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이 가진 손보다 더 무겁구나”
“빈 손이 가진 손보다 더 무겁구나”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3.1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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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냉소 재미있는 연기에 숨어있는 연극 ‘설공찬전‘

 연극 ‘설공찬전’의 이야기는 사실상 무겁다. 아부와 뇌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정상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차라리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것이 낫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설공찬전은 오히려 역으로 세상을 비웃고 있다. 그러나 그 냉소는 연출가 이해제의 탁월한 연출로 숨겨져 있고 재미있는 대사들은 따끔한 충고를 전하면서도 배우들의 코믹 연기를 통해 풀어져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을 선사한다.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유배지 외딴곳에 살고 있는 강직한 신하 설충란은 장가가기도 전에 죽은 아들 공찬을 그리워하며 아들 신주에 매일 제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대쪽 같은 충란에게는 온갖 아첨과 뇌물로 어떻게든 자신의 아들 설공침을 정익로 대감 눈에 들게 해 관직을 선사받으려는 동생 충수가 있다. 충수와 함께 자신의 딸을 왕비로 간택 되게 하려고 주선하는 오매당 부인은 틈만 나면 충란에게 찾아와 세상이 전 같지 않으니 그 강직함을 조금 버리고 높으신 분들께 고개를 조아려달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그런 주문이 충란에게 들릴 리 없고 세상에 완전히 염증을 느낀 충란은 아들 공찬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 말문을 완전히 닫아 버리고 식음을 전폐하기에 이른다. 저승에서 이러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모습을 본 공찬은 잠시만이라도 아버지께 못 다한 효도를 하기위해 이승으로 돌아온다.

‘고개를 숙이는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공찬은 처음에는 공침의 몸속으로 들어가 이를 거부하는 공침 때문에 온갖 소동을 일으키지만 공찬 귀신을 알아본 삼촌 충수와 함께 공침의 벼슬자리를 얻게 하는 데 협조 할 것을 약속한다. 삼촌 충수는 생전 수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공찬을 믿어보기로 한다. 

귀신이 돌아와서 극 중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만큼 무대 세트부터 조금은 을씨년스러워 긴장감을 더한다. 병풍과 한옥마루를 배경으로 무대 천장에 매달려 있는 풍경이 바람에 고요하게 흔들려 극 시작부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는 듯 했다. 공찬이 탈의파와 함께 이승으로 돌아 올 때 신비로운 조명과 음악이 깔리며 병풍이 열리는 효과, 긴 두루마기 자락에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양각으로 새겨 넣은 탈의파의 의상 등도 매우 흥미롭다.   

극중 설공침 역을 맡은 정재성의 연기가 무엇보다 돋보인다. 하나의 몸속에 두 개의 인격이 들어 있는 연기를 정말 신들린 것처럼 한다. 왕에게 간택되기를 기다리는 오매당 부인의 딸 윤서임 역을 맡은 배우 김은희의 연기도 무척 재밌다. 간택되기 위해 왕비로서의 체통을 연습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러워 관객들에게 폭소를 선사한다.

‘공찬 귀신’은 ‘지리다도파도파’(처용가에 수록돼 있는 ‘처용랑 망해사’의 가사, ‘지혜로서 나라를 다스릴 자들이 미리알고 많이 도망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하리라’라는 뜻)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극중 등장인물들에게 옮겨 다니며 각각의 등장인물을 빌어 정대감을 향해 ‘바른말’을 하는데 귀신이 떠나면 내가 왜 그랬는지 하면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이는 배우들이 배꼽을 잡게 한다. 그러나 극 초반에 배우들의 너무 빠른 호흡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