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우리가 부르는 황국의 노래
경술국치 100년, 우리가 부르는 황국의 노래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8.12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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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흥얼거림 속에 뿌리박힌 일제 잔재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어린 시절 우리가 흔히 입버릇처럼 부르던 노래들. 그저 순수한 우리의 동요로만 알았던 이 노래들이 모두 일제의 잔재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위에 언급한 세 곡의 동요는 ‘요나누키(四七拔き)’라는 근대 일본 음악의 장음계를 사용한다. 즉, 전형적인 일본 장단인 셈이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순수한 아이들의 입에서 일제 정서가 담긴 동요를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동요들은 어떠한가? ‘우리집에 왜 왔니’, ‘꼬마야 꼬마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요가 일본에서 건너왔다.

이는 일제가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침략을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이 일본 불교를 보내 소학교와 유치원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일본인 교사들이 어린이들에게 일본민요와 동요를 가르쳐 일본식 리듬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이것이 해방 이후에도 굳어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동요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식 동요의 특징인 2박자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원곡에 가사만 한국식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일본 동요를 부르게 한 것은 어린 아이들부터 제국주의의 표석을 만들려는 일본의 기만주의 정책의 일부분이었다. 문제는 동요는 그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일본속국의 국민으로서’ 한국인을 내선일체(內鮮一體) 하기위해 음악, 예술에 일본인을 투입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트로트’의 효시가 된다. 트로트의 초시가 일본의 대중가요 중 하나의 장르인 ‘엔카’라는 사실은 어느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엔카는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나 정서에 기초한 장르로, 2박자로 진행되는 특징을 갖는다.

이 엔카는 1960년 ‘왜색가요(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일본 속악의 음계를 사용한 노래)금지’가 내려진 후 불리지 않았다. 하지만 남북분단 이후 38선의 비극은 우리 국민을 자연히 비탄에 빠져들게 했고, 넋두리 같은 재래식 가요가 대중의 심신을 달래주던 세월 속에서 다시 엔카의 부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왜색가요라 하여 금지됐던 1960년대 ‘동백아가씨’, 1970년대 ‘돌아와요 부산항에’, 1980년대 ‘비 내리는 영동교’ 등 엔카 색채가 짙은 곡들이 불리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친일 작곡가들의 노래를 배척하긴 커녕 너무나 자랑스럽게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예전 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때만 해도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를 부른 것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현제명은 친일 활동에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현제명은 홍난파와 함께 일제 중반까지 양악으로 '민족개량운동'을 전개하다 후반부터는 음악과 관련한 모든 조선 총독부의 관제 친일단체에서 지도자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대표적 인물이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희망의 나라’란 대동화공영을 이룰 일본제국주의를 일컫는다. 노랫말에서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과 같이 바다건너 희망의 나라로 가자는 은유적 표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영토 문제나 야스쿠니 문제 등 눈에 띄는 반일 외교로 대표됐던 노무현 정부의 신호탄을 알리던 그날, 대표적 친일 음악가의 노래가 취임식에 울려퍼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립투사를 연상 시킨다며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선구자’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노래 가사 중에 등장하는 ‘선구자’란 독립운동을 하는 선구자가 아니다. 바로 만주국의 건국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선구자’라 지칭 한 것이다. 당시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선구자’가 아닌 ‘산사람’이라고 불렀다.

하나의 용어가 제대로 의미도 파악되지 않은 채 독립투사를 지칭하는지 친일파를 지칭하는지 불투명하게 쓰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밖에도 독도를 사랑하는 많은 국민들이 부르는 ‘독도는 우리 땅’은 어떠한가. 반일 감정이 생길 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부르는 스테디셀러인 이 노래의 형식 역시 ‘엔카’에서 유래 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반일을 외치면서 일본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색이 짙은 형식의 노래가 불려지면 가사가 애국·호국을 외친들, 음악의 감각적 정서는 일제의 것에서 탈피하지 못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도 일본의 잔재를 털어내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어, 상황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압록강 행진곡’을 교과서에 등재시키는데 성공했는데, 이 ‘압록강 행진곡'은 1940년대 독립운동을 하던 광복군들이 불렀던 곡이다. 가사에 끓는 애국심이 담겨져 있음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압록강 행진곡 악보

가요에도 애국심을 위한 노래가 제작되고 있다. 그 효시는 2005년 8월에 발매한 ‘광복60년 독립군가 다시 부르기’라는 앨범이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국민의 독립심 고취를 위해 참여했다. 특히, 크라잉넛이 부른 ‘독립군가’는 많은 네티즌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조금만 관심을 갖고 생각해도 일제의 잔재들은 쉽게 제거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문화를 재건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내용들이 매스컴에 나올 때마다 ‘그런 것도 있었구나’하며 잠깐의 관심을 갖고 흥분하기만 할 뿐, 다시금 똑같은 노래를 흥얼거릴 뿐이다. ‘내가 먼저’다. 나 하나의 요동이 4천 8백 만의 사고를 바꿀 수 있다.

아예 모두 빼내라는 것이 아니다. 동요의 경우, 이미 국민들의 정서에 녹아 있기 때문에 단지 지우는 것으로는 국민들의 공유 문화를 없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에서 시작했을 동요라도 우리의 노래가 됐으면 우리 것이라고 새롭게 정의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바뀔 것은 바뀌어 ‘독도는 우리 땅’과 같이 반일 감정을 내세우며 일제 양식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러니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문득, 지난 2008년 10월 민족문제연구소 경북북부지회 주관으로 열렸던 중앙대 노동은 교수의 음악 강연회에서 강연회가 끝난 후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노동은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애국가가 있는 ‘한국환상곡’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국환상곡’은 만주와 일본제국을 찬양하는 ‘만주환상곡’의 핵심적인 주요 주제 두 개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애국가가 만들어 질 때까지 불러야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일들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