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은 역사다, 문화다,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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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12.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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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 량 고향마을 '샹양'의 제 이름 찾기

 

삼국지에서 만난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지략과 예지의 상징으로 비쳐졌다. 조조의 군대와 대치한 저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순식간에 수 십만개의 화살을 확보해 낸 전술이나 바람을 일으켜 적선을 불태운 이야기는 두고두고 전해 온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은 이야기도 유명하다. 여러 차례 중원진출을 시도하다 위나라 사마중달의 지구전에 막힌 제갈량은 234년 오장원에서 끝내 병사하고 만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제갈량은 가장 아끼던 장수 강유에게 자기 형상을 한 나무인형을 깎아 위나라 군대에 맞설 것을 알려 줬다. 제갈량이 죽고 나자 과연 위나라 군대가 사마중달을 앞세워 쫓아 왔다. 도망가던 촉군은 오장원 산 뒤에서 갑자기 큰 함성을 지르며 되돌아 섰다. 사마중달이 보니 촉군 한 가운데에 제갈량이 부채를 든 채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급히 말머리를 돌린 중달은 강북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때 중달이 본 것은 이미 죽은 제갈량의 나무인형 형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제갈량은 전쟁의 화신이요 병법의 천재와 같은 존재였다. 중학시절 삼국지를 읽을 때 덕장인 유비가 제갈량 같은 지장과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용장을 얻고도 악한인 조조를 이기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났었다. 그것은 책을 읽는 사이 나도 모르게 제갈량의 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그만큼 무궁무진, 기가 막힌 전략과 전술로 삼국 각축의 중심에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였다.

천하의 인재를 얻고 싶었던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영입한 상대도 제갈량이다. 유비의 참모 서서(徐庶)가 "샹양성 밖 30리 산골에 뛰어난 인재가 있다"며 제갈량을 추천하자 유비는 지체없이 신하들을 이끌고 그를 찾았다. 아주 못생긴 추녀로 알려진 부인과 살고 있던 제갈량은 유비의 그릇됨을 보기 위해 두 번을 거절했다가 세 번째 찾아오자 마음을 열고 주군으로 모실 것을 맹세했다.

제갈량이 유비를 따라 나서기 전 묻혀 살았던 초야지역 샹양(襄陽). 중국 후베이(湖北)성 샹판시로 돼 있던 이 지역이 원래 지명인 '샹양'이란 명칭을 회복했다고 한다. 중국 국무원이 최근 도시 이름을 원래대로 바꾸게 해 달라는 샹판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샹양은 지난 1952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주변지역과 통합되면서 샹판시로 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원래 지명을 되찾은 셈이다. 우리에겐 껄끄러운 중국의 동북공정에서도 보았듯이 역사연구와 전통에 대한 중국인의 집착은 대단하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나라이니 당연하겠지만 중국은 지난 2007년부터 역사 전통의 계승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옛 지명 되찾기 운동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최근 새주소 갖기 추진으로 번지 중심 주소체계를 길 이름 중심 주소체계로 바꾸어 왔다. 그럼에도 역사전통 계승과 문화관광 활성화를 염두에 둔 지명 되찾기나 주소체계 정립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자의 고향마을만 하더라도 중리(中里) ․ 송괴정(松槐亭) ․ 구마리(驅馬里: 말을 달리는 동네) ․ 내지(內地) ․ 질구지 등의 역사적 지명이 분명히 있음에도 일본인들이 아무 근거 없이 붙여놓은 금호동(琴湖洞)이란 동명을 쓰고 있다. 능(陵)이 있는 동네라는 뜻의 능계(陵溪)라는 고유지명을 두고 안천동(安川洞)이라 부르고 있다. 붕어듬 ․ 현고 ․ 한천(漢川) 등의 아름다운 이름을 두고도 삼창동(三昌洞)이란 행정동명을 쓰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일본인들이 우리 역사와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어거지로 갖다 붙인 이름들이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이런 엉터리 행정동명을 쓰는 곳이 수 만 군데가 될 듯 하다.

서울 6백년 중심인 종로구의 경우도 인왕산 기슭 겸재(謙齋) 정선(鄭歚) 선생의 진경산수(眞景山水) 문화를 알리며 관광산업으로 이을 수 있는 길 이름들을 상당수 부여할 수 있음에도, 인식부족으로 방치하는 경우도 보인다. 차제에 우리도 각 지역 역사와 전통을 알리며, 지명 자체가 역사이며 문화이며 상품이 될 수 있는 이름 되찾기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