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레앙 허의 재밌게 공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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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르레앙 허(허성우)
  • 승인 2010.12.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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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고품격 문화예술의 세계 수도인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좌를 지날 때 이 화려한 가르니에의 작품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건축설계자를 제대로 예우 할 때가 되었다고 봄- 앞에 탄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제1막눈송이춤

 파리 중심가에 세워진 오페라 가르니에는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프랑스 국력의 노골적인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크기도 크지만 참 화려하다. 파리를 찾는 여행객의 필수코스이기도 한 이 건축물이 발레전용 극장이란 점은 프랑스 궁정역사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떡여지는 데, 르네상스 선진문명의 꽃을 피운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딸인 까뜨린 메디시스가 앙리 2세와의 결혼을 통해 들여온 문화가운데는 손으로 고기를 뜯어먹던  프랑스인들의 기름기 묻은 손을 우아하게 만들어줄 나이프의 잃어버린 형제, 포크 뿐만은 아니었다. 

바로 춤, 발레였다. 특히, 루이 14세의 발레의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왕들의 발레에 대한 애착은 루이가로부터 나폴레옹 가문에까지 이어졌다. 나폴레옹 3세 때에 준공된 이 가르니에는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는 더욱 화려한데 루이 14세가 세계 최초로 설립한 유서 깊은  발레학교와 국립발레단이 상주해있다.

동시대의 우리는 귀족들만이 누리던 호사를 다소 저렴한 비용을 지불할 의지와 능력만으로 세계 정상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됐으니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됐다. 그러나 문화추격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도 발레 공연 티켓을 실제로 구입하게 된 건 한 참 뒤의 일이었는데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음악을 전공하는 유학생의 신분에서 세계 유수의 음악 공연을 뒤로하고 발레티켓을 예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2막꽃의왈츠

 내가 본 파리는 세계적인 공연이 하루 밤 사이에 여기저기 도처에서 열리는 그야말로 공연예술의 천국이었다. 가끔 파리를 방문한 여행객들이 충격적일 만큼 낙후된 지하철경험이나 개똥을 밟은 얘기 혹은 인종차별 받은 경험담 등을 통해 환상이 깨진 파리 여행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할 때가 있는데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느낀  파리의 진면목은 이와 같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길가 여기저기에 폭격이 가해진 개똥을 피해 찾아간 가르니에의 파리오페라단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밀로의 비너스가 인간으로 환생해 극도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무용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로테스크적이면서 한편 에로스적이었다. 그 때 받은 감동 때문이었는지 이후에도 몇몇 고전발레나 심지어 모던발레의 공연에도 기꺼이 표를 구해 관람하게 되었다.

▲제2막마리와호두왕자(김지영,김현웅)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발레가 프랑스를 거쳐 러시아에서 고도로 발달했다면 그 증거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건너간 안무가 프티파와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협력적 작업으로 탄생한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등과 같은 발레극은 각기 다른 두 장르가 무대를 통해 만났을 때 얼마나 환상적일 수 있는 지 보여준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부모의 손에 이끌린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연인들도 함께 보기에 최고의 레파토리임에 분명했다. 바깥의 날씨가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동화 속 여행을 통해 마음의 불을 지피게 한 세계적 수준의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의 이번<호두까기 인형>공연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인들과 호탕하게 우정을 얘기하는 즐거움 속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던 순수함, 이 순수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 일깨워주는 귀한 시간이었다.

오를레앙허(허성우)/작곡가/재즈피아니스트 

음악교육과 전공, 프랑스 파리 유학.
IACP, 파리 빌에반스 피아노 아카데미 디플롬, 파리 에브리 국립음악원 재즈음악과 수석 졸업.
현재 숭실대, 한국국제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