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7성급 호텔 자리할 수 있을까?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자리할 수 있을까?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10.2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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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년간 방치된 구(舊) 미대사관저 개발을 둘러싼 논란

 

[서울문화투데이=성열한 기자] 최근 서울시(시장 오세훈)는 광화문이 복원됨에 따라 광화문과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축이 서울의 역사문화의 심장부가 될 수 있도록 이 일대를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담은 명소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옛 미대사관 숙소 부지는 법정 공방과 함께 논란에 휩쌓여 있다. 이 부지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항공에서 7성급 호텔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졌고,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이 호텔을 유해시설로 분류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본지에서 지속적으로 관심(관련기사 : 2008년 12월 5일-제3호 1면 기사 “구 미 대사관저 ‘방치’ 활용시급”/ 2009년 4월 10일-제11호 1면 기사 “구 미대사관저, 시민들 품으로 돌아가나?”)을 가져왔던 이 사안에 대해 자세히 파헤쳐 봤다.

 

▲수 십 년간 공터로 방치되고 있는 구 미대사관저, 외부와 철저히 단절돼 있다.

호텔이 유해시설? vs 교육 환경 영향 준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49-1 일대에 위치한 ‘구(舊) 미대사관저’에 7성급 호텔 신축문제로 대한한공과 서울 중부교육지원청 사이에 행정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지난 19일 변론을 위한 세 번째 공판에 이어 오는 12월 9일에는 최종 공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 구 미대사관저(연면적 3만6642㎡-1만1100평, 연면적 13만7440㎡)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 원에 사들여 지상 4층·지하 4층의 7성급 호텔을 비롯해 영빈관 급의 한옥게스트 하우스, 갤러리, 공연장 등이 들어서는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해 서울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 미대사관저 부지 주변에는 덕성여자중학교를 비롯해 덕성여자고등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의 심의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법률 제9932호 학교보건법 제5조 1항에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교육감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을 설정·고시하여야 한다. 이 경우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은 학교 경계선이나 학교설립예정지 경계선으로부터 200미터를 넘을 수 없다’ 는 내용의 법조항을 근거로 지난 3월 30일 중부교육지원청은 ‘학교환경위생 정화위원회’를 열고 대한항공이 제출한 7성급 호텔 등이 들어서는 ‘복합문화단지 조성안’을 부결 처리한 것이다.

현재 구 미대사관저 부지 50m 이내에 덕성여중, 덕성여고, 풍문여고 이렇게 3개의 학교가 인접해 있기 때문에 호텔이 들어서면 학생들의 교육환경 및 안전, 환경 위생 등 여러 측면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높아 호텔 건립을 반대한다는 것이 중부교육지원청의 입장이다.

교육청의 심의에 통과하지 못한 대한항공 측은 지난 6월 22일 “호텔을 건축해도 학교 학습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내금지행위 등 해제신청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출했다.

지난 9월 7일에 두 번째 변론이 있었던 공판에서, 대한항공 측은 호텔 출입문이 학교와 400m 이상 거리에 위치시키고 나무를 심어 차단 효과를 내 학교와 격리시킬 것이란 주장을 내세우며, 호텔은 복합문화단지 조성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반면에 중부교육지원청은 심의내용은 호텔이 들어서기 전의 학습환경 등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지 않다며 대립각을 세우며 여전히 평행선을 그렸다.

구 미대관저 부지는 어떤 곳?

현재 대한한공의 소유로 넘어간 구 미대사관저 부지는 여러 민감한 사안들로 인해 그동안 사용돼 오지 못하고 수 십 년째 방치돼 있는 상태다.  높이 2-3m 의 담벽과 철조망은 흉물로 남아 주변 경관을 해치고 있다.

▲도심 가의 흉물로 자리하고 있는 구 미대사관저의 울타리와 철문

조선시대 상궁을 돕는 무수리들의 숙소로 사용됐던 공간으로 알려진 구 미대사관저는 20세기 중반이후 부터는 미국으로 권한이 넘어가 주미 대사관 직원용 숙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서울의 핵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나 외교사절의 주거용 건물이기 때문에 보안이 심해 외부인에게는 용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후 미대사관이 쓰지 않고 방치하다가 미대사관 신축부지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시민단체들이 ‘역사문화벨트의 관문을 내줄 수 없다’는 등 여러 반대에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 측은 용산으로 이전이 결정됨에 따라, 삼성생명에 이 부지를 1400억 원에 매각한 바 있다.

삼성생명도 이곳을 인수한 후 녹지 공간을 그대로 살린 4층 고급 오피스 빌딩을 건립, 계열사가 입주하거나 외국 금융기관이나 공관에 임대하는 구상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다, 현대미술관을 건립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미대사관 측과 비슷한 이유에서 사업을 포기하게 된다. 당시 삼성생명 관계자는 “경복궁-삼청동-인사동이 이어지는 문화 지대인 만큼 개발 이익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삼성생명이 직접 사업을 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결국 이 부지는 한진그룹의 대한항공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서울 최고의 역사문화 체험 문화벨트의 핵심은 바로 송현동!

이렇게 광화문과 매우 가깝고 평지라는 뛰어난 입지 조건 때문에 건설부동산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곳으로서 이른바 ‘노른자위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구 미대사관저가 오랜 시간 동안 개발되지 못하고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채 흉물로 전락하게 된 것은 바로 4대궁을 비롯한 우리 문화재가 모여있는  관문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덕수여자중학교, 한옥 건물들을 갈라 놓고 있는 것은 구 미대사관저의 높은 담벼락이다.

우선 경복궁 입구의 바로 오른쪽에 위치해있고, 부지 뒤쪽으로는 북촌한옥마을이 이어져 있다. 더불어 서울의 상징이자 우리나라의 상징 거리라고 할 수 있는 최근 복원된 광화문을 비롯한 광화문 광장과 매우 근접해 있다.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인사동 전통문화거리까지 송현동 구 미대사관저 부지 주변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서울시도 송현동을 중심으로 경복궁-창덕궁-가회동-인사동을 서울 최고의 역사문화 체험장소로 만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렇듯 지리적 특성상 공공성이 강한 친환경 개발이 이뤄지길 바라는 사회 여론은 개발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부지에 또 다른 특징으로 고도제한을 들 수 있다. 이부지는 사적 지구여서 건물을 신축할 경우 높이 16m(4~5층)를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미대사관 이전 신축부지로서 불리한 조건 중에 하나였으며, 삼성생명을 비롯해 현재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항공 측이 개발 계획을 세우는데 제약을 가져다주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호텔을 짓는다면 한옥 호텔로!

대한항공 측은 이러한 조건과 사회적 여론을 어느 정도 수렴해, 개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7성급 초호화 호텔을 포함하고 있지만, “주변 문화공간과 연계해 도심 문화예술 발전 및 관광 인프라 확충에 기여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 이라며 전통한옥 게스트하우스와 갤러리, 공연시설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로 구성하기 위해 7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서울 도심의 상징인 ‘문화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포부를 내보인 것이다.

▲구 미대사관저 부지 주변에 위치한 북촌한옥마을

하지만 일각에서 7성급 초호화 호텔을 대신하는 ‘한옥’ 호텔이 자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주변의 문화시설과 조화를 위해서는 서양식 건물보다는 한옥 호텔이 더 효과적이며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윤종복 (전)종로구문화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종로의 관광 발전을 위해서 최고급 숙박시설이 들어오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위치적 특성상 한옥 호텔이 들어서야 된다는 생각이다. 주변 관광시설과 시너지 효과로 여러 가지 경제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도 한옥 호텔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종로구 한 지역 인사는 “구 미대사관저의 위치상으로도 북촌한옥마을과 붙어 있기 때문에 그곳과 연계해 한옥 호텔을 짓는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북촌한옥마을이 현재 큰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 한옥 호텔을 짓고 그 뒤편에 북촌한옥마을이 이어진다면 2-3년 안에 발 딛을 틈도 없는 관광단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옥 호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렇게 호텔 설립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의 제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도 표명하고 있다. 앞서 한옥 호텔을 주장했던 종로구 지역 인사는 호텔이 유해시설로 분류되는 상황에 대해서 “과거 호텔을 생각하면 나이트클럽을 비롯한 유흥업소와 모텔이나 러브호텔을 연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호텔과는 다른 하나의 관광인프라로서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곳이 되길 바란다”며 “학교 측이나 중부교육청 측에서 너무 과거의 예규, 규정, 법률 등의 잣대만 가지고 호텔을 유해시설로 단정 짓고 있지만 오히려 현재 상태로 방치한다면 우범지역이 되기 쉽상인 곳이 구 미대사관저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더불어 “학교 측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도서관을 지어준다든가, 미술관을 만들어서 학교와 호텔을 어느 정도 격리시키면서도 학교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물들을 건설하는 방법 등을 통해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복궁 옆 호텔이 왠 말인가!
 
반면에 구 미대사관저에 호텔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황평우 문화연대위원장은 “아무리 영리 목적을 가진 기업 소유의 땅이라고 하더라도 한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중요 지역에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경복궁 인근 지역이 가지는 특수성에 따라 해당 부지를 국가가 매입해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구 미대사관 저의 담벼락을 경계로 현대식 고층 빌딩과 기와가 대조를 이루고 있는 모습

또한 종로구의 한 주요 인사는 “현재 경복궁을 온전히 보전하지 않은 채 주차장이 들어서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 기무사 터에 들어설 국립현대미술관과 북촌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주차 문제 해결을 위해 구 미대사관저 부지는 호텔보다 지상공원과 지하주차장이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의견으로 현 종로구청 자리와 구 미대사관 부지를 맞바꿔 구청사를 낮게 짓고 옥상을 공원화해 주차장을 확보하자는 의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구 미대사관저 부지 주변에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한 주민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잘 살려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호텔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지 않지만 현재 크게 외벽을 두르고 있는 담장을 낮춰 열린 공간으로 통행이 가능하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며 호텔을 대신해 공원을 짓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공원을 지어 놓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치안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다. 또한 많은 노숙자들이 모이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또 다른 한 주민은 “주변에 학교가 많아 학생들이 많은 곳인데, 호텔을 짓는 것은 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불특정 다수라고 할 수 있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을 것이며, 향후 카지노나 클럽 등이 생겨 날 수도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며 호텔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법의 잣대로 끝? 국민 여론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 필요해

한편,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며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한한공 소유의 미 대사관저 부지는 문화재 조사 전문기구인 재단법인 한강문화재연구원을 통해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 문화재가 잔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에 따라 현재 문화재 발굴을 진행해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화재 발굴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 미대사관저 부지 모습

오는 12월 있을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과의 공판 결과를 통해 호텔을 비롯한 복합문화단지 신축 여부가 결정될 이 논란에 대해 한 시민은 “현재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판사한명의 판결에 좌우된다는 것은 안타깝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는 궁궐을 비롯한 문화재와 다양한 문화시설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도심의 중요지역인 만큼 이곳의 개발 과정에는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한항공이 목표로 하는 도심 속 ‘문화랜드마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민심을 읽는 과정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 홍보팀 관계자는 “현재 공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법에 대한 조율과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과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다고 설명하며 “국민의 여론을 수렴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경복궁과 북촌한옥마을을 잇는 관문인 구 미대사관저 부지를 언제까지 높은 담벼락이 가로 막고 있는 폐쇄적 공간으로 남겨둘 수는 없는 실정이다. 이곳은 주변 관광시설과 연계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단순히 기업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국민 여론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한옥과 문화재와 어우러지며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