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을 깨닫고 조화를 이루며 사회에 기여하라”
“본성을 깨닫고 조화를 이루며 사회에 기여하라”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09.04.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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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 인터뷰 (1)

 


화천 다목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분명 택시를 타고 감성마을까지 금방 갈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택시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마을 어른들을 붙잡고 어떻게든 택시편을 구해 보거나 트럭이라도 얻어 타려 했지만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그 곳까지는 걸어야 제 맛’이라고 한다. 돌이 박혀 울퉁불퉁한 길은 얼마 만에 밟아보는가. 하늘과 계곡, 도시에서는 잊고 살던 것들이었다. 분주하던 마음에 고요함이 깃들 즈음 감성마을에 다다랐다.
이외수는 화천에 와서 감성마을 훈장으로 활동 중이다. 육순을 넘긴 나이에는 부담스러울 법한 샛노란 셔츠 덕에 마을 어귀에 나온 그를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소설가 이외수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무척 난해한 작업이다. 지붕 위에서 술을 마시고 개집에서 잠을 자는 등 그의 기행은 무릎팍 도사를 통해 소개된 바 있어, 이후 그의 문학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기행을 일삼는 소설가로 기억할 정도다. 최근에는 라디오 방송 진행자와 MC까지 맡아 명실공히, ‘대한민국 연예인’이 됐다. 그래서 그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이외수는 ‘튀는 소설가’,‘기인’정도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의 산문집 ‘흐린세상 건너기’나 ‘감성사전을 비롯 오랜 명상과 수련의 산물인 그의 글과 그림을 들여다 보면, 그가 칼릴 지브란이나 라즈니쉬에 버금가는 깊은 명상의 세계를 가꾸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노력가라고 일컫는 그는 젊은이들에게 잠을 줄여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집중해 하라고 조언한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깡마른 몸과 긴 머리카락을 한가락으로 질끈 묶은 그 모습 그대로에서 ’진정한 도인‘의 넉넉함과 편안함이 인터뷰 내내 묻어 나왔다.
 

인터넷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하악하악’이 출간되자마자 출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이외수는 파격적으로 본격적인 ‘예능계활동’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출연을 시작으로 얼마전 KBS주말 예능 프로‘해피선데이’에서 이경규 등과 호흡을 맞추며 MC로 나선 것이다. 낙점 과정을 묻자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며 말문을 연다.

 

“왜 저를 선택 했는지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니 기복이 심한 인생을 살아온 제가 희망의 촌철살인 메시지를 던져주고 용기도 불어 넣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닐까요. 어쨌든 정체성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예능 프로 경험이 없고 본디 진행자는 아니라 지난번 녹화에서 진땀을 빼고 버벅 거렸지요. 김국진, 이윤석, 이경규 그 친구들 모두 다 뛰어난 베테랑들이예요.”

퇴근시간 우연히 95.9 채널을 맞추고 선생님의 라디오 방송을 들었을 때 무척 편안하고 재미있었다며 소감을 전하자 그는 매일 무언가를 하는 것은 생애 처음 있는 일이란다.

“매일 무언가를 하는 거는 사실 나랑 잘 안 맞지요. 생애 처음으로 이곳 화천에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라디오 방송을 진행 중인데 일단 저는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는 재미를 느끼긴 해요. 그동안 무릎팍 도사를 비롯해 씨트콤에도 출연하고 CF도 찍고 그랬더니 주변에서 ‘책은 언제 내냐’고 걱정들을 많이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일수록 내 책 안 읽어요”

◆ ‘수행과 마음공부’, 문학 독립군으로 우뚝서다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 것은 지난 1975년 한국형 중편소설 ‘훈장’으로 신인문학상 을 수상하면서다. 참신하다는 각계의 평을 얻으며 3년 동안 당선작이 없어 쌓여 있던 상금을 거머쥐었지만 이후 3년간 원고 청탁이 안 들어왔다고 한다.

 

내심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야 문학계엔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이외수는 독립을 선언하고 지금까지 어떤 문예지에도 작품을 일절 내지 않고 ‘문학독립군’으로 꿋꿋이 버텨오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이외수는 순수하게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애초에 그의 글을 뽑아줄 때 문장이 거칠지만 내면의 가치를 알아준 것처럼, 문학 독자들도 그의 글을 평가해 준 것이다.

학원에서 국어강사를 했던 시절, 하루 두 시간씩을 자면서 ‘꿈꾸는 식물’이라는 첫 창작집을 냈다. 그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독자들과의 연은 지금까지도 ‘번개’를 통해 이어져오고 있다. 그때 그의 글을 높게 평가해 준 것이 한국 평론계의 전설, 김현 선생이다. 김현 선생이 그의 글을 읽고 섬세한 감수성을 발견, 칭찬해 준 것을 그는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 시ㆍ서ㆍ예ㆍ악(詩書禮樂) 갖추는 게 우리의 도, 직접만든 목저체 곧 선보일 것

그는 인생을 거울에 담은 것처럼 그의 저서에서 희망도 없고 출구도 없는 사람들을 다뤄왔지만 소설 ‘칼’을 기점으로 해 독자들에게 선계의 구원을 전하기 시작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를 묻자 마음공부를 한 까닭이란다.

 

▲ 이외수 선생의 집필실 및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

 “예전에는 저도 현실에 많이 시달려왔고 특히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세상에 타협을 해야 하나 투쟁을 해야 하나 늘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히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이니만큼 대개가 갈등을 겪게 되지요.

그래서 수양을 많이 쌓았습니다. 우리 고유의 도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 수행자도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스스로 마음공부를 한 셈이지요.

투쟁하면 창자가 울게 되어 있고 현실에 타협하면 양심이 울지요. 조화를 하려면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나를 세상에 반은 내줄 수 있어야 하지요.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인간으로 거듭나는, 정말 피눈물나는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사리사욕만 채우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말하자면 범죄자에요.  범죄자들의 공통점이 당하는 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옛날 신라 화랑도가 우리고유의 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는 이외수는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천부경을 들었다. 또 시서예약이 도 쪽으로 가까이 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림에도 유난한 재능을 보여 이외수가 수행의 도구로 그림에도 몰입하는 이유도 그렇다. 그가 만든 고유의 서체인 목저체도 수정을 거쳐 올 6월쯤 판매 될 예정에 있다.

“시서예악을 통한 수양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거지요. 그렇게 깨달아 자연, 우주와 조화를 하는 거지요.  조화를 통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 아닌가요? 모두 행복해 지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가슴 안에 사랑이 많은 사람이 사물들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고 사랑으로 충만 될 때 희망을 갖고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어떤 베푸는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관건이죠. 높은 경지에 들어가면 그럴 수 있어요. 초연한 경지가 되어서 우주의 본성이 사랑인 것을 깨닫는 거지요. 이성간의 협소한 사랑이 아니고 광의의 의미입니다.”

 

그에게는 현재 3명의 문하생이 있다. 그는 문하생들과 숙식을 같이 하며 도제식으로 가르치는데 소설가로 데뷔하면 ‘하산’시킨다. 이미 ‘기노’ 라는 문하생이 10년을 공부하고 세계일보 문학상에 당선된 후 활발한 활동 중이다.

문하생을 뽑는 방법은 자기소개서와 자필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라는데 보통의 경우 자필 자기소개서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단다. 그래도 글에는 소질은 없지만 열정이 있다면 그것도 높이 산다. 

글쓰기의 달인에게 글 잘 쓰는 법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외수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명상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양순의 다독·다작·다상량 방식이다.

“권투선수들이 여러가지 훈련을 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글을 책으로든 인터넷으로든 읽어야 하고 자기도 늘 쓰고 사유를 해야 합니다. 사유라고 하면 어느 정도 철학적 깊이를 간직한 생각을 자주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명상을 통한 사유가 아주 좋지요.”

◆ 인간 이외수, 그 외롭고 슬픈 가족사 , 꿋꿋한 홀로서기 학연ㆍ지연을 깨다

이외수의 인생은 꿋꿋한 홀로서기였다. 소설가의 입을 빌어 ‘구조 자체가 학연 공화국·지연 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이외수는 이름없는 초·중·고를 나왔다. 인제 기린 초등학교, 인제중·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춘천 교대를 중퇴했다. 따지고 보면 대학을 7년이나 다녔지만 중퇴를 했다는 차별은 막심했다.

그래서 그는 갈등을 겪는 젊은이들에게 어지간하면 대학을 참고 졸업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고통스런 세월을 견뎌 작가 이외수처럼 되지 않을 바에야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요구사항들을 갖추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고향이 경남 함양인데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셔서 군인가족이었어요. 아버지가 예편하신 이후에는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으셨지요. 제가 보기에 아버지도 평범하신 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도시락을 20개씩 싸가지고 가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시는데 집에는 월급을 가지고 오신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이외수의 어머님은 2살 때 돌아가셨다. 이후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재혼하였는데 재혼 당시에는 새어머니가 이외수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뒤늦게 이외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새 어머니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어린 이외수는 자진해서 안 나타나려고 애를 썼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아예 집에 안 들어갔다. 그나마 이외수를 돌봐주시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다음에는 계속 혼자였다. 새 어머니로부터 동생을 세 명 얻었고 그 동생들과는 지금도 우애있게 지낸다.

그러나 새어머니와는 아직도 관계개선이 잘 안되고 있다며 웃는다. 그만큼 새 어머니의 충격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모님(부인을 그는 꼬박꼬박 사모님이라고 높여 대한다)’이 새어머님께는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잘 하고 있단다.

“대학 7년 다니면서는 기행일변도라고 봐야겠지요. 개집에서도 잠을 자고 노숙의 연속에다가 다리 밑에서 블록 쌓아놓고 자고 그런 세월이 길었지요. 수업을 제대로 안 들으니 교수님들은 제자로 안 받아줬지만 등록금은 또 꼬박꼬박 냈어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학기는 등록하고 휴학하고 그런 식이었죠. 그때 생계형 디제이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도 질려서 지금도 최고급 기기를 가지고 있는데도 집에서 잘 안 들어요.”- 4면으로 계속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이은영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편보경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