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바지런한 배우, 오정해
참 바지런한 배우, 오정해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7.22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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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행복한 오정해’입니다”

[서울문화투데이=인터뷰/정리 정지선 기자, 사진 이상정 인턴기자] “전 작품을 하면서 차기작을 미리 고민하고 준비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못돼요. 그저 매순간 충실할 뿐이죠. 설령 작품이 없더라도 소리를 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영현이 엄마니까요.” 그랬다. 오정해는 한 사람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소리꾼이자 배우이며, 라디오진행자인 동시에 교수이며, 아내이면서 엄마, 며느리 그리고 막내딸(오정해는 4남3녀 중 막내다)이다. 바지런하게 살면서도 누구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그가 행복한 삶의 비결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올해로 마흔, 불혹(不惑)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배우라면, 특히 여배우라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할 법하지만 나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단다. 다만 몸이 약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오히려 지금보다 서른아홉이 싫었어요. 뭔가 어중간하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론 나이 먹는 게 싫기도 해요. 제가 나이 들수록 엄마도 늙는 거잖아요. 전 영현이에게도 빨리 크라고 하지 않아요. 아이가 클수록 엄마는 작아지니까요.”

엄마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 없었다. 친정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니 말이다. 고혜정 작가의 <친정엄마>에 이어 <여보, 고마워>도 출연을 결정한 것은 고 작가의 팬이기도 했지만 엄마에 대한 남다른 애정(정서) 때문이다.

“엄마는 지혜로웠고, 절 그렇게 키우셨죠. 항상 믿어주셨거든요. 제가 7남매 중 막내였기 때문에 엄마를 더 애틋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객지생활을 했기 때문에 늘 엄마가 그리웠어요. 엄마 역할이 너무 탐나서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니까요.”

그녀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고 작가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고 작가의 작품은 배우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어요. 작품을 통해 관객들만 감동을 받는 건 아니에요. 배우들도 작품을 하면서 감동을 받죠. 그런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말이에요.(웃음) 고 작가와 작품을 함께 하기 위해 제가 먼저 연락했어요. 그 작품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거든요. <여보, 고마워>와 같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고 작가의 작품 출연제의가 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저 없이,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하겠노라 거듭 강조한 그녀였다.

그녀는 요즘 <여보, 고마워>의 슈퍼맘 ‘미영’역에 푹 빠져있다. 작년에도 해본 역할이지만 그래도 매 순간 무대에 설 때마다 첫 무대에 선다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했다. 슈퍼맘을 연기하면서 그 심정을 이해하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슈퍼맘이 아니란다.

<여보, 고마워> 공연 중에서 친정엄마(성병숙)와 딸(오정해)이 이야기 나누는 장면

“전 엄밀히 말하면 슈퍼맘도 아니에요. 남편이 많이 도와주거든요. 그저 감사하죠. 여자들이 밖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집안이 편안해야 하잖아요. 물론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요. 남편은 무엇이든지 제가 하고 싶다는 일을 지지해줬어요. 단, 당신이 싫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좋다고 했어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지만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도이 편해요. 저는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까지 가져가진 않아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렇게 해왔기에 지금까지도 다양한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들인 영현이도 예외는 아니다. 친구 같은 엄마인 동시에 필요할 때는 일침을 가하고 스스로가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게 그녀의 몫이다. “영현이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힘에 부치는지 말수가 부쩍 줄더라고요. 하루는 영현이랑 이야기를 나눴죠. ‘엄마랑 아빠가 시킨 일이 아니라 너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야. 네가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뭐라고 말할 사람은 없어. 엄마와 아빠 역시 밖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서는 내색하지 않잖아. 너도 힘들어하는 모습 엄마랑 아빠한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넘기면 나중에는 정말 고치기 어렵거든요. 잘못했을 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짚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영현이에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에요.” 이것이 바로 그녀의 교육철학이기도 했다.

이 시대는 특히, 엄마들에게 가혹하리만큼 냉혹하다.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다. 왕도는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가정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달라요. 제 경우에는 시간 날 때마다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어제도 시어머니와 점심을 먹고, 쇼핑했거든요. 주말에는 남편, 영현이와 함께 심야영화를 보고 아침으로 브런치를 먹죠. 가족 모두 영화광이거든요. 브런치를 먹으면서는 한주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눠요. 가족과의 교감 없이는 충분한 이해를 얻어내기 어렵거든요. 자주 보진 못해도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을 알차고, 부지런하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방법 아닐까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배우 ‘오정해’하면 영화 서편제를 떠올린다. 그녀 인생에서 서편제는, 그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두 번째 이름을 준 작품’이다. 올 가을, 서편제가 뮤지컬로 제작된다. 그녀는 잘됐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기대감을 드러냈다.

“뮤지컬로 제작된 서편제가 흥행에 성공해 세계무대로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영화와는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영상미에 대한 기대치는 갖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요즘의 뮤지컬 주요 관객층이 영화를 봤던 연령층이 아니기 때문에 큰 걱정은 되지 않지만요. 무엇보다 배우 서범석 씨의 연기가 워낙 좋기 때문에 걱정 없이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지난 6월 초 열린 세계최대규모의 국제기록전 ‘2010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서 기록문화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기록문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냐고 물었더니 홍보대사라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 했다.

“홍보대사라는 게 이름만 걸 뿐, 특별한 활동이 없잖아요.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내용을 듣다보니 기록이라는 게 판소리와도 관련이 있겠다 싶더라고요. 판소리를 후세에 전하는 것 역시 기록으로 남아야 가능하니까요. 기록을 통해 우리의 전통을 남긴다고 생각하니 개인적으로는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죠.”


아직도 빡빡한 스케줄을 자랑하는(?) 그녀는 국악방송에서 매일 아침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창호에 드린 햇살’을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진행은 알다시피 매우 성실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하루에도 몇 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하는 그녀로서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시간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첫 방송날, 눈이 아주 많이 내렸거든요.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 얼마나 일찍 출발했는지 방송국에 도착해보니 새벽 4시였어요.(웃음) 라디오 진행한다고 했을 때 남편이 처음으로 반대하더라고요. 잠도 많이 못잘 뿐 아니라 얼굴 볼 시간도 줄테니까요. 고민도 했지만 결국은 시작했고, 지금은 일찍 일어나니까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어 좋아요” 잠은 죽으면 평생 잘 수 있는 게 아니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배우이기 이전에 그녀는 소리꾼이다. 국악에 대한 애정이 뼈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은 몇 마디 나눠보지 않더라고 느껴졌다. ‘국악’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들에게 무겁게 다가가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국악, 특히 판소리는 인내를 의미하죠. 힘든 거,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쉽게 이룰 수 없고, 힘들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그 과정이 마음에 들어요. 연습한 시간과 노력만큼 소리의 깊이랄까요. 판소리 무대가 세계로 뻗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일조하고 싶고요. 우리 소리만의 깊은 맛을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소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 준비된 사람만이 소리를 하고, 그 소리를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대로 (소리를) 할 수 없다면 안하느니만 못하죠. 간혹 이건 아니다 싶은 소리공연을 접하기도 하는데, 정말 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활발하게 활동해야 관객들도 국악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어요. 전에는 소리하면 정말 어렵게 배웠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누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참고 견디려 하나요. 소리의 끼를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면 능력을 잘 키워낼 수 있도록 아껴줘야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녀는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라고 했다.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순간도 행복하고, 감사해요.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을 살다보면 한 달이, 일 년이 행복하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요. 결과를 쫓다보니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곤 하죠. 과정 자체를 즐기면 행복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 말하고 있는 바로 그 대목, 그녀는 그저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그녀의 꿈, 아주 의미심장한 꿈은 바로 ‘행복한 오정해’다.

“제가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나눠줄 수 있죠. 살다보면 물론 하기싫은 일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잖아요. 전 그 일부터 먼저 해치워요. 화가 날 때는 그냥 화를 내고요. 전 후회는 잘 안하는 편이에요. 제 신조가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자’거든요. 어중간하고, 찝찝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부지런해야 하고요.” 부지런한다 못해 바지런한 배우 오정해. 행복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갖고 사는 그녀의 어느 분야에서든 200%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 바지런함’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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