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균의 배우열전 [12]
김은균의 배우열전 [12]
  • 김은균 연극평론가
  • 승인 2010.10.18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구 - 나의 고향은 연극무대

 명동 예술극장에서 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보여준 신구의 열연은 인상적 이었다.

 

 

알프레드 유리가 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1987년 4월 뉴욕 Playwrights Horizons, John Houseman Theatre에서 초연됐고, 다음해인 1988년 퓰리처상 희곡부분을 수상한 작품이다.

홀로 사는 미스데이지와 흑인운전수와의 인간애를 다룬 이 작품은  인종과 세대 등의 차이를 극복하고 진실한 인간애를 통해 삶의 마지막까지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우정을 아름답고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연극의 성공과 함께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제4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제47회 골든 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 그리고 작품상을 수상한 빼어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흑인운전사로 열연한 그의 변신은 감히 누구도 엿보기 힘든 연기였다.  
 

한 때 C·F속에서 "니들이 게맛을 알아?"로 희극 배우처럼 각인된 그는 사실 1962년 드라마 센터에서 유치진의 <소>로 데뷔를 하였다. 오늘날의 그로 거듭나게 한 가장 큰 어른이 유치진 선생이신데 아무래도 촌스러웠는지 지금의 이름인 ‘신구(新舊)’도 유치진 선생께서 지어주신 것이다. 본명이 신순기이다. 아마도 배우로서의 생명이 오래가라는 선생의 뜻이 담겨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의 배우인생에는 시작부터 청춘이 없었다. 그냥 아버지였고 할아버지였으며 청춘이나 사랑도 그의 몫이 아니었다. 젊었을 때 가려졌던 그의 연기가 이제는 거꾸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의 이름처럼 진가가 빛이 나고 있는 중이다. 또한 TV와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전천후 연기자이기도 하다. “영화나 TV는 NG가 나면 다시 찍고, 편집하면 됩니다. 그러나 연극은 일단 막이 오르면 배우가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달아나 숨을 데가 없습니다. 정면에서 살아있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극은 배우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예술입니다.
 

 그는 “영화나 TV가 감독과 프로듀서, 기술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배우의 예술, 사람의 예술로 휘발해 없어지는 것”이라고 연극관을 밝혔다.  “연극을 영상으로 보면 아무런 맛이 없습니다. 연극은 기록할 수 없지요. 공연이 끝나면 휘발해 사라져버리고 텅 빈 공허함이 남습니다. 그 빈 것을 채우기 위해 다음 작품을 찾습니다.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 공복감이 연극의 마력인 것 같습니다.”


  우리 전통춤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탈춤의 먹중으로 1968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 간 이력도 있다. “당시 김진옥씨와 서울대 이두현 교수 등이 탈춤복원에 애를 썼습니다. 이때 황해도 탈춤을 김진옥씨로부터 배워 공연을 하면서 제가 첫 번째 먹중을 했지요. 아마 연극으로 빛을 못 봤으면 인간문화재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는 배우가 춤꾼은 될 필요는 없지만 춤은 필수적이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한다.

그것은 움직임이 살아 있는 연기가 훨씬 더 관객에게 호소력을 줄 수 있다는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 때문이다. “꼭 현대무용일 필요는 없습니다. 흔히 배우에게 목소리로 표현하는 대사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움직임이 살아있어야 소리도 좋아집니다.

또 연출자나 감독이 원하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필요에 맞게 걷고 뛰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지금까지 지탱시키는 것은 연극의 입문시절 배운 유치진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다. “연극의 기본은 정석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허튼짓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무대는 우리네 인생의 거울이다. 사람을, 인생을 표현하는 데 생명 있는 관객들이 보고 있다. 장난기 있는 어떤 짓거리도 용납할 수 없다’고 서릿발처럼 말씀하시곤 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