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꿈꾸는 백발의 신사 - 이순재
돈키호테를 꿈꾸는 백발의 신사 - 이순재
  • 김은균 공연전문 기자
  • 승인 2010.12.13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우에게 나이가 들면서 가장 치명적인 어려움은 체력적인 어려움보다 심리적인 면에 더 크게 좌우 받는다.

대사암기력이 바로그것인데 대사를 놓치게 되면 자꾸 N. G를 내게 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연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의 배우가 무대에 출연을 할 수는 있어도 비중 있는 역을 맡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번에 <돈키호테>에서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이순재의 존재감이 커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1971년 연극 <시라노 드 베르주락>으로 무대에 선 이순재는 이번에는 최고령 돈키호테가 되어 명동예술극장의 무대에 선다. “돈키호테는 정신착란증에 걸린 것 같기도 하지만 소년 같은 순수한 사람이다. 모든 것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과 원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결단력이 강한 인물”이라는 해석이다. “코믹 연기를 보여줘서 관객들을 웃기기도 하겠지만 돈키호테의 단순함이 현실사회와 부딪히며 자연스럽게 웃음이 유발될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것이 처절하게 보일 수도, 재밌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12월10일부터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돈키호테>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1605년작 소설 <돈키호테>를 원전으로 만든 빅토리앵 사르두의 희곡을 각색했지만 원작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다른 것은 없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까 아플 틈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올해 일일극 ‘사랑해 울지 마’에서 집안의 중심을 잡아주는 조부 역할을 맡았고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 역을 맡았고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도 출연하였다. 이미 1998년부터 대학원생들에게 매주 한 차례씩 연기 워크숍을 지도하는 세종대 석좌교수직도 그대로이고 그를 필요로 하는 사회 행사나 자선 봉사활동에도 기꺼이 참가한다.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배우 이순재는 배우의 전형을 몸으로 써나가는 중이었다.  “우리 때의 배우는 돈 버는 직업도 아니고 명망을 얻는 직업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유럽의 작가주의 예술영화, 미국의 장르영화와 영국의 셰익스피어 시리즈에 나오는 올리비어와 존 길거드 처럼 작위를 받은 대가들의 명연기를 보면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이른바 예술적인 접근이었던 셈이었죠.”

그가 생각하는 연기력은 선천적인 면보다는 철저히 후천적인 노력에서 완성된다고 믿는 쪽이다. 그리고 대사만 질러서는 절대로 신뢰감을 구축할 수 없다고 믿는다. 무대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범을 보여야지만 연기에서도 관객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1935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시절 연극에 심취해 배우의 꿈을 키웠고 1956년 유진오닐의 <지평선 넘어>를 통해 데뷔했다. 52년 동안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현재진행형의 무대를 써내려가고 있으며 92년 민자당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부대변인을 거치기도 했지만 다시 배우로 돌아와 연기에 몰두해 왔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팬 층을 넓혔고 이를 통해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연기자로서는 최초로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