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혁명’이다
3.1운동은 ‘혁명’이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09.03.0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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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학술포럼서 이현희 교수 주장


“3.1운동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혁명’이라 해야 마땅하다”

지난 28일 천도교 종학대학원 주최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3.1독립운동의 역사적 재조명’ 학술회의에서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이같이 주장하고 조목조목 그 근거를 열거했다.

포럼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 죄로부터 두번 째가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

이교수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서명 순서는 죽음의 순서와 같은 것이었다” 며 “33인 중 서명을 하고도 태화관에서 가진 독립선언서 낭독에 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3.1운동이 단순한 '운동'이 아닌 목숨을 담보한 ‘혁명적 사건’이었다”는 점을 시사했다.

따라서 당시 친일파를 제외한 2천만 백성들이 봉기한 사건으로 이것이야말로 혁명으로서 3.1운동의 위상을 혁명 차원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과 인도의 간디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해외에까지 그 파급력이 대단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또한 이 교수는 프랑스대혁명을 예를 들며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가장 명예롭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혁명도 아닌 ‘대’혁명이라 명명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3.1운동을 민족적 자존에 기반해 ‘민족혁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일제가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선생을 탄압하고 천도교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 당시 300만 천도교인들을 멸족하다 시피 해서 종교적 교세를 약화시켰다”며 교세가 약해진 천도교가 우리독립운동사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교수는 “일제 강점기의 극비문서에서도 당시 조선을 통치하려면 천도교도들의 행동과 활동을 눈여겨 봐야한다고 적시돼 있다” 며 “당시 천도교인들의 신앙은 신앙을 넘어 곧 애국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라고 그 근거를 제시했다.

사진은 독립운동 관련 자료 영상물 중 3.1운동 당시 봉기를 독려하는 인쇄물을 포착한 신승희 일본총독부 형사.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서 손병희 선생이 5천원 (현재가치 5억원상당)을 줌으로써 못본 채 넘어갔다.

또한 이교수는 "3.1운동 이전부터 천도교가 상해임시정부에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여러 증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며 "임시정부를 주도했던 최동호, 신숙, 이근호 등을 파견하는 인적지원은 물론 도산 안창호 선생 등에게 몇 천원(현 수억원)이 지원됐다는 것이 여러 곳에서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그 만큼 천도교 150년 역사가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뒷받침 했다.

이 자리에서 김동환 천도교 교령은 "3.1운동은 90년이 아니라 1910년 손병희 선생이 운동을 준비한 시시점으로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며 따라서 "3.1운동은 90년이 아니라 97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라고 역설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날 또 다른 참석자는 현재 교육과학인적자원부가 추진하고 있는 뉴라이트 교과서가 우리의 독립운동 정신을 왜곡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학계에서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포럼은 윤석산 한양대 교수의 사회로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황선희 상명대 명예교수, 이현희 성신여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김창수 동국대 명예교수, 성주현 부천대 교수, 양성숙 박사(국립경찰청박물관 학예사) 등이 토론자로 나선 가운데, 천도교 관계자를 비롯 독립유공자 후손, 학자 및 일반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해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에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기자 young@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