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 & 허황옥, 신분이 흔들리다
김수로 & 허황옥, 신분이 흔들리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8.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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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의 '역사 왜곡'에 딴지를 걸다

가야국(伽倻國)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 ?~199년)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아직 나라가 형성되지 않았던 때 가락지역에 여러 부족주민들이 촌락단위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겐 자기들을 하나로 묶어 잘 살게 해 줄 왕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서기42년 3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은 즉, 구지봉(龜旨峰)에 올라 흙을 파며 노래를 부르면 새 임금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가락지역 9간(干)이하 수백 명이 봉우리에 올라 하늘에 제사지낸 후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그랬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 둥근 황금색의 알이 6개가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사내아이들이 태어났고, 그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한 이가 김수로였다. 주민들은 그를 왕으로 받들었고, 다른 아이들도 각각 5가야의 왕이 됐다. 수로는 이후 도읍을 정하고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며 천신의 명으로 배를 타고 건너 온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黃玉, 33년~189년)을 왕비로 맞았다.

학자들은 이 설화를 놓고,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6개의 황금알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선진문명을 가진 민족이 북방에서 왔다는 것이며, 9간의 사람들이 김수로와 아이들을 왕으로 받든 것은 토착세력들이 선진문명을 보고 놀란 나머지 그들을 별 저항없이 받아들여 함께 살게 됐다는 것이다.

허황옥 역시 가지고 온 물류나 아름다운 외모와 품격있는 행동을 매개로 어렵지 않게 토착민들에게 왕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란 추정이다. 이로 보아 김수로왕과 허황옥은 일단 보통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는 신분상의 고귀함을 지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의 신분 문제를 놓고 요즘 소란이 벌어졌다. MBC 주말드라마 '김수로'가 역사를 왜곡했다며, 수로왕과 허황후의 후손인 김해 김씨 문중과 김해 허씨 문중에서 드라마 방영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최근 법원에 낸 것이다.

이들을 대표하는 가락종친회는 "기록이 부족한 상태에서 드라마의 모든 것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다"며 반발했다.

청동기 시대였던 당시에 철을 다룰 줄 아는 선진문명 유입을 설정하다보니 '천신'과 '염사치'라는 인물등장이 필요했으며, 수로왕은 뜬금없이 배를 만들어야 하는 '천민'으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드라마의 대부분은 거의 80~90%가 허구일 때가 많다.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고, 작가는 어떻게든 탄탄한 구성과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남녀 사랑이야기 등)로 시청자들을 잡아 묶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는 되지만 문제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책 읽기, 특히 역사책 읽기나 역사공부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 대부분은 책보다는 TV드라마 보기를 좋아하는데, 역사드라마의 경우 허구인 내용을 사실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80~90%가 허구인 역사드라마라 하더라도 시청하는 국민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게 되며, 허구성을 분별하고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드라마의 마력이다. 드라마 '김수로'를 둘러싼 갈등도 이런 범주내에서 후손인 종친회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김수로와 허황후의 신분은 분명히 고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가는 온갖 간난신고를 이기고 나라를 세우는 '위대한 수로왕'을 표현하고 싶었을 터이다. 하지만 역사드라마의 경우 너무나 분명한 사실에 대한 큰 왜곡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교훈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반 국민들은 그렇거나 말거나 그 드라마를 보며,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흥미를 추구하는 드라마라 하더라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