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은사, 우상의 파괴자’ 리영희 선생 타계
'사상의 은사, 우상의 파괴자’ 리영희 선생 타계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0.12.0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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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 저서 편찬, 언행일치 행동하는 지성인 영면

▲ '사상의 은사, 우상의 파괴자' 리영희 선생이 지난 2010년 12월 5일 영면했다.
[서울문화투데이 홍경찬 기자]'시대의 지식인,실천하는 지성'으로 불려온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지난 5일 새벽 향년 81세 일기로 영면했다.

 1929년 평북 삭주에서 태어난 리 전 교수는 1957년부터 합동통신에서 기자로 일하다 1964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이후 조선일보 등에서도 기자생활을 하다가 수차례 해직되기도 했다.

 1972년부터 1995년까지 한양대에서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각각 4년간 해직됐고 1989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구속되는 등 일생에서 8년이나 옥고를 치렀다.

 리 전 교수는 생전에 언론자유상, 만해실천상, 한국기자협회 1회 '기자의 혼'상, 후광 김대중문화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전환시대의 논리', '분단을 넘어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21세기 아침의 사색'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2005년 대담집 형식의 자서전 ‘대화'의 발간을 끝으로 집필 활동과 사회적 발언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1994년 출간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 권력이든 진실을 은폐, 날조, 왜곡하려 한다면 그에 대항해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임을 천명한다"며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 일관된 생각이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유신과 5공 시절 금서가 됐으며 ‘전논’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며 은밀히 유통된 베스트셀러였다. 냉전적 반공주의가 득세하던 당시, 그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드러난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는 용기를 보인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으며,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밤새워 읽었고 그 후에도 읽고 또 읽었다”고 전하고 있다.

 수유+너머 고병권 연구원은 리영희 선생에 대해 "'근거들의 근거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 근거 아래로 뚫고 내려가 '모든 근거들의 근거 없음'을 폭로했고, 리영희 선생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자 이전에 각성을 전달하는 교육자"임을 역설했다.

 지난 2001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기자들이 진실에 접근하거나 깊이 있는 기사를 쓰려면 취재원 못지않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며 해당분야의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또 청렴을 강조했다. "기자 스스로 타락하고 부패해서는 권력을 비판하기는 커녕 권력층에 얕보이게 되고 굴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라고 강조했다.

▲ 故 리영희 선생은 생전에 "역설적으로 내 책이 안팔린다면 정말 행복할꺼야" 라며 행동하는 실천가,지성인으로서의 초지일관 모범적인 삶은 귀감이 됐다.
 지난 2005년 성공회대 '나의 역정,펜으로 싸운 반세기'란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사회를 지배하는 잘못된 사상과 관습,가치관 등을 절대시하는 우상에 도전하고 파괴하는 것이 이성적 지식인의 의무이며 그러한 우상 파괴자로서의 내 임무와 역할을 자진해서 맡아온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선생님이 가시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리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상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민참여당 참여정책구원 유시민 원장은 "인생의 사표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으로부터 현대사, 정치, 남북관계, 국제관계 등 넓은 분야를 배웠다"고 털어놨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내 선생님이자 선배님이며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섰던 그런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전쯤 댁에 찾아갔을 때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다"며 지난 일을 떠올리기도 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닷새 전에도 의식은 있지만 숨만 쉬는 상태여서 '힘내라'고 말하고 돌아왔다"며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노래지고 고개를 들지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출신의 전·현역 지자체장과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대거 조문을 와 고인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을 표했다.

 특히 고인의 사상에 감화돼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486정치인들은 정신적 스승을 잃은 절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평화센터 명의로 조화를 보내왔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조화를 보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故 리영희 선생은 생전에 "역설적으로 내 책이 안팔린다면 정말 행복할꺼야"라며 행동하는 실천가,지성인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