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10.09.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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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문제아가 돌아왔다! <박치기!>

필자가 <다시보는 놓친 영화>를 연재하며 <박치기!>는 마지막에 쓰려고 늘아껴왔다. <박치기!>는 일본 사회 재일 조선인 고등학생들의 사랑과 우정, 고등학생들간의 패싸움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렸다. 2005년 키네마 준보, 아사히 신문 베스트 영화 1위를 차지한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재일 조선인들의 문제를 만들고 보여줘야 했는데 일본 감독과 일본 신인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영화가 완성되고 결과까지 최고였으니 무척 다행이다. 물론 이봉우라는 대단한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1992년 재일 한국인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제작하여 그해 50개 이상의 영화상을 수상케한 경력이 있다.

그후 한국 영화 <쉬리>를 일본에 수입해서 큰 성공을 거둔 후 <공동구역 JSA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등 여러편의 영화를 일본에 소개, 일본내 한류에 기여해 2003년 부산영화제 공로상도 받았다. 원래 조총련계 출신으로 조선 민족학교를 나온 그가 한국과의 가장 우호적인 문화 교류의 장을 이루어낸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박치기!>같은 영화를 제작한 것은 그의 입장에서 당연하고 감격스런 일이었다.

현재 그는 탈북자 문제를 다룬 영화 <크로싱>의 일본상영 방해 혐의로 일본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나 그로 인해 그가 이룬 한국과 일본간의 영화적 기여를 비뚤게 보는 사람들이 조금 이해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도 있다.

1968년 교토, 은각사에 수학여행 온 남자 고등학생들이 한복을 입은 조선여학생들이 지나가자 말을 걸며 희롱한다. 여학생들이 한국말로 ‘까불고 있어’하며 대들자 남학생들은 여학생 저고리에 만년필 잉크를 뿌린다.

여학생들은 어디론가 황급히 가버리고 잠시후 7-80명의 조선인 남학생들이 벌떼처럼 몰려온다. 희롱한 누군가를 찾기 위해 수학여행 버스를 뒤집어 버리고 그 남학생을 찾아내 박치기를 해버린다. 이 광경을 우연히 보게된 교토의 히가시 고등학교 코스케(시오야 슌)와 노리오(코이데 케이스케)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평화 협정을 위한 친선축구시합을 제의하러 조선고에 가게 된다.

당시 오사카 지역은 일본과 조선인 학교간의 갈등이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을만큼 아주 심각했고 교토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모택동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한 일본인 선생님 때문에 축구 시합이 가능했다.

조선고에 간 코스케는 플롯을 부는 경자(사와지리 에리카)를 보고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다.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코스케는 히피로 등장한 사카자카(오다기리 죠)에게 <임진강>노래를 배우며 한국말도 익힌다. 점차 재일 조선인의 삶속에 접근한 코스케는 조선인 구역의 삶과 가난의 비애, 경자의 오빠리안성(타카오카 소스케)이 꿈꾸는 북한 공화국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1968년은 일본에서도 공산주의가 전국 대학생들에게 급속히 퍼지는 때였으며 프랑스 68혁명, 체코의 프라하의 봄, 베트남과 미국의 치열한 전쟁, 비틀즈와 포크 기타의 유행,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 후 재일조선인들의 자부심들이 섞여 있었던 해였다. 

영화에 나오는 임진강 노래는 북한 작곡가가 남북 분단의 슬픔과 통일의 염원을 담아 지었는데 일본에서는 실제로 1968년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번역해 발매했으나 금지곡으로 선정되었다. 영화에서는 금지가 아니라 중지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밴드의 작곡가 카토 카즈히코가 <박치기!>의 영화음악을 직접 담당했다.

영화의 원작은 마츠야마 타케시의 <소년M의 임진강>을 기초로 교토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낸 이봉우와 일본인이 바라본 조선인에 대한 느낌을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과 버무려져 에피소드가 풍성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경자로 등장한 사와지리 에리카는 <박치기!>영화로 29회 아카데미 신인상과 무려 7개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일본 최고의 여배우로 등극했고 작년 메이지 신궁에서 전통 혼례로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화제가 된 인물이다.

경자로 기억되었던 사람들에게 지금 얼굴은 화려하고 너무 낯선 얼굴처럼 느껴진다. 감독 이즈츠 카즈유키는 <박치기!>이후 <박치기 LOVE&PEACE>를 만들어 또한번 성공했다. 오다기리 죠는 영화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지만  <박치기!>로 가장 성공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크게 열광했다는 자체가 대단하며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가슴 한구석이 울컥하는 영화이다.

2004,일본, 이즈츠 카즈유키감독 ,코미디.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