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 별곡
백운동 별곡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1.01.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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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기슭 '수성동'이어 이곳도 살리자...

인왕산 기슭 '수성동'이어 이곳도 살리자...

인왕산 기슭 '수성동'이어 이곳도 살리자...

백운동  안은 백운에 가리고, 백운동 밖은 홍진(紅塵)이 깊다.
외길을 구비 돌아 구름 속에 들어가니, 놀랍게도 성시(城市)는 산림 속에 감춰지네.
시냇물 졸졸 콸콸 제소리 간 곳 없고, 큰 소나무 서로 가려 바람에 소리 우네.
안개 덩굴 사이사이 등성이 드러내니, 화당(華堂)은 조용하여 언제나 그윽하다.(중략)
봄이 와서 바위 골에 산꽃 피어나면, 지저귀는 산새소리 허공에 들려온다.
황매철 장마비가 세상을 가리울 땐, 동문(洞門)에 이끼 돋아 푸르름 깊어지고,
가을 빛에 씻은 듯이 숲 언덕 맑아지면, 달 밝은 만호 장안 다듬이 소리 해맑네.
눈 쌓여 눈꽃 피고 인적이 끊어지면, 등걸 지핀 방안에 명주이불 따스하다.(이하 중략)

도성 내 빼어났던 명승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한성(漢城) 산천(山川) 백운동(白雲洞)에 실린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시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터널 위 쪽 인왕산 계곡, 옛 백운동의 정취를 읊은 조선 초기 시다. 백운동은 인왕산 동편 북쪽 끝자락 골짜기를 일컫던 지명으로 백악산(북악산) 자락과 마주치는 인왕산 기슭이다.

1914년 일제가 옛 한양을 경성부(京城府) 제도로 바꿀 때 아랫동네인 청풍계(靑楓溪)의 '청'자와 백운동의 '운'자를 합쳐 '청운동'이란 새 동명을 만들었다. 새 동명 속에 글자 하나로 남았지만 백운동은 풍부한 개울물과 깊은 계곡, 그윽한 숲과 바위로 도성 내에 가장 빼어난 명승지였다.

강희맹의 시가 그런 백운동을 잘 말해 준다. 그래서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 윤씨의 형부로서 84세까지 장수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념의(李念義, 1409-1492)가 이곳에 큰 저택을 짓고 살았으며, 그 집이 조선 말기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백운동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한 것은 강희맹의 시 말고도 또 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眞景山水) '백운동'이   그것이다. 조선후기 중국화풍의 화단풍조를 벗어나 우리나라 고유 산수풍경을 실경으로 그려냈던 겸재는 인왕산과 백악산 곳곳 명승지를 진경산수로 남겼다.

 그 중에 하나가 <장동팔경첩>에 끼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 '백운동'이다. 그림에는 강희맹의 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경이 묘사돼 있다. 계곡과 물과 바위와 소나무와 수풀 속에 이념의의 저택이었을 법한 집과 사람과 나귀가 길을 오르는 모습이 조화롭게 표현되어 있다.

회색 콘크리트 너머 아슬하게 명맥남아
 지난 연말 마음먹고 덤빈 향토자원조사차 이 백운동 현장을 찾았다. 인왕산과 백악산 기슭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현장을 샅샅이 찾아 누비던 중이었다.

필운대, 수성동, 인곡정사, 옥동척강, 삼승정, 청풍계, 자하동에 이르기까지 진경산수 현장은 어느 곳 하나 온전하지 못했다. 50~100년 전 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을 현장은 아파트와 주택가와 학교와 도로 속에 묻히고 파괴되어 삭막한 회색빛만 내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게 급했고, 건설이 중요했고, 도시화를 선망했으니 할 말은 없을터...하지만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우리의 명승지. 세계적 명승과 유적의 가치를 몰라보고 밀어버린 아쉬움에 분노감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찾은 백운동...자하문터널 위쪽 말일 성도교회 옆길을 따라 오르자 홀연히 넓은 계곡 숲길 저 안쪽에 '백운동천(白雲洞天)'이 나타났다.

'아! 이곳이 바로 백운동...'
동천(洞天)이란 말은 신선이 노니는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을 말한다. 바로 그런 곳임을 나타내는 '백운동천' 바위글씨가 숲 안쪽에서 나를 맞아 준 것이다. 모조리 파괴된 줄로만 알았던 진경산수 현장. 거기 백운동 하나만은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대인이 지었다 허문 집터 너머에 오래된 석조물과 어쩌면 조선말까지 있었다는 이념의의 집터 흔적일 지도 모를 화강암 돌계단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렇게 헤매다 나온 백운동 계곡. 군부대 철조망과 현대 시멘트 벽이 중턱을 가로막아 더 이상 오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위안과 희망을 준 백운동이었다.

새해 6월이면 인왕산 기슭 또 다른 명승지요, 진경산수 현장인 '수성동' 계곡이 복원 완료 된다. 겸재 그림 속 오래된 다리 '기린교'가 남아있는 그곳에, 아름다운 바위를 덮어 버렸던 아파트를 헐어 낸 자리에서 다시 빛을 볼 모양이다. 수성동의 복원처럼 이제 다시 백운동도 그림 속을 걸어 나와 우리 앞에 그윽이 살아나 주길 기대하는 새해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