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메세나는 선택이 아닌 생존전략
기업메세나는 선택이 아닌 생존전략
  • 최진용/국악지음 한국문화예술경영연구소 소장
  • 승인 2010.08.12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기업인에 보내는 제안

3년 전 내가 살고 있는 종로구에 소재하는 D그룹 회장님께 건의서를 올린 일이 있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등 예술 활동을 하는 40여명의 친구들과 공동명의로 보낸 정중한 건의서로 접수받았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끝내 어떤 형태로든(전화, 메일, 편지 등) 회신을 받지 못했다.

기업과 고객과의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마케팅과 홍보의 한 방편으로도 큰 역할을 하는데 세계적 수준의 대기업에서 회신이 없다는 것이 몹시 서운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재차 건의를 할까 하다 정부나 공기업도 아닌 민간 기업이라 참고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혹시 우리 건의가 기업에 부당한 또는 지나친 요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나 문화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D그룹 앞을 지나게 될 때마다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아쉬워 다시 공개적으로 제언하고자 한다. 그 때 보낸 건의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사항이다. 첫 번째 건의는 조계사 건너편(D그룹 건물의 후문)에서 인사동(회사 정문)쪽으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문을 개방했으면 좋겠다는 건의였다.

예전에 조계사 건너편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던 미술회관이 있었고 인사동으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기업이 자리 잡고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 다니기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심리적으로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인사동의 숨통이 꽉 막혀 있는 답답함과 그로인한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문제는 이 문을 개방해도 기업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너무 소박한 판단인지 모르겠지만)으로, 또는 오히려 자유롭게 개방함으로써 기업에 더 친근감을 갖게 하거나 기업홍보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개방을 건의 드렸던 것이다.

두 번째는 조계사 쪽으로 테니스장이 있는데 공이 안 넘어가도록 그물망을 치고 큰 쇠파이프를 세워 놓았는데 그 쇠파이프가 미관상 좋지 않으니 개선해달라는 비교적 간단한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인사동 거리는 문화지구이며 미술의 거리임을 감안할 때 그 정도는 고치는 것이 기업의 이미지도 좋아지고 주민들이나 국내외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벽화도 유치해서 좀 세련되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내용은 생략했다.

세 번째 건의는 기업본사가 문화의 거리 인사동의 중심에 있는 점을 감안해(흔히 인사동이라고 부르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관훈동임) 건물 중심부나 1층 등을 개방해 인사동 특성에 맞는 비영리 갤러리를 만들어 기업메세나 차원으로 운영한다면 적은 예산으로 기업 이미지 홍보에 큰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이었다.

인사동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문화기업을 지양하는 기업특성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뿐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높은 경제성과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전략상 이점이 있고, 이제 기업에 있어서 메세나 활동은 선택적 사항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자 전략이라는 엄연한 사실, 그리고 기업에 그리 큰 재정적 부담도 안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건의서를 보내게 됐다.

특히, 세 번째 제안에 대해서는 일본 여행을 갔을 때 긴자에 있는 자생당(화장품 회사)본사 사옥에 있는 시세이도 갤러리와 인근에 있는 하우스 오브 시세이도 갤러리를 보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 최초의 비영리 갤러리인 시세이도 갤러리는 1919년 시세이도 화장품 본사 3층에 문을 연 이래 80년간 3000회의 전시와 5000여명의 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줬으며, 유능하고 젊은 작가들에게 무료로 전시회를 열어줬다. 시세이도 갤러리는 이로 인해 일본 미술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미지를 높이는데도 큰 몫을 했다. 또한 이곳에서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배출됐다.

이 회사의 대표는 위대한 경영자라는 칭호가 늘 따라다니는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라는 분이다. 그는 1990년 사단법인 일본기업메세나 협회 발기인이자 초대 이사장으로 일본메세나 운동에 헌신적으로 기여한 뛰어난 경영인이기도 했다.

또 선토리 동경미술관, 선토리 오사카 미술관, 동경 선토리홀을 보며 기업메세나에 크게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 이 건의를 공동으로 제안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