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珍重)한 철학의 점(點)으로 예술을 발행(發行)하다
진중(珍重)한 철학의 점(點)으로 예술을 발행(發行)하다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9.09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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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20대 화가, 김지선을 만나다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20대의 젊음’은 패기와 열정, 끈기와 호기를 상징한다. 나이가 든 어른들은 누구나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때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경력이 부족한, 아직 덜 익은 초년생’ 등과 같은 편견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미술과 같은 예술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일정 나이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접조차 못 받을 정도다. 하지만 김지선 작가(29)는 달랐다. 나이라는 명패를 가리고 본 그의 생각과 표현기법은 ‘젊은 유망주’가 아닌 ‘실력 있는 중진작가’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불편함을 통해 내 안의 장점을 발견하다

김지선 작가는 현재 아크릴을 사용해 점층 기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도 원래는 페인팅을 했었지만,대학교 과정이 끝난 후 자신에게 어울리는 고유의 것을 찾기 위해 그 동안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시기를 가졌다.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도 감지하지 못했던 ‘점’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된 이후부터 점층 기법을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숨어있었다. 본인은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화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선천적 결함인 색약 때문이었다.

“색감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일반 다른 작가들보다 불리한 부분 중에 하나죠. 예를 들어 사람 얼굴을 그리는 데 있어서 홍조나 푸른빛이 돈다하면 그런 색깔들을 디테일하게 캐치를 못하니까요. 그런 면에 있어서 ‘점’이 다가온 것은 제게 큰 의미였어요”

김 작가의 ‘점’은 일반적인 화가들의 그것과는 특별하다.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써의 점이 아닌 표현으로써의 점이다. 대부분의 점층 기법이 말 그대로 기법이라는 하나의 수단이라면 그에게는 ‘표현’ 그 자체다.

그러다 보니 모니터 위에서 픽셀들이 섞이듯 자연스럽게 점이 섞여 나온다. 단순히 일정한 점의 나열이 만들어내는 우연이 아니다. 점의 크기와 형태, 위치까지도 머릿속에 그리며 찍어가니 볼륨감이 살아 숨 쉰다. 점은 그에게 있어 훨씬 용이하고 접근성이 빠른, 찾아낸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는 이러한 점들을 통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풀어나간다.

“점은 하나의 개체지만 모이면 이미지가 나타나잖아요. 점을 사람이라 본다면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은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구성원인거고요. 그러한 작품(구성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전체적인 이미지는 이 시대의 한 정체성이 되는거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결함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장기(長技)로 승화시킨 그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힘을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제 삶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으면 해요. 사실 점을 찍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끈기와 노력이 있어야 하기에 아무나 못하는 고도의 노동집약적인 작업이죠. 제 작품을 보면서 ‘선천적인 결함이 있는 김지선 작가도 극복하면서 해냈는데 나도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다시 말하면,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력을 하면 다 이뤄질 수 있다는 진리를 저로 인해 다시금 깨닫게 됐으면 좋겠단 의미죠”

은행장에서 역사학자로 변신하다

김지선 작가는 2007년부터 ‘머니 팩토리(Money Factory)’라는 주제로 돈을 그려왔다. 아니, 발행해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 Ji Sun Bank의 약자를 딴 ‘JSBK’라는 은행의 주인인 셈이다.

▲JSBK 김구 십만원권/145.6x72.3cm/Acrylic dot on Panel/2009

자본주의 사회가 돈을 발행한다면, 작가는 예술을 발행한다. 김 작가는 화폐에 앤디워홀과 그의 Cambell 깡통, 고흐와 해바라기 등의 일상적 이미지를 작은 점으로 표현해 화폐제조의 인쇄기술을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자본과 예술의 정직한 만남이다.

당시 그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작가는 ‘부정에 의한 부정’이 아닌 ‘비판에 의한 긍정’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당시 앞으로 해나갈 것들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니까 사람들이 그림이라는 것 자체를 너무 가볍고 투자와 투기의 목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자체가 좋고, 그것에 대해 감상자들이 감동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자본의 대상으로 노출이 되는 거예요. 그것을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JSBK 유관순 오만원권/145.6x72.3cm/Acrylic dot on Panel/2009

이 시대의 예술이 자본에 결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즉, 그는 원래 예술의 가치를 얘기하며 ‘예술이 곧 돈이기도 하지만, 돈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던 것이다.

“재력을 따지는 돈이 아니라 만원의 가치가 되더라도 행복하게 쓸 수 있는, 가치적 맥락이 다른 돈이죠. 남들이 봤을 때 좋은,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돈이요”

이러한 그가 오는 9월 15일부터 28일까지 갤러리 바이올렛(Gallery Violet, 관장 박정수/종로구 인사동 소재)에서 열릴 초대전 준비에 한창이다. 시대정신이라는 큰 틀 중에 한 챕터였던 ‘머니 팩토리’를 잇는 ‘포밍 히스토리(Forming History)’를 선보인다.

▲금동계미명삼존불/70.5x70.5cm/Acrylic dot on Panel/2010

 “이번 전시회 같은 경우는 ‘역사를 빚는다(만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우리의 도자기, 불상 등을 표현한 또 다른 챕터예요. 기존에 돈을 발행했다면, 이번엔 역사를 발행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거창하게 역사를 만들고 재창조하는 의미가 아닌, 국보급 도자기 등에 담겨진 역사를 현재 입장에서 예술가가 바라보는 거죠”

▲백자철화매죽문대호/70.5x70.5cm/Acrylic dot on Panel/2010

오래된 역사를 가진 문화는 새로운 문화로 인해 해체되는 과정을 겪으며 기록으로 존재한다. 도자기와 함께 그 안에 새겨져 있었을 색채 넘치는 문양이 해체된 과거의 역사라면, 무색의 대나무 잎이나 국화꽃 등의 문양은 해체된 과거가 지금 우리 속에 들어와 쌓여 자리 잡은 이 시대의 문화다.

▲백자진사매국문병/70.5x70.5cm/Acrylic dot on Panel/2010

 “이번에 나오는 작품들이 대부분 화려하지 않고 모노톤이라 감상자가 접근하기 편해요. 오시는 분들이 ‘도자기가 곧 나 자체’가 돼서 사회가 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잘 그렸네’, ‘멋있네’가 아닌 우리 사회 속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을 겪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셨으면 해요”

서로를 바라보며 자아(自我)를 찾다

일반적인 젊은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그림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그 속에 진지한 철학을 담아내는 김지선 작가가 그림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간단하다. 특별한 주위환경의 탓이나 상황에 처해서 그림을 시작한 것이 아닌, ‘즐겁고 재밌기 때문’이었다.

 유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김 작가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랬듯 유치원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다. 초등학생 시절엔 선생님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흥미를 갖고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자라는 키와 함께 실력도 꾸준히 상승했다.

그는 미술에 더욱 흠뻑 취하게 만든 어린 시절의 특별한 추억 하나를 회상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학예회가 있었어요. 보통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멋진 공예품을 만들어주시거나 집에 있던 도자기와 같은 것들을 내라고 주고 하시잖아요? 당시 저희 집 상황이 어려웠었는데, 아무것도 없이 가긴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직접 그림을 하나 그려주셨어요. 전공자도 아닌 아버지가 그려주신 그 그림을 보고 뭔가 모를 감동을 받았어요. ‘그림이란 것이 감성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그림에 더더욱 심취하게 됐죠”

이처럼 그림과 젊은 날의 죽마고우로 지낸 김지선 작가에게 있어 그림이란 일종의 ‘바라보기’다. 하지만 시각을 통한 ‘방관적 바라보기’가 아닌, 나의 생각과 미래를 투영하는 ‘실천적 바라보기’다.

“그림이란 나의 삶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찾아가기 위해 바라보는 하나의 과정인거 같아요. 저랑 그림밖에 없는 작업실에서 그림이 저를 보고 제가 그림을 보면서 자아를 발견하는 거죠. 저는 그림을 통해 이 시대의 얘기들이나 문화 같은 것들을 보면서 ‘과연 이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죠. 시대를 이해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곧 저를 찾아가는 단계인 셈이죠. 반면에 작품은 제게 작업 과정에 있어서 불필요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해주죠. 이것 역시 좀 더 발전된 화가가 되기 위한 단계인 셈이죠”

20대의 젊은 나이에도 자신만의 남다르고 깊은 철학으로 오늘도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는 ‘될성부른’ 김지선 작가. “모든 일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늘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젊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꿈꾸는 ‘성공해서 돈 잘 버는 유명한 사람’이 아닌 ‘다양한 매력을 가진 멋진 사람’이 인생의 최종목표라고 말한다.

“진중하면서 가벼운, 뭉툭하면서도 날카로운, 아름다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들이 멋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이란 작가의 모든 것이 투영되는 공간이니 좋은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선 제가 그런 사람이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화가 김지선 프로필 

1982년 출생
2007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2010 충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석사 졸업

수상  
2009 갤러리 정 YAP 올해의 선정 작가
제27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비구상부문 대상
제3회 도솔 미술대전 최우수상
제1회 백제 문화 예술대전 특별상
제2회 경향 미술대전 우수상  
제26회 대한민국 현대 미술대전 특별상 외 다수

개인전

2010 Forming History-갤러리 바이올렛/서울

단체전

2010 아시아프(ASYAAF) -성신여자대학교(서울)
2010 New Platform  -관훈갤러리(서울)
2010 Homecoming YAP -갤러리 정(서울/신사동, 광화문)
2010 한국미술 존재와 전망 -공평아트갤러리(서울)
2009 월간전시 기획 신진작가 초대전 -겔러리 엠(서울)
2009 한·중 현대회화교류전 -ARTMIA 갤러리(중국798)
2009 ‘청년 미래를 보다’ -드림갤러리(서울)
2008 ‘재앙의 역사’ 삼청갤러리 기획전 -삼청 갤러리(서울)                     
2008 대전 청년 미술제 -대미 갤러리(대전)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