한 투쟁도, 자신에 대한 죄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유리벽 사이로 스며드는 푸른빛의 깊은 고요와 소란한 침묵만이 자리할 뿐이다.

주머니 없는 수의를 입은 채 관처럼 딱딱한 침대에서 일어나 마침내 아구의 뱃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에게 죽음은 과연 영원한 안식을 선사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눈 먼 무당 노파의 말처럼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가면 보이지 않던 것들도 그 속에 있다면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레테의 강’을 연상케 하는 뗏목의 병실 세트와 서늘한 푸른 조명,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백만송이 장미’의 음산한 멜로디가 더해진 인어도시의 풍경은 그로테스크하고도 직설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소함은 일상이라는 수면 아래 잠겨 있었던 낯선 ‘죽음’의 얼굴과 기묘하게 맞물려있다. 느닷없이 찾아온 끝의 기로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헤매다 끝내 강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 그들의 걸음걸음에는 ‘미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생의 애착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그렇기에 인어도시를 향한 그네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묵직하고도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