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강변의 은모래밭
고향 강변의 은모래밭
  • 이진모 한국영상작가교육원 교수
  • 승인 2009.03.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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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모 한국영상작가교육원 교수

며칠 전 고향에서 봄 내음새 가득한 반가운 소식이 바람 편에 실려 왔다. 정부에서 고향을 개발해 준다는 것이다.

옛 모습을 다시 복원해준다는 것인지 새롭게 개발을 해 준다는 것인지 아직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귀가 번쩍 뜨일 만큼 반가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헌데 그 반가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슬며시 알 수 없는 우려함이 끼어드는 것은 웬일일까?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나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고향을 떠난 사람에겐 때때로 못 견딜 만큼 향수에 젖어 스산한 마음을 추스르거나 잠자리에서 뒤척일 때가 많다.

필자의 고향은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인데, 이곳은 양산팔경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즐기는 웬만한 사람들은 누구나 한 두 번씩 다녀갔을 만큼 잘 알려진 곳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넓은 들과 드높은 산 사이로 전북 장수에서 발원하여 무주, 금산을 휘돌아 고향 양산으로 흐르는 강이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강가에 연해에 있는 해묵은 송림과 은모래밭은 절경이었었다. 비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물머리(수두리)에서 시작되어 송호리와 봉곡리 앞을 지나 원당리, 마포 쪽으로 휘돌아 흐르기까지, 물길 삼십리에 대왕산에서 떠오르는 해가 천태산으로 기우는 낙조로 강변을 물들일 때면, 수면으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떼와 반짝이는 은모래밭이 한테 어우러져 가히 선경을 이루었었다.

헌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산, 그 물길, 송림은 그대로 있지만 은모래밭은 자취가 없다. 인근 도시개발로 인해 깡그리 채취해간 것이다. 샘물처럼 맑았던 강물엔 생활폐수가 섞여 흐르고 모래언덕을 이루었던 은모래는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다.

강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강바닥 모래톱과 자갈밭 사이에 부유하던 모래무지, 버들치, 황쏘가리, 쉬리 등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필자가 모래채취 트럭 앞에서 막무가내로 드러누워 격렬하게 항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래전부터 옛 시인들이 마치 절규하듯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려뇨’(정지용), 또는 ‘고향은 찾아서 무엇하리. 저녁 하늘에 떼까마귀 울고 시냇물 옛자리 바뀌었을라’(박용아) 라고 부르짖었지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다. 고향은 마음속에서 여전히 아름답다.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정지용)이 아니고 고향은 늘 거기에 있고 초췌한 모습으로나마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자! 가자! 쫓기 우는 사람처럼 가자!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이렇듯 윤동주 선생의 시 구절처럼 우리는 이제 고향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필자는 영화인으로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 장소로 고향을 소개했었고, 영화 <소나기>, <무녀도>, <어우동>, <양산도> 등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나고 영화사에서도 잘 알려진 작품들을 이곳에서 촬영한 바 있다. 그런 연휴로 문화관광부에서 고향 강가에 영화 촬영 기념비까지 세워주었다.

지면 관계상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조언한다면 고향은 개발보다 고향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복원이 우선시 되고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복원에 걸맞는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을 비롯한 고향의 인근 도시 역시 모든 환경문화와 건축문화가 난개발이 아닌 복원을 전제로 한 유기적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보이지 않던 모래무지와 쉬리와 황쏘가리도 되돌아오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서로 다투어 찾아와 덩실덩실 신명난 춤사위라도 벌일 것이다.

한국영상작가교육원 교수 이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