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스포츠용품점, 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동대문운동장 스포츠용품점, 그들은 다 어디로 갔나?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3.25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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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시티 쇼핑몰·잠실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악전고투 중
‘삶’과 ‘시각적 효과’ 조화 못 이룬 서울시 정책 문제점 노출


“야구 글러브를 사러 왔는데 매장이 다 없어졌어요. 몇 개는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로 갔나요?”
얼마 전 동대문운동장을 지나다 우연히 듣게 된 말이다. 동대문 운동장을 생각하면 우선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굳이 경기를 보러 가지 않아도 스포츠용품이 필요하면 어김없이 찾아갔던 곳이다.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스포츠용품점들... 동대문운동장과 역사를 같이해 왔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곳 상점들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은 1926년에 개장한 한국 최초의 종합운동장이자 82년간 우리나라의 체육사, 정치사, 문화사를 함께한 공간이다. 근대체육의 성지,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의 첫 개막전이 열렸고 야구, 축구, 육상 등 모든 운동경기가 열려 한국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했다.

▲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간직한동대문운동장이 호황을 누리던 당시 스포츠용품 상가들 모습
축구장에서는 말레이시아에 분패한 올림픽 예선전의 기억, 이스라엘을 통쾌하게 이기고도 호주에 덜미를 잡혀 속상했던 월드컵 예선전의 기억... 실업축구, 대학축구의 명승부전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향수에 젖게 한다.

1959년 건립된 야구장은 고교야구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꿈의 구장’이었다. 야구장으로 가면 71, 75년 아시아 선수권에서 우승을 거두던 기억, 한일은행의 김호중, 한전의 박영길, 황성록 등이 주도하던 실업야구에 돌풍을 일으킨 빨간 장갑의 김동엽 감독과 실업팀 롯데 자이언츠, 슈퍼스타 김재박 등 고교야구의 열기가 아련하다.

경기장에서의 열광은 사람들에게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높여 ‘스포츠용품점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스포츠용품점도 성황을 이뤘다.

65년에 생긴 ‘동대문운동장 스포츠상가’는 동대문운동장과 함께 스포츠 역사를 같이했다.

상가는 서울시에서 국가유공자와 체육문화 공로자 가족에게 준 특혜였다. 서울시는 스포츠 상점을 한다는 조건으로 점주들에게 입점을 허락 했다. 스포츠 상가가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상권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국내에서 유일한 스포츠상가 타운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후 동대문운동장 스포츠 상가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손님들로 호황을 이뤘다.

러닝머신, 헬스기구, 운동복ㆍ운동화, 등산용품, 인라인스케이트 등 거의 모든 스포츠용품을 갖추고 있었다. 20~30% 정도 저렴하고 에누리도 가능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유행과 시대에 따라 파는 물품이 변해 왔지만 과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철거당하기 전에 가업을 이어 수제 축구화를 파는 상가도 있었다.

처음에는 상인들이 손수 만든 축구화, 축구공, 야구배트를 팔았다고 한다. 이곳의 터줏대감인 ‘휠라 매장’ 조철현 사장은 “80년대 초 아시안 게임 유치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 용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90년대 말부터는 웰빙 바람으로 인라인스케이트, 러닝머신, 자전거 같은 건강.레저용품이 인기를 누렸다.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스키.스노보드도 인기 품목이 됐다. 조 사장은 "축구심판용 옐로.레드카드도 있고, 미식축구선수 보호대도 있고 운동과 관련된 것은 없는 게 없다"고 자랑했다.

첨단과 전통이 공존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회택, 김호, 차범근 등 숱한 스타들의 꿈도 아련

서정원, 이천수 등 유명 선수들도 유소년 시절에는 이곳에서 맞춘 운동복을 입고 뛰었다. ‘현대스포츠’의 나상혁 사장은 "대회에서 우승한 고교팀 감독이 '여기 옷을 입고 뛴 덕에 이겼다'고 전화할 때는 마치 내가 우승한 기분이 들었다"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2007년 8월 당시 수원삼성의 차범근 감독은 동대문운동장 철거 소식을 접하자 “그곳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동대문운동장과 스포츠용품 상가는 내게는 영원히 이루지 못할 기적 같은 일을 일어나게 했다.

유니폼이나 축구화 같이 내가 축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항상 갔던 곳”이라며 동대문운동장 스포츠용품 상가에 대한 추억을 회상했다.

이회택, 김호 등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은 동대문운동장이 삶의 전부였다. 이곳에서 울고 웃으며 꿈을 키웠다.

 동대문운동장에 들어선 70여 곳의 상가들은 운동선수들에게는 운동장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다. 운동에 필요한 모든 물건이 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여 년간 한국 스포츠의 성장을 지켜본 이 상가들은 동대문운동장 철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 스포츠용품점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스포츠용품’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유니폼에 등번호와 학교 마크를 달아주는 ‘대한사’의 박영길 사장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스포츠용품의 메카를 대안 없이 해체하는 것은 안목이 부족한 것”이라며 “다른 곳으로 이전해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곳이 동대문운동장에 있던 스포츠용품점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찾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규모와 시각적 효과만을 노리는 또 하나의 신개발주의 이벤트로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서울의 근현대역사유적은 오히려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스포츠용품 사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운동장 주변에서 운영해온 50여개 스포츠용품 전문상점들은 최근 각각 인근의 ‘굿모닝시티’ 쇼핑몰과 송파구 ‘잠실 스포츠 디자인 몰’로 입주했다. 1960년대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온 스포츠 전문상점들이 최근 서울시의 동대문운동장 철거 방침에 따라 이전한 것이다.

▲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스포츠용품점들이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 14번 출구와 연결되어 있는 ‘굿모닝 시티’ 지하 2층으로 옮겨갔다.

이전한 장소는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 14번 출구와 연결되어 있는 ‘굿모닝 시티’ 지하 2층을 찾아가봤다.

이곳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 전문 상가’라는 이름으로 스포츠브랜드 대리점들이 집결되어 있다. 하지만 상항은 예전 같지 않았다. 불경기를 감안하더라도 상인들의 반응이 너무 시원찮았다.

동대문운동장 스포츠상가 조합 권오선 이사는 지금 굿모닝시티로 옮겨가 ‘berghaus’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여기 들어올 때는 그래도 발전 지향적으로 잘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빈 점포가 많고, 주변에 같은 브랜드 스포츠매장이 입점해있는 쇼핑몰들이 많아서 힘들다”며 “신시장이 원래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도 3년은 고전이라는데...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시큰둥한 말이 난감한 상황을 반영했다. 이 같은 상황은 잠실운동장에 입점해있는 상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권오선 이사는“50집 있었는데 둘 다 포기하고 아예 다른 곳으로 간 사람도 있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에는 방문객들이 전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잠실스포츠 매장의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굿모닝시티의 스포츠매장 운영에 대해서는“옛 것 지켜나가면서 새것이 공존하도록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옛 동대문에서의 추억을 이어갈 수 있는 사진전, 전시회 등 이벤트로 사람들이 추억과 향수를 찾아 이쪽으로 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컨텐츠 개발로 활로 찾기 나서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자구책도 논의되고 있다. 동대문의 터줏대감들이 서울시 및 관련 기관과 함께 활성화 위한 방안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 동대문운동장 스포츠상가조합 권오선 이사는 현재 굿모닝시티에서 ‘berghaus’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권오선 이사는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서울시에도 뭔가 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와 추억을 하나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해 경제를 살리고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대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대문운동장내 ‘대호스포츠’를 운영하던 허진호씨는 “중국은 스포츠 상품 전시상가를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는데 서울시는 스포츠용품 산업에 대해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더 잘되라고 지원을 하지 못할망정 말살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 체육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왜 패션분야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건너편의 두산타워나 밀리오레도 최근 장사가 잘 안 되어 빈 점포가 생긴다고 들었다.

공원을 만들고 패션타운을 또 지어 같은 업종만 자꾸 확장하면 경쟁력이 있겠는가? 새로 들어 설 패션타운의 몇 개 층에 스포츠 상가 도매점을 만들고 이들이 입점할 수 있게 해주면 쉽게 해결될 일”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