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화·전설·상상력 넘치는 ‘스토리텔링 거리로’
시·동화·전설·상상력 넘치는 ‘스토리텔링 거리로’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03.30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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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상인 의식전환·정책적 뒷받침 나와야

인사동 다시보기 3-간판도 문화상품 

오~! 자네 왔는가, 깔아놓은 멍석 놀고 간들 어떠리, 나에 남편은 나뭇꾼, 박씨 물고온 제비, 두레 멍석, 머시 꺽정인가....
문화지구 인사동에서 볼 수 있는 간판들이다. 인사동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문화지구로서의 갤러리나 화랑, 미술관, 골동품 점, 필방 등을 발견하기 전에 먼저 거리의 간판들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상점 간판들의 이름이 여느 거리에서나 볼 수 없는 특이한 표현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사동을 지나는 시민들이 거리의 간판 이름들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 또 자주 화제에 올리기도 한다.

예컨대 ‘나에 남편은 나뭇꾼’이나 ‘박씨 물고 온 제비’ 등의 간판을 보면 우리 전래 동화가  떠올라 재미 있다. ‘깔아놓은 멍석 놀고 간들 어떠리’ ‘두레 멍석’ 등의 간판을 보면 시골 집 넓고 깊은 마당이 떠 오른다. 그 ‘마당 깊은 집’ 마당에서 잔치 벌려 한바탕 놀던 정겨운 모습들이 생각난다. ‘오~! 자네 왔는가’는 그리운 옛 친구를 만나 반갑게 손잡는 상상을 하게 한다. 이처럼 인사동은 거리 간판만으로도 사람을 즐겁게 하는 그 무엇인가 있다. 시와 동화와 전설과 상상으로 사람을 이끌어 준다. 그래서 인사동은 ‘문화거리’다. 비록 옛날처럼 고즈넉하지도 않고, 문화사업장들이 밀려나고, 싸구려 중국산 악세사리들이 시장바닥을 이루고 있다 해도, 그래도 서울에 이 만한 거리가 없음을 그 간판 이름들이 말해 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인사동의 간판들을 제대로 정비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간판도 같이 건다면, 간판이 나타내는  ‘스토리텔링’만으로도 ‘문화지구’의 이름값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간판에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상품화 하는 거리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래로도 못 막을 ‘간판들의 전쟁’ 

그런데 인사동 간판들의 현주소는 ‘이야기’를 상품화하기엔 너무나 먼 것이 또한 현실이다.
부분적으로 같은 규격을 유지하며, 보기 좋게 걸린 간판들을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들쑥날쑥 크기를 자랑하며, ‘눈에 띄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많은 상점들의 간판들 가운데 자기 집 간판을 잘 띄게 하려니 규정을 어겨가며 크기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게 상인들의 의식이다. 이런 식으로 대로변 간판이나, 이면도로 간판이나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이 규정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면도로 한옥 집을 개조해 문을 연 음식점이나 상점들의 경우엔 한옥 구조상 도저히 규정에 맞는 간판을 걸 수가 없다고 호소한다.  

인사동 간판들의 이런 상황을 놓고 서울시와 종로구의 관계 공무원은 ‘간판 폭탄 지구’라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손을 댈 수 없을 지경임을 인정한다. “손을 대면 폭탄, 안대는  게 낫다”라고 까지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담당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로구의 경우를 보면 區 전체 관리 대상 간판은 대략 5만 2천개인데, 담당 직원은 10명이다. 그 중 5명은 벽보·현수막 등을 맡고, 5명은 허가를 맡고 있다. 수치로만 본다면 직원 1인당 1만 3천개의 간판을 관리해야 한다. 이들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자고 나면 불법 간판’이고, 어디선가 불법 간판이 생겼다가 사라져도 알 수가 없을 때가 허다하다. 손을 쓰고 가래로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우리나라 광고 간판의 현 주소를 인사동이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유혹’을 넘어

인사동의 간판 관리는 △옥외 광고물법과 △문화지구 관리계획 △인사동 지구단위 관리계획이라는 세 가지 법을 적용한다. 이 세 가지 법을 다 충족시켜야 허가가 가능하다는 것. 특히 2003년 2월 이후 적용된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에 따르면 신규 업소일 경우 2층 이상에선 가로용 간판을 달 수가 없다. 2층 이상의 업소는 돌출 간판만 허용한다.(가로형 간판: 가로 3미터, 세로 0.45미터 이내/ 세로형 · 돌출형 간판: 가로 0.6미터, 세로 1미터 이내 제한). 

이런 규정과 관련 한 관계자는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하며 “현실을 감안, 인사동 간판의 법적인 부분을 다소 완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해외여행에서 본 선진국의 경우를 들며 “인사동의 모든 간판들이 지금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아름답게 문화적으로 가꾸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규격을 지켜 영어나 일본어 간판도 함께 설치할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면, 인사동은 간판만으로도 시와 동화와 전설과 상상력이 넘치는 한국의 ‘스토리텔링 문화거리’로 세계 속에 거듭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망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인사동. 그래도 저력이 남아 있는 인사동. 더 이상 희망을 잃어가기 전에 현지 상인들의 대대적 의식전환과 관련 기관의 정책적 뒷받침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권 대 섭 대기자 kds@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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