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서 하지 않으면 무서운 힘 나오지 않아“
"즐거워서 하지 않으면 무서운 힘 나오지 않아“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3.25 11: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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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 감독 황병기, “나는 파격적인 것에 소질 있어.”

올해 73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국립극장의 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을 맡아 우리 국악의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황병기 감독. ‘뛰다 튀다 타다’공연을 앞두고 가진 기자설명회 자리에서 황 감독은 젊은이들 못지않은 감각으로 좌중을 즐겁게 했다.

얼마 전 가수로봇 에버의 시연회에서 로봇과의 연주무대에서 로봇의 연주자로서의 성능을 몸소 확인한 봐 있는 황 감독은 5월에 본격적으로 로봇들과 함께 선보일 어린이 공연이 무척 인기를 끌 것이라며 상기됐다. 

▲ 국립극장 국악관현악단 황병기 예술감독

“시연회에서는 로봇의 성능 시험한 것을 토대로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의 대본을 지금 쓰고 있습니다.

어떤 공연이 인기를 얻으면 대부분 그 공연을 모방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색다른 공연을 준비하려고 골몰하던 중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이 로봇들을 만들고 어떻게 활용할지 모색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래서 공연에 로봇들을 도입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황 감독은 로봇이 나와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만족 시키게 될 것이라 단언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황 감독님’은 무척 튀는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닌가.

곧 있을 신개념 퍼포먼스 '뛰다 튀다 타다' 와 같은 공연도 ‘나쁘게 말하면 공연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황 감독에게 앞으로 국악의 지향방향은 이러해야 하는 것인가를 묻자 그는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국악의 지향보다도 '뛰다 튀다 타다' 이 공연은 현대식 퍼포먼스 형태의 하나로 밀고 나갈려고 해요. ‘퍼포먼스는 이렇게도 한다.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에는 국악관현악단이 맞다’ 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요.

서양오케스트라는 이런 연주를 자존심 때문에라도 안하려고 할 꺼예요. 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은 그런 면에서 열려있습니다. 사실 전통적으로 국악관현악단은 존재하던 것이 아니죠. 서양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정장을 하고 18세기~19세기 서양음악을 연주하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점잔은 보수적인 연주입니다.

그런데 국악관현악단은 서양의 오케스트라가 하지 못하는 대중적인 것을 할 수 있지요.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는 타악기는 별로 역할을 못해요. 기껏해야 팀파니나 때리지요. 국립관현악단에서는 타악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팝이나 재즈 같은 것에서 타악기가 중요한 것 처럼요. 그래서 우리 국악관현악단은 오늘의 청중에 맞는 음악을 연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습니다. 오늘의 국악을 하는 것이 국악관현악단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 오늘의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황 감독에게 낮선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의 작곡과 연주활동이 그래왔고 다른 국악인들과 다르게 국악인으로서 서양음악 콘서트장을 자주 찾는 것에서만 봐도 그렇다.

▲장한나, 나의친구 · 나의 동지여!

세월을 넘고 장르를 뛰어넘어 첼리스트 장한나와 절친한 친구라는 사실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작년 장한나의 지휘로 가야금 협주곡 '새봄' 을 연주했던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친구’에 대한 칭찬으로 여념이 없다.

“최근에 제가 책을 낸 것에 보면 한나가 서문에 ‘나의 친구 나의 선생님’이라는 글을 썼어요. 저도 그 책의 맨 마지막 글로 장한나의 이야기를 썼지요.” 기자가 “장한나로 시작해 장한나로 끝난 책이네요”라고 농을 하자 황 감독은 “그렇다”며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장한나랑 만난게 2001년 서울에서 인데 만나자 마자 친해졌어요. 첼로하는 사람이고 10대인데도 그때만나서 알아보니 내 음악을 무척 좋아하고 있고 다 들었더라고. 장한나가 대단한 서양음악연주자이면서도 하버드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도 나랑 비슷하고...”

아마 황 감독은 자신이 국악인이지만 법학을 전공한 것처럼 비슷한 길을 걷는 장한나에게서 ‘동지 의식’을 갖는 것 같았다. 

“그렇다보니 금방 친해져 이메일도 보내고 장한나가 서울에 올 때 마다 꼭 만나서 식사도 같이 해요. 작년 봄 한나가 지휘자로도 데뷔를 했는데 서양 오케스트라와 가야금이 연주하는 ‘새 봄’이라는 곡을 연주하고 싶어 했어요.

한나가 내 작품을 직접 지휘하고 한 무대에서 연주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죠. 아주 열심히 공부를 해 오고 지휘하기 전에 실제 가야금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우리 집에 와서 들어보기도 하며 아주 공을 들이더라고요.”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아는 것을 넘어서는 노력을 한 두 사람이기에 통하는 것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했지만 환 감독은 ‘고통을 참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좋아서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지만 재미있어서 하는겁니다. 연애 할 때 좋고 보고 싶어서 만나는 것이지 결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하면 신이 안납니다. 무엇을 하든 그게 좋아서 해야 힘이 나옵니다.

논어를 보면 ‘아는 것 보다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고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즐겨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요. 공부하는 기분으로 억지로 하면 무서운 힘이 절대 안 나옵니다.”

▲'황 감독의 유전자' 큰아들 물려 받아

그러면서 딸, 아들을 번갈아 가며 2남 2녀를 둔 황 감독은 공부를 무섭도록 좋아하는 둘째, 그러니까 첫 아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집 애들은 전부 공부를 잘했어요. 그중에서도 공부에 미친 애가 있는데 우리 큰 아들이예요. 수학자인데 10대 과학자로 뽑히기도 했지요.

서울대를 나와서 박사를 하버드에서 했는데 그 애가 하버드 다닐 때 나도 객원교수로 가 있었어요. 부모입장에서 봐도 무섭게 공부를 하는 애지만 하버드 애들이 내 아들 공부를 하는 걸 보고 입을 다물지를 못했지요.

미국에서 가장 큰 축제인 땡스기빙데이(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에는 학교는 물론 문을 닫고 학생들도 모두 축제를 즐기러 가요. 그날 어떤 음대교수가 저녁식사에 초청을 해서 같이 칠면조 먹으러 안 가겠나고 아들에게 물었더니 공부해야한다고 거절을 하더라고요. 나중에 전화 해보니 그날도 아무도 없는 학교에 새벽같이 가서 공부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 밖에도 아들의 공부 기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도면 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래도 결혼하니까 집에 오면 딸하고 놀고 가정을 챙긴답시고 집에서는 절대 공부를 안 한다”며 아들을 변호한다.

아들은 아마도 1999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가야금을 손에서 놓지 않은 ‘황 감독의 유전자’를 확실히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황 감독은 입원했을 때도 평상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1월에 수술을 하고 입원하던 중에도 ‘시계탑’이라는 곡을 썼고 기저귀를 차고 다니면서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독주회도 했지요. 그해 5월에는 독일 하노버 연주도 다녀왔어요. 의사도 수술을 해서 암은 떼냈으니까 뭐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격려해 주더군요.”

해외에서 먼저 주목 받았고 누구보다 활발하게 세계무대에서 우리음악을 선보여온 황감독이기에 국악인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물어봤다.

“평상시 우리 국악이 해외로 나가는 길이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세계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서 진출하는 방법입니다. 가요계에서도 거대한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보아 같은 가수가 있지요. 두 번째는 세계 여느 나라와는 다른 독창성을 지닌 음악을 만들어서 외국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지요.

저는 후자에 힘을 썼습니다. 제 음반만 하더라도 1965년에 미국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그리고 78년에서야 국내에 소개 됐지요. 2007년에 최신음악 5집을 냈을 때도 한국과 영국에서 함께 발매 됐습니다.

올해 3월 세계적인 음반을 소개하는 잡지 ‘쏭라인즈’ 에 영국에서 발매된 제 음반에 대한 비평이 실렸는데 별 5개를 받았습니다. 서양인들도 웬만해선 별 3개반 이상 얻기가 힘들어요.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을 어필하는 거죠. 저는 소수 매니아 내지는 엘리트 그런 쪽을 겨냥한 거지요.”

비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으로서는 소수의 매니아만 겨냥할 수는 없을 터. 그는   앞으로 새로운 창작음악을 선보이고 제대로 된 전통 연주를 들려주는 두 가지 모두의 시도를 보여 줄 것이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전했다. 

“새로운 창작 음악을 선보이는 것도, 이미 연주 된 곡들을 명곡화 하는 것도 모두 중요합니다. 단원들 개개인의 예술적인 욕구들을 분출하게 하고 고급스럽게 국악을 감상하고 싶은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랑방음악회’를 활성화 시키려고 합니다.

세계의 작곡가들에게 국악관현악곡을 요청해 연주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세계의 작곡가와 만나다’라는 코너도 구상중이고요. 하루저녁 하나의 곡을 정통으로 연주해보는 공연의 계획을 비롯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큰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