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회의 장단점을 피렌체에서 보다(1)
이탈리아 사회의 장단점을 피렌체에서 보다(1)
  • 이수경 도쿄 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1.01.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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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문화를 꽃 피운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와 시에나, 고성과 13개의 오래된 탑들이 어우러지는 산 지미냐노 등의 토스카나Toscana 지방, 이탈리아 최강의 공국이었던 해상 도시 베네치아(베니스) 등의 이름은 학생 때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더더구나 피렌체는 이탈리아 최고의 우피치 미술관이 있는 곳이고, 토스카나 무스탕 가죽 제품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무엇보다도 자연과 사적지, 문화적 예술적 분위기가 어우러진 그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싶었기에 로마를 떠나 이탈리아 중북부 지방으로 향했다.

영국에서 미리 인터넷 예약을 했던 이탈리아 유로 스타를 타려고 로마의 중앙역인 테르미니 역으로 갔는데, 큰 규모지만 직원이 승차권을 체크하는 곳이 아니라 티켓 구입 확인을 열차 안에서 승무원이 체크하는 시스템인 듯, 직원이 없는 오픈 된 공간이었다.

열차 행선지를 알리는 전광판이 곳 곳에 배치되어 있고, 플랫홈Bin을 확인하고선 자신이 탈 기차를 찾아서 타면 된다. 뭐든지 사전 준비로 몇 번이고 확인을 하는 일본 사회의 습성에 익숙한 탓인지 필자는 피렌체 행의 플랫홈 안내가 출발 직전까지 없어서 불안도 느꼈다. 런던의 킹스 크로스 역에서 캠브리지행의 안내가 전광판에 나오지 않다가, 떠나기 몇 분 전에 안내 방송만 나와서, 역 건물과 떨어진 9번 플랫홈(해리 포터의 로케지, 제법 거리가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간 경험이 있다. 몇 초 늦었으면 못 탔을 그런 기억이 오버랩 되어서 출발 시간10분 전에 테르미니 역2층의 경찰에게 물었다. 그도 안내가 늦다며 같이 걱정을 해 주는 참에 5번 플랫홈이라는 번호가 들어 왔다.

느긋함…어디까지 인내가 필요할까? 충분한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는 감각적 행동도 필요하지만, 지긋한 인내력도 지구촌 여행에는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서둘러서 1호차의 예약 번호로 가서 앉았더니 바로 떠난다. 처음 타보는 이탈리아의 유로스타 1등석은KTX 특실이나 일본의 신칸센보다 괜찮은 설비이다. 게다가 신문 및 음료수, 간식용 과자 등을 서비스 해 준다. 그리고 조금 달리다가 직원이 와서 티켓 확인을 하면서, 좋은 여행이 되라고 한다. 그렇게 제법 달리다 보니 마침내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피렌체(영어 표기로 Florence)에 도착한다. 이 곳이 한 때 이탈리아의 수도였고,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 문화를 가꾸고,거장 미켈란젤로와 레오날드 다 빈치,보티첼리, 도나텔로가 태어난 문화와 예술의 도시인가? 시성(詩聖) 단테가 그토록 가슴 사무치는 사랑을 했고, 베아트리체를 만나서 영혼 깊숙히 새긴 곳인가?

조금은 낭만적인 상상을 하면서 어딘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낯설지 않은 피렌체 역에 내리자, 바로 왼쪽으로 규모가 큰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가 보인다. 14세기에 도미니크 수도회가 세운 교회인데, 중후한 느낌이 든다. 그 교회를 중심으로 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텔을 찾았다. 일단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한 뒤(유서 깊은 건물과 프레스코 그림이 천장 등에 그려진 클래식한 분위기의 호텔이었다), 옆 골목으로 나오니 높이 솟은 웅장한 돔 형의 성당이 보인다. 가까이 갈수록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리석 문양이 돋보이는 성당이 보였다.

아---, 이 성당이 바로 피렌체에서 가장 높고 유명한 두오모와 세례당이다. 지금까지 로마나 다른 유럽에서 본 성당과는 분위기나 대리석 디자인도 많이 다른 웅장하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두오모 주변을 보니 밝은 분홍색이나 연두색의 대리석으로 된 높은 종탑이 보인다. 피렌체파의 대표격 미술가인 조토Giotto di Bondone가 14세기에 설계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례당 동쪽 문을 보면 로렌초 기베르티 등이 참가하여 만든 성서 이야기의 10개의 부조 패널이 아름다운 금 빛과 원근법이 어우러져 한 층 더 화려하게 보인다. 주변이 어두워지는데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세례당 주변을 걷다 보다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이자, 괴테가 절찬한 [신곡La divina commedia]으로 자신의 첫 사랑을 세계적으로 알린 단테(Dante Alighieri)가 세례를 받았다는 기억이 났다.

단테, 어린 9세의 소년은 산타 마리아 데 체르키 교회에서 영혼 조차 송두리째 앗아간 베아트리체를 만난 뒤, 첫사랑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평생을 가슴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며 [신곡] 속에 그녀를 거룩한 여인으로 승화시켰다. 그 단테의 생가가 바로 두오모 성당과 피아차 델라 시뇨리아(우피치 옆에 있는 광장으로, 오랜 정치적 문화적 구심점 역할을 한 이 광장에는 많은 조각품들과 분수 등과 피렌체의 시청이 모여 있다)사이에 있고,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난 아르노 강의 베키오 다리도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비록 그 사랑은 집안이 정한 정략 결혼으로 이뤄지지는 못 했지만,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이기에 더더욱 그녀를 갈구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던 게 아닐까? 게다가 베아트리체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살아가는 의미 조차 앗아간 충격과 자신의 사랑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단테의 집념과 애정이 결국 [신곡]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낳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테의 영묘는 피렌체에 유해를 묻지 못하여 해안 도시 라벤나에 있고, 베아트리체의 영묘는 비스콘티 집안의 여인이 되어 밀라노의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Castello Sforzesco에 있지만, 그 숭고한 영혼을 묶은 사랑의 이야기는 세월과 국가를 초월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읽혀지고 있다.

단테의 집과 우피치 미술관 주변 아르노 강변에 이르는 피아차 델라 시뇨리아나 피아차 델라 레프블리카를 걷노라니, 지고지순한 사랑을 의식하며 [슬픈 베아트리체](제14집)란 곡명으로 혼신을 다 해 노래 하던 조용필의 뜨겁고 간절한 목소리가 뇌리를 맴돌았다.

사랑…사랑이란 아름다운 이름에 현혹되어, 감정이 식으면 사랑이 끝났다는 말로 쉬이 상처를 주고 받는 이기적 성향의 값싼 만남이 만연하는 현대 사회이기에, 단 두 번의 만남으로 평생을 바친 그 사랑의 가치는 더 빛나고 아름다운지 모르겠다.물론 그 사랑에 대한 집착이 잘 못 되면 스토커 행위도 될 수가 있지만, 그녀를 향한 사랑하는 마음을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기에 그 사랑에 대한 평가가 높을지 모르겠다.

그런 사랑의 역사가 흐르는 피렌체에서 토스카나 와인 한 잔을 곁들인 티본 스테이크, 티라미스는, 와인이나 초컬릿 혹은 육류를 싫어하던 필자 조차도 충족할 정도로 음식 맛이 괜찮았다. 분명 피렌체나 베네치아 요리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많다. 그래서 로마에 싫증이 나도 이 곳을 오면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로마 지역과는 다른 매력의 토스카나 지방을 좀 더 알기 위해, 필자는 호텔에서 당일치기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일찍 빵과 살라미, 햄 몇 종류와 카푸치노(근처의 아시시 출신인 성 프란체스코가 소속했던 카푸치노 수도회에서 커피에 우유를 넣어서 마시기 시작한 커피가 카푸치노가 되었다고 한다)를 마신 뒤, 자그마한 도시지만 성과 교회, 성당, 탑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림이 되는 산 지미냐노(11세기에 건립 된 콜레자타 교회와 가죽 제품과 고급 햄 등의 토산품 상점이 유명하다)와 시에나 지역을 들러서, 피티 궁전이 경영하는 90만평의 포도 농장을 가진 토스카나 포도주 생산지를 들러 와인 강좌와 각종 와인 시음을 한 뒤, 어두컴컴한 피렌체로 돌아왔다. 특히 이탈리아 최고의 성당이라 불리는 시에나의 두오모는 상감 세공을 한 대리석으로 우아하면서도 독특하여 바닥을 보는 것만도 참으로 다양한 작품에 취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부는 미켈란젤로나 도나텔로 등의 멋진 작품들을 소장한 교회 답게 내부가 웅장하며 거대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건축과 더불어 독특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들과 바닥 문양이 중후함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근처에는 14세기에 건축된 팔라초 푸블리코(시청 건물)가 넓은 광장 앞 쪽으로 자리 잡고 있고, 맞은 편의 폰테 가이아 연못과 시원한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