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시선 윤이상 연주시대 열어야"
"한국인 시선 윤이상 연주시대 열어야"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3.2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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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평화재단 음악사업 부장, 비올리스트 홍석주

“육사에서 군악대로 군복무를 할 때 한 주간지에서 ‘두 동강난 나의 삶’이라는 윤이상 선생님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서양음악을 완벽하게 흡수하고 동양적인 음향과 철학사상을 완벽하게 결합 한 곡을 쓰는 한국인 작곡가가 있다는 사실은 저에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작년 5월부터 윤이상평화재단의 음악사업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홍석주 씨(39)는 최근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열기도 한 비올리스트다. 어떻게 윤이상 음악 재단의 부장이 되었나는 질문에 윤이상 선생님을 따라오다 보니 여기가지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전공을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60 항쟁 시절 최루가스를 맡으면서 입시공부를 해 화학과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오케스트라에 단원으로 활동하며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음악의 길로 다시 되돌려놓은 일생의 큰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대학 재학 중 한 해 동안 집에서 상여가 세 번 나갔던 것. 

“외할아버님, 할머님, 아버님 모두를 한 해에 잃었죠.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아버지까지 가시니까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철학, 종교, 예술 등 여러가지에 매달려 봤죠. 아무것도 저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했지만 음악은 저에게 어떤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때 이 길을 가야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남들이 10년을 줄곧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면 그는 급한 걸음으로 되돌아 와야 했기 때문에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심각한 해체를 경험했다. 모든 사고의 중심을 갑자기 서양음악중심으로 돌려놓는 것은 너무 부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윤이상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바탕을 해체 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접근했는데 그 가능성은 너무 확실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윤이상 작곡가 탐구에 나섰지요. 그런데 윤이상 작곡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했어요. 선생님의 곡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주하기 위해서는 서양음악의 바탕을 완전히 흡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악, 동양 철학, 한국고대사까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태왕사신기’를 보면 청룡, 현무, 백호, 주작과 같은 동물들이 나옵니다. 윤이상 선생님의 ‘영상’ 이라는 곡에도 이 네 동물이 등장하지요. 북한의 강서 고분 안에 그려져 있는 고분 벽화를 음악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다시 진학한 대학에서는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영국 유학중에 그는 실내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비올라 연주자가 많이 없어 섭외하기가 힘들 자 아예 자신이 직접 비올라를 배우기로 했다. 그렇게 지금은 바이올린, 비올라 모두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특히 비올라는 그 깊은 소리가 커피향을 맡는 것 같다고.

2006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7년에 있었던 윤이상 90주년 페스티벌의 음악 강의에 참석했고 그렇게 윤이상 평화재단과 인연을 맺게 됐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연주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러시아 사람들이죠. 마찬가지로 모차르트의 국가인 비엔나는 조상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이상 선생님은 우리나라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선생님께서 독일국적을 가지시고 독일에서 먼저 인정받은 것부터도 그렇지만 악보 판권은 영국에, 음반 판권인 카메라타라는 일본에 가있고 그분의 묘도 독일에 있으니 말이지요. 아무튼 우리로서는  무슨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 윤이상 작곡가를 한국인 고유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연주를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윤이상 작곡가를 새로운 해석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한국에서도 나와야 합니다. 재즈 트럼펫연주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오케스트라에서만 쓰이던 그 단정한 악기가 재즈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을 통해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는 악기가 되었죠. 그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지요. 작년에 첼리스트인 고봉인 씨가 평앙윤이상관현악단과의 협연을 통해 이러한 첫 시도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첼로협주곡을 연주 할 때는 마치 김덕수의 장단이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형태의 소리로 재해석 되어서 나오는 것이지요.”

오늘 저녁에도 자신이 소속된 ‘리히트 캄머 앙상블’에서 연주가 있다는 그는 올 한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예정이다. 가까이는 2번의 윤이상 앙상블 정기연주의 기획을 비롯해 베를린에 있는 윤이상 선생의 자택이 기념관이 된 것을 축하하는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린다. 또 9월에는 국제 윤이상 작곡상 콩쿨과 함께 선생의 탄생일인 9월 17일을 기점으로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있다. 올해도 평양에서 해마다 열리는 윤이상 음악회에 참관할 예정이며 윤이상 작곡가를 주제로 하는 강연과 윤이상 연극 공연 등도 계획하고 있다.

“윤이상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계 각국과 국내에서 여러 공연이 진행되겠지만 저는 한국인의 눈으로 해석된 연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교향곡 5곡, 협주곡 10곡, 가능하면 오페라 4곡까지 우리 연주로 레코딩해서 윤이상 교향곡, 협주곡, 오페라 전집을 만드는 것으로 디딤돌을 삼고 싶습니다. 저도 연주자니까요. 언젠가 윤이상 선생님의 곡을 저만의 새로운 해석으로 연주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곡이 너무 어려워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것 만해도 정말 영광일겁니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