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 박정수/미술평론가, 갤러리스트
  • 승인 2010.08.2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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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엔 미술노숙자와 미술도사들이 같이 산다

 

‘혹 그거 아세요? 서울역 근처를 배회하는 노숙자들 중에 세상을 달관한 사람이 있다는 거죠. 사회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면서 도를 닦는 방법인거죠. 그런데 문제는 노숙자와 도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가 문제랍니다.’

도사의 변장이 너무나 그럴듯하여 구분 못하는 것인지, 모든 노숙자들이 도사의 경지에 오른 것인지 아리송하다. 하긴 옛 말에 달관한 자와 체념한 자의 겉모습은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왕지사 말 나온 김에 좀 더 오버해서 말해보자. 밥 빌어먹는 사람과 미술품 빌어먹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품 팔아 돈사는 사람과 미술품 팔아 돈사는 사람의 겉모습은 반드시 같을 것이다. 돈 팔아 쌀을 사고 옷을 사는 과정까지 같다.

미술계, 특히 인사동을 바라보는 인사동 외부의 미술관계자는 대다수가 달관한 분들 같다. 인사동에는 미술도사들이 많은데 미술 노숙자 투성이라 말한다. 인사동에 사는 미술도사들은 외부에서 들리는 말에 별반 신경 쓰지 않는다. 변장이 워낙 그럴듯하기 때문에 관여하면 들통 난다. 가끔 인사동에 사는 허접도사 혹은 인사동 노숙자들이 그러한 말에 대해 정색하며 반발할 뿐이다.

 ‘인사동 화랑은 젊은 작가 등 처먹는 곳이 많다.’또는‘지원전 후원전이라는 이름으로 공모하더니 결국 돈 받더라.’는 둥 ‘대관만 해서 먹고사는 화랑이 무슨 화랑이여. 임대업자지…’참 말 많다. 사람 사는 동네에 말이 없으면 이상하지만, 좋은 이야기 보다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닌다.

인사동이라는 곳을 외부에서 보면 그저 그러한 관광지이며, 미술시장 언저리에서 보면 미술품 사고파는 곳으로 뵈며, 그림 그리는 사람이 보면 임대화랑과, 기획화랑, 상업 화랑이 섞인 곳이며, 잘나가는(소위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 화랑에서 보면 뭐도 없는 것들이 자릿세나 받고 어쩌다 그림 파는 장사치들의 집단으로 보여 질 수 있는 지역이다.

영업이란 것이 업종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마찬가지겠지만 이곳 역시 겉모습과 속 모습은 판이하다. 100여개 화랑 중에서 30여개 화랑은 진정한 의미의 상업 화랑이다. 전시 관람이야 하건 말건 미술품 판매액수는 장난 아니다. 화랑이라는 것이 본래적으로 상업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기획화랑 상업화랑 임대화랑을 나뉘는 것이 아니라 임대화랑과 상업화랑만 있을 뿐이다. 기획화랑이라는 것은 없다.

돈 되면 가는 것이 화랑이기 때문에 기획이건 상설이건 임대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임대화랑이라 한다면 인사동 중심에 있는 인사아트센터와 몇몇 건물주가 운영하는 화랑이 전형적인 임대화랑이다. 임대료를 내면서 화랑을 운영하는 곳에서는 재임대해서 화랑을 유지하지 못한다. 

경비가 넉넉한 화랑이나 미술도사들이 운영하는 화랑이야 뭐가 걱정인가. 작품 거는 족족 다 팔리는 블루칩이라는 작가나 인기작가, 금세 현금화 되는 작가를 전시하면 된다. 돈 많이 든다. 군소화랑은 군침만 삼킨다. 수천만 원 투자하면 수천만 원 수익 된다. 이거 확실하다. 그런데 수천만 원이 없다. 이러한 작가들도 5년 전 10년전 엔 군소화랑을 거쳐 갔다. 처음부터 잘나가는 작가가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올챙이시절 잊어먹고 상업이네, 임대네 하면서 터부시한다.

돈 흘러넘치는 부자화랑들도 인사동을 욕한다. 작가 등치네, 돈 받고 기획전 하네 하면서 말들이 많다. 본인들 화랑에서 잘 팔리는 작가들이 인사동 거쳐 갔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인사동의 군소화랑이 없으면 10년 후엔 어느 작가를 선택하려는가. 대학 갓 졸업한 초보 작가를 전시하기엔 쪽팔린다면서 어느 정도의 검증을 요구한다. 실력이라는 것은 현장에서 수련을 거쳐야 한다.

돈 받는 기획전이든, 뒷거래 하는 초대전이든 실전을 위한 경험의 수련과정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군소화랑 굶어 죽는다. 그러면 미술노숙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