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10.12.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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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린트 이스트우드,미국,1992년,범죄 서부극

며칠 동안 극장 개봉당시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악마를 보았다>를 보고 필자는 무척 흥분에 빠졌다.

원한이 맺힌 살인 사건이라 아주 잔인하고 살인의 과정이 통쾌하여 내입에서 그래 죽여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저런 사람들은 얼른 죽어야 되는데...라는 분노와 함께 일종의 대리만족을 확실히 느꼈다. 이런 영화에는 영화평이 필요없다.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니 음악이 어땠는지,미술,분장이 좋은지조차 평가할 시간이 없다.

얼마전, 17살짜리 아들이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학교 친구가 있다고 불쑥 말을 꺼낸다. 엄마인 나는 화들짝 놀란다. 어떻게 그 말에 적절한 대답을 해줘야할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누가 착한 아들에게 그런 맘을 갖게 했을까? 의례적인 대답으로 넘어갔지만 걱정스러워 19살 딸에게 너도 학교에서 그런 친구들이 있냐고 물어보니 당연하지? 라는 대답이다. 터프한 딸은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친구도 있다고 덧붙인다. 이번엔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도 예스였다. 나는? 나도 학창시절 죽었으면 했던 사람은 있는 듯 했다. 

나는 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런 맘을 갖고 있으니 그런 친구에게 에너지를 쏟는 건 너만 손해 같다. 무심해지는 연습을 해라.. 그리고 그날 아들과 광저우에서 야구 금메달을 따는 경기(스포츠중에 가장 야구를 좋아함)를 같이 보며 그런 대화를 했던가 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요즘 아들은 자기가 한말은 잊어버린 듯하다. 사람은 어느 계기로 미워하고 사랑하고, 웃고 우는 그런 존재이다.

오늘 소개하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사람이란 변할 수 있는 존재이며 누구에게나 상대적인 악인이란걸 보여준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총잡이와 검객들의 세계에서 고수란 평범한 사람들과는 살인에 대한 철학적 실천이 다르다.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1993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남우조연(진 핵크만), 편집상을 수상한다. 이 작품으로 배우보다 진정한 감독으로 명장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의 <밀리언달러 베이비><그랜 토리노>에서 더욱 성숙해지고 영화적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의 정서적 비장함과 멋진 풍경은 훨씬 가슴속에 오래도록 기억나게 한다.

과거 총잡이들 세계에서 잔인하기로 떠들썩했던 살인마 빌 머니(크린트 이스트우드)는 클로디아라는 여자를 만나 농장에서 정착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아내가 병으로 죽고 어린 자식들과 생활고를 겪는 빌 머니에게 현상금이 걸린  청부 살인 의뢰가 들어온다. 죽여야할 대상은 창녀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한 질나쁜 카우보이들. 고민하던 빌은 친구 네드(모건 프리먼)와 함께 길을 떠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이야기의 진행이 다소 느리지만 하나씩 이야기의 층을 쌓아가며 해피 엔딩의 결말로 몰아가는 힘이 크다.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데 이런 영화가 최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