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琴 et 이마쥬의 가야금 황병기
[리뷰] 琴 et 이마쥬의 가야금 황병기
  • 박소연 기자
  • 승인 2010.08.02 21: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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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록 바람의 영롱한 여음(余音), 뮤지끄 et 이마주 콘서트 시리즈

[서울문화투데이=박소연 기자] 여음지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손길은 12현 가야금 위를 사뿐히 즈려밟는다.

현의 울림은 수색의 무늬처럼 고요한 문양을 쉼 없이 만들어낸다. 원 문양 위에 겹쳐지는 또 다른 원 문양, 이내 겹쳐지고 겹쳐지기를 반복해 마침내 하나로 아우러지는 완벽한 음색. 그 음색 사이에는 여러 개의 실바람이 스치듯 지나쳐간다. 바람이 불어온 곳은 분명치 않다. 이 바람들은 대나무 숲에 조용히 이는 바람일수도, 푸르른 초목의 이파리를 장난스레 흔드는 바람일수도, 아기자기한 들꽃 사이에 숨어있는 바람일수도 있다. 바람들은 가야금의 현을 타고 운율에 맞춰진 절제된 자유로움으로 선율의 마디마디를 누빈다.

명징한 음색은 때론 엇갈린 채 폭풍처럼 휘몰아치다가 고요한 침묵 속으로 잦아든다. 허나 이 양면성은 부담스럽지도 혼란스럽지도 않다. 놀라운 균형감각은 변주에 변주를 거듭해 끝내 하나의 소실점을 이끌어내고야 만다. 각 악장의 변주들은 원래의 음으로 돌아갈 듯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원래의 음으로부터 벗어날 듯 벗어나지 않는다. 직관적이나 이성적이고, 무거우나 가볍다. 장구의 뒷따른 발걸음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결코 늦춰지지 않는다. 장구는 가야금과 거문고의 보폭을 탄탄히 지탱해주며 음을 채워내고 비워내기를 반복한다.

거문고의 울림은 일순의 망설임 없이 현 위를 노닌다. 술대로부터 튕겨져 나온 음은 바람을 타고 낙엽 속으로 하나둘 스러진다. 스러진 음들은 바스라진 낙엽들 사이에서 조심스런 마찰음을 내며 잦은몰이로 결말을 향해 은근하게 치닫는다.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대금의 가락은 낙엽 위로 한 줄기 비친 청량한 가을 햇살처럼 정적이고도 유쾌하다. 바람 사이를 누비며 수풀을 유영하던 대금은 햇살 머금은 낙엽들의 두런거림을 음감으로 숨김없이 되살려낸다.

이들의 남은 소리는 대들보를 휘감은 채 무대를 넘어 객석을 가득 메운다. 여음요량(余音绕梁). 노자·장자와 함께 도가사상의 고전으로 널리 읽힌 열자의 탕문(湯問)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한아라는 제나라 동쪽 사람이 양식이 떨어져 옹문을 지날 때, 노래를 팔아 끼니를 해결했고, 이제 떠나가버렸으니 그 남겨진 노랫소리가 대들보를 휘감으며, 삼일 동안이나 끊이질 않았다는 이야기. 여음요량은 ‘남은 소리가 대들보를 휘감다’는 비유의 표현으로 노랫소리가 아름다워 머릿속에 맴돈다는, 혹은 아름다운 노래처럼 깊은 인상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들의 영롱한 여음(余音)은 명징한 잔향으로 남아 여음(餘音)으로 단단히 귓가에 내려앉았다.

재미없는 것이 진짜 재밌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재미없는 공연을 보려고 수고스레 발걸음을 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덧대는 황병기 명인의 눈빛은 그 자신의 연주만큼이나 맑게 빛났다. 별다른 고민 없이 아플 때면 아파했고,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이라고 살아왔다는 그의 말에서 가야금의 기나긴 여음이 물안개처럼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