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조각보라고 우습게 여기면 안 돼”
“작은 조각보라고 우습게 여기면 안 돼”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3.0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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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섬유·퀼트박물관 김순희 관장


‘조각보 하나로 세계를 누빈다고? 코웃음 치지 마라. 웃을 일이 아니다.
사라져 가는 한국 전통 조각보 기법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승하고 한국섬유예술의 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98년 10월 국내 최초의 섬유예술박물관을 세웠다.
한국 전통섬유예술품 보존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해외 전통예술 작품과의 국제친선교류전을 통해 활발한 국제 문화교류의 장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아 2007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10회 전국박물관인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한국섬유예술을 세계화를 위해 직접 뛰고 있는 초전섬유·퀼트박물관 김순희 관장의 이야기다.


1955년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김순희 관장의 편물 및 바느질과의 인연은 1957년 9월 서울 충무로에 제일편물이란 가게를 열면서 시작됐다.

김관장은 “우연히 미국에 갔다가 우리 조각보와 똑같은 것을 봤는데 아미쉬 퀼트(Amish Quit)였다. 외국에서는 이미 퀼트의 미학적 가치를 알고, 퀼트 전시회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이는데 우리는 아니었다. 조각보는 6.25를 거치면서 없어지고 있고, 젊은 사람들이 소중히 하지 않고 다 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며 박물관 설립 배경으로 말문을 열었다.


‘퀼트’는 우리나라말로 쉽게 말해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이나 울 같은 것을 넣어 ‘누빈다’는 뜻.
김관장은 “우리 속옷도 누벼 입었다”며 “100년 전, 속옷을 누빌 때 엉덩이 겹치는 부분은 2센티보다 더 넓게 4센티로 해서 편안하게 했다. 옛날 기생들의 속적삼이나 속바지에 반했다고 하지 않나. 그만큼 섹시하게 만들었다. 여름 고쟁이 허리부분 돌아가면서 둥그렇게 원을 파서 통풍이 되게 만들었다”며 “우리 조상의 지혜와 센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전통 조각보는 외국의 퀼트와는 소재나 바느질 뿐 아니라 색감 면에서도 그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나 외국에서 아낌없는 격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김관장은 “외국에서는 대부분 면을 소재로 쓰는데, 한국 전통조각보는 봄과 가을에는 면, 여름에는 모시와 삼베, 겨울에는 따뜻한 공단을 사용해 조각보에 사계절을 담아냈다”며, “이는 조각보 뿐 아니라 우리의 누빈 옷, 이불, 보자기, 주머니 등에서도 알 수 있다. 조각보와 퀼트는 이어간다는 것에서 같은 것”고 설명했다.

또한 “세 가지의 각기 다른 바느질 기법으로 아주 조그만 것까지 조각을 잇는 섬세함에 외국인들이 놀란다. 특히 천연재료로 물들여 은은한 파스텔 톤 빛을 내는 천은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한국 전통색상인 오방색(또는 오방정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전통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은 6·25 피난 당시에도 딸이 수놓은 조각보를 장롱 밑에 소중히 간직해 지금까지 소장할 수 있게 해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다.

이렇듯 우리 전통 바느질 기법으로 만든 조각보의 미학적 가치는 알리기 위해 시작한 박물관 운영은 쉽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갈수록 힘들었다.

하지만 64년도 일본에서 열린 패션쇼에 옥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 입고 갈 정도로 우리의 것에 대한 애정과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려는 그녀이기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 언어 안 통해도 바느질은 국경이 없다

김순희 관장은 “바느질은 누구나 다 했던 거다. 쉽게 생각하고 작은 소품부터 시작하면 면이기 때문에 금방 할 수 있어 재미 붙일 수 있다”며 일반인들이 퀼트와 조금 더 쉽게 친해지게 하기위해 ‘평생학습체험장’을 열었다.

자기가 손수 만든 것이라 소중히 다룰 것이라는 생각에 학생들에게 휴지, 생리대 등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를 하나씩 만들도록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의과대에 가기 위해 바느질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도 꽤 있단다.

“정말 금방 하기 때문에 2개씩 만들어 가는 아이들도 있다. 남자 아이들이 더 잘한다. 의외로 바느질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 뿌듯하다”며 웃었다.

김관장은 무엇보다도 학교 선생들에게 바느질 배우도록 적극 권유하고 있다. 선생이 배워야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평생학습체험장 뿐만 아니라 상설전, 이채로운 전시기획, 섬유 및 퀼트 콘테스트를 개최 등 끊이지 않는 노력 덕분에 김순희 관장은 2000년 대한국민 편물명장 1호로 선정됐고, 2007년에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체험학습 감사장을 받았다.

◆ ‘국제친선문화교류’ 중대한 성과

작년에 10주년을 맞은 박물관은 그동안 국내외 전시회는 100번을 넘어섰다. 6·7월에는 외국에서, 9·10월은 국내에서 1년에 평균 10개 정도의 전시회를 열었고, 그 가운데 2/3를 그녀가 직접 기획했다. 박물관은 지난 10년동안 유럽 15개 나라에서 연 전시회로 외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새로운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외의 섬유예술작가들에게 해외 각국의 독특한 섬유예술을 소개해 새로운 기법과 아이디어를 얻음과 동시에 폭넓은 안목, 국제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전시회는 ‘국제친선문화교류’라는 성과를 이룩했다.

김관장은 “언어는 통일이 안 되도 바느질은 국경이 없다. 조그만 ‘바늘 하나’로 만든 조각보로 세계와 소통하고 있다”며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이어 “한국말 배우면서 퀼트 시작한 버시바우 대사 부인을 만나서 참 반가웠다. 2008년부터 10월에 ‘유엔의 날’을 만들어 외국 대사부인들의 작품이나 각 나라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며 “이는 또 하나의 크나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욕심 안 부리고 1년에 1, 2개의 외국전을 할 것”이라며, 올해에는 두바이,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박물관 개관 11주년 기념전을 열고 박물관내에서도 3~4개의 초대전을 열 계획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