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새 우는 마을
휘파람새 우는 마을
  • 오길순/수필가
  • 승인 2010.08.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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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협회원, 펜클럽 한국 회원, 강남문협 감사.
월간 <<한국산문>>편집장 역임
.GS문학상, 길림신문 세계문학상 수필 대상, 서울문예상 수상 
.수필집: <<목동은 그후 어찌 살았을까>>,범우사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 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반 평 남짓한 엘리베이터 속에서 부른 <진짜 사나이>는 마음을 절절하게 울렸다. 주름진 할머니들 어디에 그런 씩씩한 의지가 숨어 있었을까. 좁은 승강기에 30 여 명 아낙들이 콩나물처럼 엉겨 있노라니 가고 다시 오지 않을 목숨을 붙잡듯 청정을 지키고픈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사방 천지가 초고층으로 난립되는 이 시대, 세곡동 지역이 강남의 마지막 허파처럼 청정하게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손톱발톱 닳도록 땅을 일궈온 그들의 공덕이 클 것이다. 다용도 실 한 칸도 이을 수 없었던 40여 년 개발제한을 오히려 고맙게 여기고 있다. 덕분에 휘파람새 우는 <고향의 봄>속에서 이웃들과 나누는 정담은 큰 기쁨이기만 하다. 
 
지난 2월이었다. 40여명 아낙네들이 길을 떠났다. 60부터 팔순까지 머리가 허연 여인들이 중무장 하듯 옷을 껴입고는 새벽 살얼음판을 나선 것이다. 거름 냄새 끊이지 않는 들녘과 푸른 언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 바다가 두려우랴.

10여 년 전 내가 이 마을에 이주 한 것은 설해목처럼 멍들어버린 건강 때문이었다. 사고로 상처 난 경추와 요추는 석 달 열흘 입원으로도 되돌려지지 앉았다. 국선도와 핼쓰를 해 보았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오염되지 않은 흙 마당과 청정한 뒷산이 뇌진탕으로 흔들려버린 몸을 꼭 복구해 줄 것만 같았다. 맹꽁이 울어대는 한 여름, 개구리 밥 떠 있는 무논 앞을 지나다가 단박에 계약을 했다. 

뻐꾸기가 눈뜨는 시각이 다섯 시 즈음이라는 걸 이 곳에서 알게 되었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기상하는 뒷산의 새소리에 아무리 무거운 눈도 절로 떠졌다. 해 돋기 전 한 시간은 한나절이라더니 밤새 대지의 기운을 받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씨를 뿌리고 잡초를 다스렸다. 사람의 생체리듬을 깨워주는 동물로 새만한 짐승이 또 있으랴. 종이 한 장도 맘대로 들 수 없었던 양어깨도 참나무처럼 단단하게 굳었던 목도 짐승들의 화음 속에서 추슬러지고 있었다.

아낙들이 새벽같이 건설사를 찾아 나선 것은 마을 앞 세장(細長, 가늘고 긴)지역에 고층 건물이 세워진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신령수처럼 여겨온 솔밭이 사라지다니! 세상이 온통 폭설로 갇힌 날, 일방통행 식으로 밀어부친 환경 공청회에서 맹꽁이와 황금 두꺼비를 살리자는 주민들의 호소가 거부된 때문이기도 하다. 절대사수, 결사항전, 주민대책회의의 함성은 폭설과 혹한이 무색할 정도로 격렬했었다.

절대 권력 같은 전자카드 출입구를 겨우 통과했다. 그러나 곧 승강기에 갇혀버렸다. 청년들이 달려와 운행을 중단한 것이다. 불가항력, 새벽 참에 30 여명 할머니들이 <진짜 사나이>를 부른 순간이었다. 화장실도 점심도 거른 채 스스로 갇혀 있던 예닐곱 시간 동안 경찰들이 분주했다. 그토록 위엄 있던 담당자들도 마음을 조금씩 여는 듯 싶었다. 진실의 소통은 굳이 너른 면적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휘파람새 우는 마을을 지켜내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