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문학관 제25회 전시회 ‘李箱의 房’
영인문학관 제25회 전시회 ‘李箱의 房’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9.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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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육필원고 및 사진 등 희귀자료 전시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전시가 열리고 있어 화제다.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 종로구 평창동 소재)은 지난 10일 ‘2010 李箱(이상)의 房(방)’이라는 제목으로 시인 이상의 육필원고와 사진을 위주로 한 전시를 선보였다.

한일합방이 된 후에 태어난 이상은 식민지 교육을 받고 자란 첫 세대이다. 일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혔다 죽은 그의 삶은 1930년대의 식민지 지식인의 비극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상이 상징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도시화가 자리를 잡던 시기인 1930년대, 고등교육기관이 정비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첫 세대가 이상의 세대다. 한국의 과학화, 근대화가 기반을 잡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 속에서 ‘9인회’의 모더니즘 문학이 개화(開化)했다.
 
경성제대 영문과를 나온 이효석, 일본의 일류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김기림, 정지용, 이태준 등의 지적 엘리트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 ‘9인회’였고, 이상은 그 모임의 대표 주자였다. 그는 한국에서 이공계를 전공한 최초의 문인이었고, 벼를 보지 못하고 자란 순수한 도시인이었으며, 미술을 지망한 심미주의자였다.

이상과 9인회의 문학은 한국의 근대문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일본 모더니스트들보다도 우수한 작품을 발표한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지적세계의 격차를 좁히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에 대한 남은 자료가 아주 적다. 사후에 두 번이나 전쟁을 겪은 이상은 유품을 챙겨주는 알뜰한 가족도 없어서 쓰던 몽당연필 하나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 원고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도는 자료들은 대부분이 잡지에 나와 있는 2차 자료에 불과하다.
 
다행히도 영인문학관에서는 이상의 ‘오감도’ 일부와 일어로 쓴 ‘조감도’, ‘선에 관한 각서’ 시리즈 전문 및 ‘모조진주제조법’이라는 글이 써져 있는 육필 노트가 남아있다. 1960년대에 강인숙 관장의 부군(夫君)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이 뒷골목 고물상까지 뒤지게 해 겨우 찾아낸 자료들이라 한다.

원고와 함께 찾아냈다는 이상의 앨범 속 낡은 조각사진들도 복원해 사진전 코너도 곁들인 이번 전시에서는 생존문인들과 화가가 그린 이상의 초상화와 함께 이상에게 바치는 후학들의 헌사(獻詞)를 모은 코너도 마련했다.

▲시인 이상의 경성공고 시절 사진

이밖에도 이상의 문학비에 얽힌 부인 변동림(필명 김향안, 1916~2004)과의 사연도 소개하고 있다. 불과 몇 달 밖에 이상과 살지 못한 아내 변동림이, 그의 사후 반세기가 지난 후에 이상의 문학에 대한 오마쥬를 돌에 새겨 남기게 된 사연이다.
 
영인문학관에서는 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토요강좌도 개최한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과 권영민 교수 등 문학계 거장들을 비롯해 젊은 작가들의 강연을 마련해 관람자들에게 다양성을 맛보게 할 수 있도록 구성돼있다.

한편, 이상의 육필원고를 비롯해 사진 56매, 문인들과 화가가 그린 이상의 초상화 7점, 헌사 14점, 삽화, 스크랩 등 소중한 자료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11월 6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