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 박정수/미술평론가, 갤러리스트
  • 승인 2010.08.12 13: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니 뭐해! 멸치 똥이라도

 

 

박정수/미술평론가, 갤러리스트
세종대학교 서양화과.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예술학 전공) 졸업.
현재는 갤러리바이올렛 관장, 현대미술경영연구소 소장으로 미술교양 강의와 화가 프로모션, 전시 기획, 글쓰기, 미술재테크 강연 등으로 활동 중이다.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미술 투자 감상”의 저자

아내가 접대용 요리하는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서 멍 때리면 그 즉시 말 화살이 뒤통수를 때린다.

“지금 뭐해! 일루와서 멸치 똥이라도 까”라며 잠시도 그냥 두지 않는다. 화장실 변기 고치는 신랑은 아내에게 수많은 심부름을 시킨다. “몽키스페너 좀 줘, 거기 있자너. 오리 주둥이 같이 생긴 거. 어휴.” 같은 하늘아래 사는 부부치고 자기가 일할 때 상대가 노는 꼴을 못 본다. 이렇듯 많은 부부들이 비슷한 성향의 모습을 지니듯이 미술계도 비슷해 보인다.

누가 어떤 그림으로 돈 좀 벌었다 싶으면 비슷한 그림들이 무지하게 양산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부부와는 다른 조건이 자리한다.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과학적 이론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만 비슷한 상황이 일치되는 사회현상을 '공시성(共時性, Synchronicity)이라 하였다.

미술계의 팝아트도 그러하다. 지난 칼럼에서 대중예술에 대해 말한바와 같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팝아트는 비슷비슷한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누가 누구를 따라한 따라쟁이가 아니다. 개그맨 장동민씨가 요즘 미술계를 종횡하는 팝아트를 봤다면 이랬을지도...“그까이꺼 팝아트 그거 대에충~ 눈 그리고 입 벌리면 마릴린 먼로고, 그까이꺼 대추웅~ 빨간 손톱의 손으로 아래턱 감싸 쥐고 눈물방울 그려대면 행복한 눈물인 걸 뭘. 만화 주인공이라면 환장하게 그려대면 되는 걸 뭘. 그까이꺼”

그림이 너무 쉬워졌다고들 한다. 만화주인공을 따라 그려놓고 팝이란다. 너무나 익숙하다. 익숙하다 못해 대충 그려도 누구의 얼굴이고 적당히 버무려도 만화주인공이 된다. 잘 그릴 필요도 없다. 데포름(형태변형, Deform)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어느 화가가 남의 그림을 보고 베낄까. 화가들의 자존심 장난이다. 어느 전시장에서 ‘이 그림 누구 그림과 비슷하다’는 말만 나와도 속 뒤집어진다. 따라 그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땅이 좁기 때문에 융이 말한 ‘공시성’지나칠 정도로 많이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그 그림이 그거 같고, 화가는 많은데 알고 있는 작품은 별로 없으니 이것 또한 모순이다. 예술 활동 하는 화가도 많고, 그림을 구매한 미술애호가도 많다. 그림이 많으니 그림을 팔려는 사람도 많고, 유명한 화가도 많으니 그림 값도 비싸다. 학번 동기나 후배 그림 가격이 얼마이니 자신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도 ‘시대의 공시성’으로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매입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화가는 대한민국 최고 유명한 예술가이다. 소장 작품의 화가를 잘 모르겠다고 하면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국선(국전, 일반인들은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입선 작간데 모르세요?” 입안에서 맴돈다. ‘저기요. 전국단위 공모전이 1년에 수십 개구요. 입선이상은 수백 명이 넘어요. 거짓말 보태면 수천 명입니다’ 정말 당혹스럽다. 그래서 그림을 살 때 아는 작가를 멀리하라고 권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작가가 최고의 화가라 믿어버린다. 그러한 경향의 작품만 위대한 예술이다.

‘공시성’에 의한 비슷한 경향의 작품은 각기의 이념이 있다. 이념까지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까이꺼 대충 산 그리고 하늘 그리면 되는 거지 뭐… 미술 이란게 별건가. 그까이꺼 대에충 화투장 더덕더덕 붙이면 예술 되는 거 뭘…’

예술은 쉬울지 몰라도 예술작품은 녹녹치 않다. 대충 그려낸 작품이 수백만 원 수천만 원에 팔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가는 사람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