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캠브리지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영국 캠브리지 대학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 이수경/캠브리지 대학 방문 교수
  • 승인 2010.12.0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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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단순히 금융적 투자가 아니다’ 추운 한파 속, 오르는 등록금으로 인해 얼어붙는 마음들

800년이 넘는 대학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이어 온 지역, ‘케임브리지’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 오는 관광객이나 학생들로 끊임없이 붐빈다. 이 도시에서는 한파가 몰아치거나 우중충한 빗속에서도 따스한 불빛이 새나오는 펍(Pub)과 카페를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

▲케임브리지 시내의 유니크한 크리스마스 풍경
12월이 되면 그랜드 아케이드나 마켓 스퀘어(재래식 시장), 트리니티 스트리트와 연결되는 킹스 컬리지 주변의 크고 작은 도로 상점에는 연말 분위기로 가득하다. 어느새 1학기가 끝나가면서 학생들도 분주히 움직이는 것 같다.

필자는 학기가 끝나기 전 연구 과제인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 [사람은 왜 싸우는가? Why men fight?]등 저서 다수)의 친필 선언문(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인 1955년에 라디오 강좌 첫 방송에서 발표한 원고)을 확인하려고 눈이 채 녹지 않은 시내로 내려 갔다. 최근에 생긴 트리니티 컬리지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지인 교수들과 만나서 식사를 한 뒤, 자료를 보러 그곳의 명물이자 유서 깊은 건축물인 렌(WREN) 도서관으로 갔다.

12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만 오픈을 하는 이 도서관은 케임브리지 대학 내의 오래 된 주요 문헌 등은 물론, 트리니티 대학 출신의 아이작 뉴튼(케임브리지 대학 수학 교수,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학 등)이 적었던 글, 머리카락, 그가 사용했던 사람 얼굴이 새겨진 지팡이(walking stick)등이 남겨져 있다. 같은 트리니티 대학 출신으로 곰 캐릭터인 푸(Winnie-the-Pooh)이야기를 만들어 낸 밀른(Alan Alexander Milne)의 친필 원고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8세기의 찬송가 악보나 13세기의 Medical Texts, 1623년에 출판 된 셰익스피어의 첫 작품집 등 종교, 의학, 문학의 귀중한 문헌들을 보여준다. 그와 함께 소크라테스부터 밀턴, 드라이덴, 바이런 등 수 많은 철학 사상가 들의 흉상들이 도서관 전시 코너 유리 속 안에 전람되어 있다.

1679년 11월 28일에 역제곱 법칙과 관련하여 논쟁을 벌였던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에게 보낸 뉴튼의 편지를 보다 보면, 근대 과학의 기초를 마련한 위대한 과학자들의 이론 대립의 ‘쿨’한 대응과 섬세하게 써 내려간 그의 필체가 친근하게 와 닿는다. 그가 후크에 반발하여 철저한 이론 전개를 방대한 책으로 펴 낸 것이 1687년에 발행된 540페이지의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인데, 라틴어로 적혀진 이 프린키피아의 초판 인쇄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중요한 문헌과 유명한 건축물로 알려진 렌 도서관

 

7센티 정도의 동그란 그릇 안에 들어 있는 뉴튼의 회색 빛 머리 카락을 보면서 왠지 그가 교내 어딘가에 있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공을 초월한 간접 만남이지만, 이런 감동이 1차 자료 찾기의 최대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역시 대량으로 인쇄된 글들과는 다른 그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라서 쾌감이 느껴진다.

필자를 초청해 준 마크 교수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를 받고 난 뒤, 같이 갔던 근대 한국사 전문가인 이 지원 교수와 함께 눈이 내린 트리니티 컬리지의 캠퍼스를 걸어 나왔다. 캠퍼스 가운데에 놓여 있는 저 차디찬 분수에서 시인 바이런이 목욕을 했다고 했나? 찬 바람이 부는 탓에 더더욱 춥게 느껴진다. 참고로 렌 도서관에는 바이런의 글도 전시되어 있으니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원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눈 내린 트리니티 컬리지와 바이런이 목욕했다는 분수

잠시 트리니티 컬리지의 교회에서 철학 사상가들의 하얀 대리석 조각상을 보고 난 뒤, 전날에 주문한 명함을 찾으려고 킹스 교회 옆의 올드 스쿨로 향했다. 가다 보니 형광색 옷을 걸친 제복 입은 경찰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올드 스쿨 옆의 작은 문 앞에 서 있다. 몇 학생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입구에 버티고 있고, 그 옆에 [교육은 단순히 금융적 투자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그렇다. 지금 영국의 대학생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는 비상 사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3290파운드(환율 사이트에서 시세를 알아보면 정확)를 상한선으로 하던 대학 수업료Tuition fee를 최대 3배까지 인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왔다. 이런 긴박한 현실 타개를 위해서 학생들은 물론 학부형들, 그들을 옹호하는 교수들 입장에서는 반대 시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용 창출이 활성화 되는 호경기라 할지라도 받아 들이기 어려운 제안이건만, 이 어려운 불황 속에서 보수 자민당의 연립 정부인 데이빗 캐머런 정부는 2012년 신학기부터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은 대학 진학률이 절반을 못 미치는 곳이라서 캠포드(캠브리지, 옥스포드), 런던대 등의 명문 대학을 제외한 대학들의 입학률이 현저하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 전체의 운영 문제도 심각한 사태를 자아낼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학 올드 스쿨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

필자와 이 교수는 전날 그 곳을 지나다 슬로건이 걸린 것을 보고, 올드 스쿨 2층으로 올라 가 봤다. 도서관 2층의 넓은 커뮤니티 홀에는 수 많은 학생들이 컴퓨터를 갖고 와서 작업을 하고 있고, 한 구석에는 그들이 가지고 온 이불 속에 파묻혀 잠을 자거나 근처 퓨전 요리 집 마크가 들어 있는 컵라면 등을 먹고 있었다. 벽에는 시위 스케줄을 적은 안내판과 슬로건, 주의 등을 적은 종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우리가 가서 질문을 하자 한 학생이 와서 상세하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준다. 국내외로 분간된 서명란이 준비 되어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교대를 하는 듯 했다. 모두 현실적인 난관 타파를 위해 열심히 힘을 합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고 상기시켜야 한다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학기가 끝나가자 학생들의 움직임도 활발해 질 가능성이 있기에 경찰들이나 언론이 나와서 대기했다. 

그들이 보여 준 이번 사태에 관한 설명문의 타이틀은 [수업료 인상은 여기서 빌린 빚으로 다른 한 쪽 빚을 메꾸는 격Tuition fee increases are ‘robbing Peter to pay Paul’]이었다. 원래 이 말은 성 베드로와 성 바울과의 관계에서 나온 말인데, ‘빚을 빚으로 갚는다’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학생들의 데모 전단을 보면 [Increasing tuition fees will mean the Government will have to borrow more to fund student loans.]라고 주장하며, 정부가 학생들에게 빚덩이를 넘기려고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저런 상황 배경이야 있겠지만, 영국의 경제 상황과 대학의 움직임을 단편적이나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전날 들어 갔었던 자리를 지나서 같은 건물 뒤 쪽에 있는 명함 인쇄부로 갔더니, 대학 경비원들이 오늘은 학생들 시위 때문에 직원들이 모두 쉰다고 다음 주 월요일에 오라고 한다. 그 참, 조용한 학생들의 시위에 직원들까지 쉬다니… 하지만 수업은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저런 핑계로 노동자의 권리만 주장하지 소비자의 불편함은 생각지도 않는 유럽이란 말을 상기하며 우리는 되돌아 서서 근처 ‘미카엘 하우스 카페’로 갔다. 

▲트리니티 스트리트의 명물, 미카엘 하우스 카페

트리니티 스트리트에 있는 이 명물 카페는 오래 된 성당의 일부를 카페로 했기에 내부에는 성당이 있고, 넓은 벽에는 화가들이 작품을 전시해서 팔기도 한다. 입구에서 는 불우 이웃 돕기 바자도 하고, 커피와 빵 맛이 괜찮아서 아는 사람들은 즐겨 찾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나 사랑을 이룬 신혼부부를 만났다. 한국을 떠나서 오랜 외국 생활을 하다가 방문 교수로 케임브리지에 왔던 그는, 아내와 세 번째 만나서 결혼을 결정했다고 하니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케임브리지는 많은 사람들이 만남을 이루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지인도 이 곳에 와서 운명적인 만남과 정열적인 고백으로 얼마 전에 인연을 맺었다. 아마도 각박한 쳇바퀴 속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여유, 다양한 만남의 장소가 밀집한 케임브리지라는 너그러운 환경이 그렇게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여기서 만난 연구자들과 각종 펍과 레스토랑을 즐기며 오랜만에 자신의 연구를 되돌아볼 여유를 가졌으니, 젊은 친구들이야 오죽하랴.

만남, 열정, 사랑이 오랜 역사와 문화적 환경에서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케임브리지. 비록 추운 눈, 바람으로 손발이 시리고 콧물이 저절로 흘러 내려도,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골목길을 가득 채우는 열기 넘치는 곳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