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는 회화가 아니다?
한국화는 회화가 아니다?
  • 이은영 기자ㆍ최재영 기자
  • 승인 2011.01.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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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등 국내 유명 미술대학 서양화를 한국화의 상위 개념에 둬

본지는 신년을 맞아 미술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서양화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내 유명 미술 대학의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했다ㅡ편집자주-

회화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이며 세계 미술을 주도하는 핵심 장르 중 하나다. 세계 유수의 대학 뿐 아니라 한국 역시 홍익대, 서울대 등 대표 미술 대학에서 오래 전부터 회화과를 개설해 연구 및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 빈센트 반 고흐 <오베르들의 집> 보스턴 박물관 소장

몇몇 대학은 기존 서양화과를 회화과로 명칭을 바꾸기도 했다. 회화라는 개념이 서양에서 들어온 만큼 서양화과를 회화과로 확장시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한국화의 경우는 어떤가.

흔히 전통 한국 미술로 인식되는 한국화는 회화를 포함하고 있지만 동시에 회화가 전부는 아니다. 완전히 분리되지도, 그렇다고 합쳐지지도 않은 두 장르는 한국 미술 학계에서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화에도 회화로 정의될 수 있는 작품이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회화란 ‘평면 위에 색과 선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형상을 표현하는 조형예술’이다. 회화의 개념이 들어온 것은 서양에서지만 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수묵담채화를 비롯해 한국에도 고유한 회화 장르가 존재한다. 게다가 현대에 이르러서 회화의 개념은 넓게 확장되어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는 포괄적 미술 장르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국내의 유명 미술대학들은 회화의 서양식 개념에서 탈피한지 오래다. 서울대의 경우 동양화과와 서양화과를 애초에 분리시켰다. 숙명여대와 국민대는 아예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 없이 회화과만을 두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사립 미술대학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홍익대의 경우는 동양화과와 회화과를 따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나열된 회화과 강좌를 보면 <서양 미술사> 등 대다수가 현대 서양 미술에 관련된 과목이다. 담당 교수의 전공 역시 서양화 전공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서양화과라고 하지 않고 굳이 회화과라는 명칭을 붙였을까.

▲ 홍익대학교 전경

학교측 관계자는 “원래 회화과가 서양화과였다. 다만 글로벌 시대에 맞춰 서양화에 국한시키지 않고 밀도 있는 장르 연구를 위해 회화과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양화과 개설 강좌를 보면 <전통회화기법>, <중국회화사> 등 회화 관련 강좌가 엄연히 존재한다.

동양화에도 정선의 그림을 비롯한 회화 작품이 다양하다. 회화 관련 강좌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관계자의 말처럼 회화 장르 연구를 위해서라면 굳이 동양화과와 회화과를 따로 나눌 필요는 없다.

관계자는 “홍익대학교가 지닌 동양화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동양화를 가르치는 교수는 3명인 반면에 회화를 가르치는 교수는 13명이다. 개설된 강좌의 수도 회화과의 수가 압도적이다. 물론 그 강좌의 대부분은 서양화 관련 과목이다.

경희대 역시 한국화과와 회화과를 나누어 가르치고 있다. 경희대 한국화과 모 교수는 “서양화란 개념이 들어온 것은 1920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부터”라며 “단순히 학과 명칭의 문제가 아니라 사적으로 규명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현대에 들어서서 미술의 영역은 동양화와 서양화로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다. 현대 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장르로 나누기 어려운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에 서양화과를 회화과라는 명칭으로 개편한 것”이라며 “서양화과가 단순히 회화과로 이름만 변경된 것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현대 미술을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해 회화과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화에도 회화 장르가 있지 않느냐란 질문에는 “한국화라는 개별 장르가 회화에 비해 축소된 것은 사실”이라며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국화는 현대 한국 미술을 총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전통 예술을 유지 보전하는 목적에서 설립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유하자면 국악과 현대 음악의 차이다. 국악은 현대 음악에 비해 듣기도 어렵고 많이 찾지도 않지만 여전히 계승 및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라며 “한국화과와 회화과를 따로 둔 것 역시 그런 맥락”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전통 한국화에도 회화라고 부를 수 있는 장르는 엄연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 경희대 교수는 “엄밀하게 말해 한국화에 회화라는 개념은 없다. 단지 서화라고 불렸으며 회화라는 거대 범위에 포함시키기보다는 사용된 재료나 창작 방식에 따라 세부 장르로 구별하는 것이 옳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회화라는 장르 명칭에 있다. 본문에서 설명한 회화의 개념에 따르면 굳이 현대 미술을 제외하고라도 전통 한국화에도 회화라는 명칭은 얼마든지 부여할 수 있다. 서양의 경우에도 각각의 그림이 모두 똑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화라는 명칭으로 모든 작품을 포괄한다.

따라서 한국화를 세부 장르로 구분해야 한다면 회화 역시 같은 방식으로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각각의 작품은 비슷한 화법을 사용했더라도 약간의 변화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눠진다. 회화라는 이름이 작품을 포괄하는 장르라면 한국화 역시 포괄적인 장르 명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회화와 한국화는 그 명칭 상 동일선상에 놓이기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앞서 말한 한국의 고유한 전통 예술을 연구하는 의미에서 한국화과가 존재한다면 회화 장르 속에 포함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세부 명칭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당하다. 회화와 한국화가 같은 선상에 구분되어 놓이는 것은 결국 회화가 한국화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뉘앙스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 미술 대학을 보면 회화 속에 일본화를 포괄시키거나 혹은 회화의 개념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과를 배치하고 있다. 동경예술대학의 경우 회화학과를 큰 틀로 설정하고, 그 아래 일본화과 유화과를 구분했다. 회화라는 거대 장르 아래 일본과 서양 미술의 성격을 구분한 것이다. 유화가 서양의 전통 미술 장르인 것을 고려할 때 상대편에 있는 일본화가 지닌 일본 전통 미술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 동경예술대학

다마 미술 대학은 조형학부를 개설하고 그 아래 일본화과와 유화학과를 구분하고 있다. 회화라는 장르를 아예 설정하지 않고 과를 구분했지만 동경 예술 대학과 같은 방식으로 일본화가 지닌 전통 미술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단국대 동양화과에 재직 중인 왕열 교수는 “회화 속에 한국화를 포함 시키는 것은 자칫 한국화가 지닌 다양한 성격이 소거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화가 지닌 회화적 성격의 미술 외에 다양한 면이 회화라는 장르 아래 놓이게 되면서 자칫 상실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라며 “회화 장르가 현대 미술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미술을 억지로 포함시키려는 것은 오히려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염려했다. 서양에서 들어온 회화 개념을 억지로 한국화에 적용시키려다 한국화가 지닌 고유한 성격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회화가 한국 미술의 전체를 차지하지 않는 이상 회화 장르 속에 한국화를 포함하는 것은 한국화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회화가 한국 미술 속에 뚜렷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화와 회화를 완전히 분리시켜 놓는 것이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윤범모 미술평론가는 이에 대해 “회화라는 장르는 동양화와 서양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회화과와 동양화 혹은 한국화과를 평행선상에 놓는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회화는 장르 명칭이고 한국화나 동양화는 매체에 따른 구분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 놓이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이 같은 모순된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윤범모 평론가는 “미술 학계 내부의 폐쇄적인 문제”라며 “(본인이) 10년 동안 강연과 칼럼을 통해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한국화라는 것이 모필 등 전통 매체에 따른 구분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매체를 넘나들며 장르의 확장을 꾀하는 것이 현대 미술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구분은 낡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동양화라는 명칭은 식민지 시기에 일본이 사용하던 것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상징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될 단어”라고 못 박았다.

또 한국화라는 장르가 한국 전통 예술을 유지 보전하는 입장이 아니냐 라는 질문에는 “한국 전통 미술을 유지 보전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매체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장르적 구분을 통해 수묵화나 채색화라고 명명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지적했다.

다매체를 통한 장르 경계 넘기가 현대 미술의 주축을 이루는 지금, 회화라는 명칭은 현대 미술을 포괄하는 용어로 적합하다. 전통 미술을 존중하고 계승 및 발전시킨다는 취지에서 한국 혹은 동양화과의 필요성 역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단순히 표면적인 명칭에 불과하다고 해도 동양 혹은 한국화과를 회화과와 분리시킨 상태로 두는 것은 자칫 회화를 한국 미술에 포함되지 않은 영역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회화가 현대 주류 미술을 포괄하는 장르 명칭이라는 점에서 한국 미술 자체를 낙후되거나 과거의 유물로 전락시키는 악영향을 불러올 수도 있다.

▲ 정선 <인왕제색도> 리움 박물관 소장

만약 동양 혹은 한국화과가 전통 미술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명칭이라면 오히려 과 명칭은 그러한 취지를 훼손시킨다. 동양과 한국이란 이름은 현대에서도 통용되는 이름이며 장르적 성격이라기보다 앞서 윤범모 비평가가 지적한 것처럼 매체에 따른 구분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정한 지역을 지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회화와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심지어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지니고 있는 오리엔탈리즘, 즉 서양에 대한 사대적인 면을 드러내는 단적인 면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회화는 서양에서 발발한 개념이지만 이미 지역적, 민족적 색채와 구분되는 중립 성향을 지닌 지 오래다. 따라서 서양화과만을 회화과로 변경하는 것은 한국화가 지닌 회화적 성격이 서양 회화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가 옅어지고 코스모폴리탄이 등장하는 시대에 미술 역시 예외라고는 할 수 없다. 서양화와 한국화가 지닌 개별적인 특징은 작품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더 이상 지역이나 민족에 의해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결국 서양화과만을 회화과로 변경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로 오인될 소지가 크다. 오리엔탈리즘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지 미술계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미술계의 노력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영역인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 미술계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 대학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