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꽉 찬 ‘성북동’ 실속 있는 봄나들이
속이 꽉 찬 ‘성북동’ 실속 있는 봄나들이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3.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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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의 멋과 까다로운 입맛 사로잡는 맛집들로 눈과 입이 즐거워~


다람쥐 통 굴리듯이 살아가는 요즘, 살기위해 존재하는지, 존재하기 위해 사는지 고민해볼 틈도 없이 봄은 오고 마음은 뒤숭숭 하기만 하다. 문득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현실을 내팽개칠 수 없어 괜히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어진다. 옛 서울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추억이 그리울 때 찾아가면 좋은 ‘성북동’으로 발길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사랑하는 가족, 애인, 친구와 손잡고 성북동에서 멋과 맛으로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보자.
한성대 입구를 기점으로 최순우 옛집, 선잠단지, 수연산방, 한옥단지, 길상사, 대사관저 그리고... 맛집까지
서울의 어느 곳보다 옛 정취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곳. 과거와 현재를 간직하고 성북동 골목을 고샅고샅 누비다 보면 옛사람들의 흔적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속이 꽉 찬 성북동을 실속 있게 나들이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오면 그 길이 성북동길이다. 길 따라 걷다 성북동 주민센터를 지나면 칼칼한 매운 샤브칼국수가 유명한 ‘등촌샤브칼국수’집이 보인다.

▲ 최순우家
그 옆 좁은 골목길에 다소곳하지만 귀품 있게 자리하고 있는 ‘최순우 옛집’. 1920년대 지어진 본채와 바깥채가 마주보고 있는 전통한옥으로 외관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120여 평이나 된다. 한국의 미를 일찍이 알아본 이가 살던 곳답게 우리 옛 것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했다. 미닫이창, 추녀 끝의 소 방울 등 곳곳에는 그의 정취가 묻어있고 그가 수집한 석조물과 정성껏 가꾼 나무들이 뒤뜰의 운치를 더한다. 단원 김홍도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가 있는 현판도 볼 수 있다.

2002년 겨울, 사라질 위기의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모금으로 지켜내 그 의미를 더하고, 그로 인해 ‘시민문화유산 제1호’라는 별칭을 얻었다. 화~토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만 개방한다.

최순우 옛집을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 앞의 ‘손가네 곰국수’ 집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소문 듣고 찾아오는 곳이다. 곱창전골과 만두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한 번 온 사람들은 다시 찾아 문턱이 닳고 단골손님들의 예약전화가 밀려들어온다.

▲ 선잠단지

▲ 성락원

골목길을 다시 나오면 길 건너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낯선 홍살문이 눈길을 끈다. 이곳이 ‘선잠단지’. 양잠을 중요시하던 조선시대 성종 때 누에풍년을 기원하는 선잠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1908년 제사를 사직단으로 옮겨 지내면서 지금은 조그마한 터에 30여 그루의 뽕나무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매년 5월 성북구에서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 선잠제례를 재현하고 있다.

선잠단지 왼쪽 길을 따라가면 세 개의 갈림길을 만날 수 있는데 고민하지 말고 그 길 위로 쭉 가면 사적 378호로 지정된 ‘성락원’을 만날 수 있다. 개인소유라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별장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은밀한 곳을 탐색하듯, 오르막길에서 높지 않은 담장 너머로 어렴풋이나마 그 때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남몰래 보물을 찾아낸 탐험가가 된 기분으로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까치발을 들고 애쓰다보면 남들보다 조금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지도..

성락원 뒤편에는 1960년대에 생겨나기 시작한 단독주택들 사이로 전통 한옥기와들이 가득 들어차 진풍경을 이루는 ‘십주원(최사영 고택) 및 한옥단지’가 있다. 원형에 가깝게 재현해놓은 정릉1, 3동 한옥단지를 통해 조상의 지혜와 과학을 엿볼 수 있다.

정릉1동의 한옥들은 온돌과 마루가 균형 있게 결합된 조상의 주거문화를 특징을 살렸다. 정릉3동의 한옥들은 신분, 남녀, 장유를 구별해 공간을 배치한 상류계층의 한옥 구조와 구조에서부터 재료에 이르기까지 기능적인 면을 중요시한 서민들의 한옥 구조의 두 가지 장점들을 잘 조화시켰다. 상류주택의 멋스러운 장식성과 서민들의 실용성을 융화시킨 한옥들을 보며 전통 한옥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해 볼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세 갈래 길로 돌아와 왼쪽의 선잠단지길로 들어서면 얼마 안 가 ‘간송미술관’이 보인다. 한국 전통미술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민간박물관으로 미술관 연구에 중요한 산실이다.

1966년에 설립해 5, 10월에만 국보·보물급 소장문화재를 전시·개방한다. 하지만 또 다른 미니 박물관이라 불리는 정원은 항시 개방돼 있어 잠시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와 풀, 꽃들과 어우러져 있는 석불, 석탑, 석등 등 문화재급 석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 정겹기까지 하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나니 이쯤에서 배가 고플지도 모르겠다. 간송미술관 인근에는 소문난 맛집 ‘성북동 돼지갈비집’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기사식당 가운데 한 곳으로 입맛 까다로운 기사들의 혀를 만족시키며 39년을 해오고 있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국내산 어린 돼지고기를 아침 일찍 초벌구이로 기름을 뺀 후 연탄불에 석쇠로 구워낸다. 1, 3주 일요일에는 쉬고 영업시간은 밤 10시까지.

다시 선잠단지길로 들어서 ‘길상사’로 향하자. 길가에 즐비해 있는 건물들을 보니 여느 곳과는 다르게 빌라 하나까지도 옛 정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주변의 예스러움과 어우러져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곳곳에서 산책하는 듯 삼삼오오 주변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현재와 옛것의 조화 골목 같은 듯 다른 느낌, 다른 듯 같은 느낌으로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 길상사
10여분 골목과 건물에 심취해 걷다보면 눈앞에 도심 속 도량(불도를 닦는 곳) ‘길상사’가 숙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이 있던 자리에 고(故) 김영한 여사의 시주로 세워졌으며, 김여사의 유해가 뿌려져 있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이 길상사의 어른으로 주석 중이다.

불도체험, 수련회(템플스테이) 등으로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고, 미술대회, 콘서트까지 개최되는 문화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1997년 세워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사찰을 돌아보기 위한 필수코스가 됐다.

1981년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65년, 165년의 느티나무 두 그루와 사찰 곳곳이 아름드리나무가 숲을 드리우고 맑은 공기를 뿜어내며 사시사철 절경을 이루고 있다. 도심 속에 있지만 나무와 숲, 맑은 공기 등이 마치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에 온 듯 아늑해 차분하게 사찰을 거닐며 생각에 잠기기에도 좋다.

길상사를 나와 그 길 따라 올라가면 ‘명원다례전수관’이 있다. 은은한 차 향기로 가득 차 있는 이곳은 어머니인 한국다도의 선구자 김미희 선생의 뒤를 김의정 선생이 이어 한국 차 문화를 정립·보급하고 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문화로, 손님에게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마음이 있고, 어른에게 좋은 차를 올리는 예가 있다.

일본의 차 문화가 더 알려져 있지만 그 원류는 바로 우리나라다. 명원다례전수관에는 주말이면 격과 율이 있는 한국 전통 차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한국적인 다도를 배우고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명원다례전수관에서는 꽤나 떨어진 삼청터널 초입에는 ‘삼청각’이 있다. 1970~1980년대에 요정 정치의 산실로 대표되던 곳으로 회동, 회담의 협상장소이 이루어졌다. 2000년에 서울시가 문화시설로 지정하고 새롭게 단장해 공연장, 한식당, 찻집 등으로 꾸며진 문화공연장으로 변신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 전통공연을 열어 우리 문화의 맥을 잇고 있다.

삼청각에서 걸어 내려와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있는 사거리에서 내리막길로 조금 내려오면 탁 트인 공원보다 태극기를 포함한 각 나라의 국기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사관저 30여개가 집중돼있는 성북구의 자랑거리인 ‘성북우정공원’. 이곳은 삼청각과 함께 외국인과 함께하는 문화행사들이 열려 한국과 세계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나니 이쯤에서 배가 고플지도 모르겠다. 이곳부터 심우장까지 가는 길목 곳곳에는 성북동의 오래된 맛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누룽지 백숙집을 시작으로 제주토속음식점 비양도, 한정식 이향, 유정, 성북 전통설렁탕, 손칼국수와 만두가 유명한 성북동집, 금왕 돈가스. 섭지코지 까지... 한식, 양식, 분식, 일식 등 맛집들의 행렬로 오랜만에 행복한 고민에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대부분 단골들은 식사시간에 맞춰 일부러 찾아온다.

맛집들을 뒤로하고 금왕 돈가스까지 내려오면 건너편에 조그마한 팻말이 보인다. ‘심우장’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아슬아슬 좁은 산동네 골목길을 오르면 빼꼭하게 차 있는 집들 사이에 ‘심우장’이 자리하고 있다.

▲ 심우장
만해 한용운의 한과 넋이 깃든 심우장은 그가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일제강점기 1933년에 직접 지은 집이다. 네 칸으로 구성된 단아하고 소박한 심우장의 심우는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의미.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을 향하고 있는 이유에서도 그의 의지를 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조선총독부와 마주하는 것을 거부해 지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한 해 앞둔 1944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쓰던 방 입구에는 만해 한용훈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이 쓴 현판이 걸려있다. 방에는 지금도 그의 글씨, 시집,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당시 그의 생활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심우장을 내려오면 성북2동사무소 왼쪽에 ‘수연산방’이라는 전통찻집이 보인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 선생이 1933년부터 14년을 머문 곳이다. 지금은 손녀가 개조해 도심 속의 한적한 찻집으로 차와 함께 쫄깃쫄깃 맛있는 떡으로 더 유명하다.

작은 문을 들어서면 그리 넓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마당에서 소박함을 느낄 수 있다.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찻집에서 전통차를 마시며 한옥의 정취에 빠져들면 이곳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라일락 나무 아래 놓인 동그란 테이플과 의자가 운치를 더한다.

▲ 수연산방
본채에는 사랑채, 안채, 마루까지 6개의 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사랑채에는 앉으면 삼면이 트여 있어 찻집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담장 너머로는 북악산 자락이 보인다.

수연산방에서 내려오면 성북초등학교 맞은편에는 여유롭게 서울성곽을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그 산책로 앞에도 보리밥과 소고기국밥으로 유명한 마전터 등 성북동의 유명한 맛집들이 즐비해있다. 이 일대의 소문난 맛집을 찾아온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신발과 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성북동에 가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 한성대입구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귀족’이라는 수제화 전문점. 건강의 척도인 발을 보호하면서 그 사람의 발의 특징을 고려해 만드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신발을 신고 있지만 신지 않은 듯 발만 편한 것이 아니라 온 몸이 편안해지는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만날 수 있다.

성북구에서 성북동에 산재해 있는 우리 고유의 문화재들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5월부터 10월까지 둘째, 넷째 수·토요일에 서울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