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브리지 언덕 마을에서 듣는 한 곡 노래에 취하며
캠브리지 언덕 마을에서 듣는 한 곡 노래에 취하며
  • 이수경 도쿄 가쿠게이 대학 교수
  • 승인 2010.10.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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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차와 자기를 편하게 하는 노래를 들으며 삶에 감사한다면…

지난 8월 이후, 영국이라는 독자적 역사를 걸어 온 그들의 문화에 정신없이 쫓기면서 조바심으로 있을 때 여유 없는 마음을 채워주던 아름다운 글귀와 귀에 익은 노래가 담긴 CD가 배달됐다.

▲이수경 도쿄 가쿠게이 대학 교수/ 캠브리지 대학 방문 교수

필자가 일본이란 낯선 곳에서 생활을 시작했던 초기부터 언제나 인생의 역경에 서 있을 때 용기를 주며 응원을 해 주신 이해인 시인이 당신도 암과 싸우면서 ‘건강과 유익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라’는 격려의 편지를 주신 것이다.

CD는 영국에 오기 전에 많이 힘들어 하고 계실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의 이은영 대표와 함께 수도원을 찾았을 때 그녀의 방에서  들려줬던 기억의 노래가 삽입된 것이었다.

누구나 자신들의 기억이나 생활 속에서 공감하며 즐기는 노래가 한 두곡은 있을 것이고, 힘들 때나 슬플 때, 혹은 기쁠 때를 더더욱 북돋워주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이기에 예전부터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할 정도로 음악 속에 파묻혀 살았던 사람이다.

일본어도 1970년대 이후의 노래 몇 백곡의 가사를 외우며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고, 지금도 일본 노래나 팝송에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대학원을 마친 필자의 동생이 귀국을 하며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를 위해 오디오를 선물할 정도였으니, 음악은 취미를 넘어선 나의 생활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런 내 자신도 지난 몇 년간은 현실에 쫓기느라 음악조차 감상할 수 없는 생활이었으니 정신이 참으로 황폐한 인생을 살았던 셈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와서야 여유를 가지고 음악이 주는 영혼의 오아시스에 감사를 하며 살고 있다.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본지 이은영 편집국장 촬영

특히, 지난 7월 수도원에서 이해인 시인의 시를 곡에 붙인 ‘친구야 너는 아니’를 듣고 가슴에 퍼지는 인트로 음악과 잔잔하면서도 애절할 정도로 감미롭게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목소리로 시를 노래하는 가수가 인상적이었기에 그 곳에서 스무 번 가까이 반복해서 들었을 정도였다.

사실 필자는 아직도 그룹 사운드 ‘부활’이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잘 모른다. 80년대 중반에 일본으로 건너갔기에 어느 부분에서는 나의 기억은 그 시점에서 멈춰 진 것도 많다.

그렇지만 종교와 무관한 내게 언니처럼 이해를 많이 해주시고 항상 용기를 주신 그녀가 한 잔의 커피와 더불어 틀어준 한 곡의 노래에 마음이 너무나도 편안해졌고, 캠브리지에 와서도 계속 그 멜로디와 시가 머릿속에 맴돌았었다.

▲캠브리지의 가을풍경,잎사귀에 옅게 노란빛이 내려앉고 있다.

‘연구 전념 기간’이란 미명하에 도쿄의 학교 업무를 피해서 영국에 왔건만 이곳에 와서도 여전히 윈도 11개를 켜고 한일병탄 100년에 관련된 의뢰 원고 등으로 집필에 쫓기고 있는 필자를 위해 보내준 그 노래를 받고서는 오아시스를 만난 듯 한 기쁨이었다.

특히,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라는 부분은 어느 정도 삶의 연륜을 쌓은 만큼 공감하는 바, 시련도 시험도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생각이 교차하는 가사이기에 생각도 많이 한 노래이다.

인생에는 힘들 때, 고독한 영혼들이기에 참으로 견디기 힘겹고 버거울 때가 많다. 그럴 때 모든 사회적 욕심을 떠나서 차분히 한 잔의 차와 자기를 편하게 하는 노래를 들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특혜를 받은 삶에 감사한다면 우리는 관용과 사랑으로 무거운 현실의 짐을 잠시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맨손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삶, 좀 더 따스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고, 그 사랑으로 나보다 힘든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반드시 삶이 힘든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24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 것인지는 각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각박한 신자유주의 경제 사회 속에서 파생되는 메마른 삶에 휩쓸리지 말고, 계절이 오고 가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 한 그루의 나무와 낙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남기고 가는 자연의 향기에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그런 여유를 가진다면 마음은 참으로 풍요롭지 않을까?

한 여름의 도쿄를 떠나서 캠브리지에 왔을 때 새파랗게 뽐내던 푸른 잔디밭과 캠 강변의 숲들도 어느새 가을색으로 물들었다. 대학 캠퍼스에도 학생들이 돌아와 관광객과 더불어 학교 내외 카페 레스토랑에는 많은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

▲캠브리지의 가을풍경, 도로 옆 가로수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어느덧 낙엽이 바닥을 덮어가고 있다.

수많은 교회 성당에서는 각종 사회적 이벤트를 기획하여 인근 주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캠브리지 대학내에서도 한국학 관련으로 런던 영화 축제로 한국 문화 알리기 기획도 준비되어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다가 그치는 변덕스러운 비 때문에 마르지 않는 빨래를 한탄도 해 보지만, 멀리서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고, 따스한 마음으로 채워주는 한 곡의 노래가 있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내 영혼이 자유롭기에 왠지 이 땅조차 애틋하게 느껴지는 가을 밤이다.

그리고 이해인 시인과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조용히 빌어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