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지원인가, 특혜인가
예술 지원인가, 특혜인가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08.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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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의 병역논란, 피할 수 없는 딜레마

[서울문화투데이=성열한 기자]최근 월드컵축구 16강 진출을 이뤄낸 후 병역 혜택에 대한 찬반 논란이 또 한번 일어났다.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의 성과를 이뤄냈을 때도 병역 혜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체육계뿐만 아니라 예술계에서도 언제나 병역 문제는 논란의 중심이었다.

특히, 지난해 문화체육 관광부가 무용, 음악 국내 콩쿠르 우승자에 대한 병역 특례를 폐지한, 개정 병역법이 시행된 이후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유인촌 (전)문화체육부장관 취임 이후 국내 개최 국제콩쿠르가 병역 혜택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병역 혜택 남발’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코리아국제무용콩쿠르 참가자

◆병역법 개정안이 몰고 온 여파

체육계와 예술계에서 본격적으로 병역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1월 1일부터 병역법 시행령의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부터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이라 함은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2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내예술경연대회(국악 등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대회에 한한다)에서 1위로 입상한 사람에 한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추천한다.(병역법 시행령 제49조)’

이러한 내용의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국내 콩쿠르를 통해 병역 혜택을 받아오던 음악인들과 무용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 무용계의 현대무용과 발레 분야에서 개정안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더욱 적극적이었다.

병역법 개정안이 시행된 보름 뒤인 2008년 1월 15일 김복희 한국무용협회장을 대표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최성이 한국발레협회장, 한선숙 한국현대무용협회장, 김긍수 남성무용포럼 대표, 조윤라 한국발레연구회 이사장 등이 참여한 ‘병역법 재개정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개정안 수정을 적극 요청했다.

이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단순히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 현대무용과 발레에서 남자 무용수들의 기근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역 혜택마저 축소된다면 국내 무용계가 입을 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때문에 국회의 정병국 의원을 비롯한 문화관광위원회 의원들도 ‘개정 병역법은 한국 무용계를 통째로 황폐화 할 수 있는 위험한 조치이므로 즉각 시정돼야 한다’며 병역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국내 개최 국제 콩쿠르에서의 병역혜택 문제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로 병역법 개정안 시행 1년 후인 2009년 12월 1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유능한 현대무용 분야 남성무용수의 양성을 위해 병무청과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국제대회를 추가로 인정키로 협의했다고 밝혔다.

추가로 인정된 대회는 ‘서울국제무용콩쿠르’, ‘독일베를린국제무용대회(Berlin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TANZOL YMP Competition)’, ‘그리스헬라스국제무용대회’(International Dance Competiti on- Hellas) 등 현대무용 분야 3개 대회와 발레 분야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등 4개 대회이다. 이로써 국제무용 분야 병역특례 인정 대회는 발레 분야 14개 대회를 포함 18개 대회가 됐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국내 개최 국제 콩쿠르가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4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아무용콩쿠르와 47년 동안 무용인들과 함께해온 한국무용협회콩쿠르에서 병역혜택을 박탈된지 1년도 되지 않아 국내 개최 국제 콩쿠르로 그 혜택이 넘어간 모양새가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조치로 2008년과 2009년 수상자까지 소급 적용돼 5명이 병역 혜택을 보게 됐다.

더불어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는 출범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대회로서 ‘국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전통과 역사를 가진 국내 우수 콩쿠르인 동아무용콩쿠르와 한국무용협회콩쿠르 보다 나은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콩쿠르에 앞서 대기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남자 무용수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원인은 병역혜택을 주기 위한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춘 대회인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병역혜택이 가능한 국제 콩쿠르의 조건은 유네스코 CID(Conseil International de la Dance/ International Dance Council)또는 국제극예술협회(Intercational Dance Committee)에 가입된 대회이거나 유네스코에 가입되지 않았으나, 5회 이상 개최된 대회로서 참가국이 9개국 이상 경우이다.

하지만 유네스코CID는 ‘유네스코 정신’에 입각해 유네스코를 후원하는 개인이나 단체 또는 각종 대회가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고, 콩쿠르의 경우에는 유네스코의 이미지를 손상하지 않는 대회라면 모두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조건만으로 콩쿠르의 옥석을 가리기에 충분한 것인지 의문을 자아낸다.

최근 개최된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조직위원장 김복희)는 올해 처음으로 출범한 콩쿠르로, 국내뿐만이 아니라 국제를 통틀어 현대무용을 전문으로 하는 최초의 국제 현대무용 콩쿠르라는 이름을 내걸어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김복희 조직위원장(한국무용협회 회장)은 지난달 29일에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국제 콩쿠르의 국내 콩쿠르화를 막고자 국내 예선 참가자 21명, 국외 참가자 15명으로 국내와 국외 참여율을 비슷하게 맞췄다”며 코리아국제무용콩쿠르를 개최하는 우리나라가 현대무용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하지만 올해 처음 개최되는 콩쿠르에 벌써 병역혜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병역 혜택=무용계의 발전?!

병무청 관계자는 “올해 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지시로 코리아현대무용콩쿠르와 병무청이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를 체결해 병역 특례 행사로 지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코리아현대무용콩쿠르에 병역혜택이 주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의 김정희 사무국장은 “병역혜택에 대한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병무청으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에는 병역혜택이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안다”며 “처음 치뤄지는 대회에서 병역으로 논란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세계최초의 현대무용만을 중심으로 한 콩쿠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좀 더 내실 있는 대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병역법 개정안 이전의 병역 혜택을 받고 있는 무용수는 연간 10여 명 정도로, 병역 혜택을 받는 무용수는 4주 훈련 뒤 평소 자신이 속해 있던 기관(학교나 예술단체)에서 34개월간 활동할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홍승엽 단장을 비롯해 이원국 발레단의 이원국 단장, 김긍수 발레단의 김긍수 단장,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용걸 등이 콩쿠르를 통해 병역혜택을 받았고, 이들이 우리 무용계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부분의 발레리노도 병역혜택을 받은 콩쿠르 수상자로 구성돼 있다. 때문에 남자 무용수들은 더욱 콩쿠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무용수들은 외국 무용수에 비해 부족한 인프라뿐만 아니라 신체 조건의 차이 때문에 당장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개최되는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또한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10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야 해,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예술가에게 좀 더 유리한 조건이라는 지적도 있다. 무용계에서 국내 개최 국제 콩쿠르를 개최해 병역혜택을 얻으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역법 개정안에 큰 반발을 보였던 무용계 인사들

◆형평성과 공정성 사이 콩쿠르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콩쿠르의 병역혜택에 대해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 분야에 대한 특혜는 체육계를 비롯해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대중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국내 대회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국제 대회를 인정하는 것이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음악계의 군악대와 같이 무용계에 ‘군무대’를 창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못하다. 병무청에서는 “군무대 창설은 국방부 차원에서 진행돼야 할 이야기이지만 현재 아무 것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홍승엽 단장은 “예전부터 군무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지만, 그것은 무용계에서만 논의되는 이야기들이지 실질적으로 병무청이나 국방부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며 “현재 무용계에서는 남자 무용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한사람이라도 병역혜택을 받아야 되는 입장이다. 병무청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 콩쿠르를 만들어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려는 노력으로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병역혜택을 추진하는 것도 무용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예술계와 체육계 병역 혜택에 대한 논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다른 기조를 맞이하고 있다. 때문에 유인촌 전 장관의 바통을 이어 받는 신재민 내정자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병역 문제에 대해 예술계와 체육계가 큰 혼선을 겪은 것은, 관련단체와 별다른 토론이나 의견교환 없이 국무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병역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적절한 절차와 검증을 통해 신중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술계에서도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서 충분한 검증 없이 ‘당근’만을 갈구한다면 대중들의 ‘채찍’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