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 도인 소설가 이외수, 화천에 살고 있는 이유?
촌철 도인 소설가 이외수, 화천에 살고 있는 이유?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09.04.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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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 인터뷰 (2)

◆ 패밀리맨 이외수...‘사모님’과는 동지애

한 손에는 집필한 책을 들고 미스 강원 출신의 부인 전영자 여사와 환하게 웃으며 찍은 거실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 눈부셨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흘렀다.

43세까지 밥벌이 못하는 기생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외수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대단한 ‘패밀리맨’이었다.

지금은 이외수의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매니저이기도 한 전영자 여사. ‘사모님’ 생신에는 손수 미역국을 준비한다는 그는 최근엔 그나마도 차남에게 자리를 뺏겼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눈치를 보고 있으면 고놈한테 미역국 끓이기 이벤트를 빼앗겨 버립니다. 슬하에 아들을 둘을 두었는데 이 애들이 내 삶의 철학을 바꿨지요.”

그는 어떻게 미스 강원 출신의 부인을 얻은 운 좋은 사나이가 됐을까. 내면이 아름다운 여성이 아름답다는 이외수는 부인 전여사가 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완전’ 반하고 말았다.

어떤 가식도 없고 인위성도 없는, 삶속에서 보여진 진솔한 모습이어서 훨씬 더 큰 흡인력을 가졌던 것이다. 그때 그 장면에서 ‘결혼하겠다’ 는 결정을 어떤 의혹도 망설임도 없이 내렸다.

“인생 최대 결정이니까 나부터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란 말입니다. 결혼은 올인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생애 전체를 투신하느냐 마느냐죠. 조금씩 살펴봤는데 그런 면모를 보고 더 이상 따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거죠.”

당시는 독일로 한국의 간호사들이 대거 진출할 때여서 전 여사는 독일 간호사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청년 이외수는 강원일보 기자였다. 전 여사 주변에는 늘 미녀 앞에서 경양식을 대접하고 싶어하는 ‘허세형’ 남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모님은 남다른 청년 이외수를 선택한 혜안이 있었다.

“저는 당시 32살이었고 사모님은 26살, 그러니까 6살 차이가 나지요. 본인 말로는 내가 당시 직업도 있고 했으니 주판알을 튕겨보고 손해 볼 것은 없는데 미녀 앞에서 허세를 많이 부리는 남자들을 보아온 자기로서는 나라는 남자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는 겁니다.

회사 바로 앞에 칼국수 집이 있었는데 제가 100원짜리 가락국수로 저녁을 대접하고는 ‘아줌마 외상이요’하고 말하는 솔직한 모습이 좋았다더군요.” 그러나 전 여사는 이 말에 대해 직접 확인해 주지는 않아 사실 여부를 알 순 없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이외수는 인생의 반을 굶어보면 없어서 못 먹는다고 답한다. 그리고 곁들여서 부인이 만들어 준 음식은 다 잘 먹는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 여사의 특기는 요리인 듯하다.

 

어디에 맛집이 있다고 해서 데려가서 함께 먹으면 돌아와서는 그 음식 맛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다는 것.

그러나 술국은 절대 기대하면 안 된단다. 술을 먹는다는 이야기만 들어가면 전 여사는 낯빛이 변한다는 거다.

  “가끔 조개국은 끓여 준 적은 있는데 제가 술을 먹어서 기특해 보일 때가 거의 없지요. 

술이 점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갈아 먹고 후유증이 길어지고 그러다 보니 쉬운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끊었지만요.

제가 술을 입에 대면 무박 3일, 무박 5일 그렇게 마셔됐으니까 제가 봐도 무서웠어요. 술을 끊고 주변에서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끔 홈피식구들 하고 번개를 하면 술을 안 마실 뿐이지 새벽같이 같이 있어요. 사실 안 마시는게 훨 낫지요. 다 마시고 하면 그담에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안 나니까.

사실 술 마실 때 기억 날 정도로 마시는 거는 마시는 것도 아니지요.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는 것이 제대로 마시는 거지.”

그 덕에 결혼을 하고 10여 년간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고 부인이 집을 나가면 다시 데려오는 생활이 반복되었노라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동서네 집에 찾아가서 많이 데려오고 그랬어요. 지금도 우리는 전우애로 살아요. 싸우는 이유는 사실 사소한 거죠. 결론은 돈 좀 벌어오라는 거구요. 근데 그때는 증명이 안 되었죠. 지금은 '사모님'이 나를 거의 100% 믿는다고 해요. 아이들에게도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에게 노력하는 것 하나만은 배워야 한다고 할 때 어깨가 으쓱 해지죠.”

소설가 이외수에게는 아이들의 의미가 무척이나 크다. 첫 아이를 그의 손으로 직접 받고 두 식구를 거느린 가장이 되고부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구라곤 제대로 먹여 살리지도 못하고 전전 긍긍하는 놈이 인생은 이런거다 저런거다 말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에 작가를 잠시 폐업하고 월부 책장사로 나섰다.

“월부 책 장사가 꽤 잘되는 편이었어요. 지인들에게 ‘저 아들 낳았습니다’ 그러고는 책을 내밀면 아무소리 안하고 사주었으니까요.

 

지금도 저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 가족들 에 대한 책임감 이것에 의해서 무언가 결정을 합니다.

TV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것도 가족들에게 물어보고요. 저는 혼자만의 여행은 안 해요. 가족들 전체를 데리고 가지요.”

70년대 이전인들 문화적 환경이 좋았겠는가. 작가, 시인이라고 하면 명예는 지금보다 높았을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는 늘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내 아들들한테 저런 것까지 물려주지는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그의 지론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작품이 타락하는 것도, 작가정신이 녹스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이러한 까닭에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있으면 언제든지 뛰어든다. 

“유명 시인이나 교과서에 나온 작가들의 자제들은 아버지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왜 그런가 생각 해봤는데 창작활동을 하느라고 집을 나가서 식구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러니까 식구들은 고생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도 없고요. 아마도 제가 작가들 중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제일 많이 하는 작가일 겁니다.”

벽면에 빔 프로젝트를 쏘면서 가족들과 영화를 즐겨본다는 이외수는 우리 영화중에서는 ‘라디오스타’를 감동 깊게 봤다고 했다.

라디오스타에 대해 “짙은 휴머니즘과 미의식은 사람을 감동 시키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젊은 감독들은 작가의식이 치열하고 어설프게 하려는 사람 없이 다 훌륭한 것 같다” 고 예술 후배들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 도인 이외수... 외계인과 채널링 안 해봤으면 말을 마세요

자연물들은 순리를 그르치는 법이 없어 다 좋다는 이외수는 특히 지렁이를 좋아한다는 것부터 심상치가 않다. 그는 지렁이가 거룩하다고 말했다. 

 

▲ 이외수 선생이 펴낸 책들

“지렁이에게 배울 것이 많아요. 모든 생명체들의 지상 명제는 목숨의 보전과 종족의 보전이지요. 그러기 위해 발톱, 이빨, 독 등 공격하고 방어하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렁이는 그게 없어요. 내내 꿈틀거리기만 하니 애절하기만 할 뿐 겁도 안나요. 항상 보면 고요하고 울부짖거나 그런 것도 없지요.

하는 일을 보면 더 거룩합니다. 한 마리가 10톤 정도의 흙을 먹고 토해 내는데 어떤 척박한 땅도 생육하는 환경으로 바꾸지요.

지렁이가 배설한 흙을 농사용으로 고가로 파는 사람들도 있어요. 번식력도 강하고 땅에다 산소를 공급하는 위대한 대지의 창조자와 같은 일을 하는데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전혀 모르게 할 줄 알아요.

게다가 자기 몸을 다 내어 주지요. 새가 먹어도 괜찮은 육신을 가지고 있고 벌레가 먹어도 상관 없어하지요. 고단백이니 모든 생명체가 그놈을 먹으면 튼튼해집니다.

저도 한때 결핵으로 ‘토룡탕’ 신세를 졌지요. 그리고 다른 개체가 먹다가 자기 몸을 좀 남기면 바로 복원합니다. 그 점이 제일 대단해요.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지요. 보기는 징그럽게 생겼지만 외형가지고 판단할 바가 전혀 없어요. 지렁이의 내면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지 정말 제 사부입니다. 인간도 그럴 수만 있다면야 이세상은 급속도로 달라져 멋진 천국이 되겠지요.”

그럼 자신의 캐릭터를 동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되겠냐는 질문에는 물벼룩이 아니겠냐는 재미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옛날에는 승냥이를 제 마스코트로 삼았는데 왜 그런가 하면 강하고 날카로운 눈빛에 고독한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요새는 물벼룩 같이 하찮고 다른 이들이 관심을 잘 안기울이는 것을 캐릭터로 삼고 싶더군요.”

그는 작가의 외로움은 아주 독특한 세계라 일반 사람들로써는 도무지 이해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특히 그의 ‘채널링’ 수행이 모 일간지에 기사화 되면서 인터넷에 ‘드디어 노망이 들었다’ 는 수백 개의 댓글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번에도 "어디 악플 수백개 만들어 볼까?" 하며 운을 뗀 뒤 신비의 채널링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어려운 게 아니예요. 사실 수행을 거친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지요. 대개의 경우 종교인 수행자들은 돌이나 나무, 바다나 산 등의 의식 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 체계들 간의 수행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확장되면 여러 가지 대상들과 대화의 채널을 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진 ‘의식의 조우’입니다. 수행자들 중에 의식이 우수하게 잘 수행된 사람을 메신저로 선택하면 우선 객관성이 생깁니다. 메신저는 스스로가 자기의식을 말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즉 받아서 전달만 하는 역할이지요. 그것 자체가 공부고 수행이 되니까요.

어떤 때는 달 친구들이 중계를 할 때 다리를 놔줘서 다이렉트로 대화도 합니다. 달 친구들은 우리보다 과학, 철학이 천년정도 앞서있어요. 그 친구들에게서 정보를 많이 얻습니다.

한 예로 그 친구들은 지구 온난화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거예요. 지구의 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주기적으로 가져왔던 현상인데 그건 새삼스럽게 고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인간이 적응 하려고 애를 써야지 위기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요.

달 친구에게 ‘지구인의 특성이 뭐라고 생각하냐?’ 라고 물으니 ‘쓸데없는 걱정 만들어서 하는 개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저는 채널링을 공부삼아 하는 건데 자기하고 다른 체험 영역을 가졌다고 해서 비난받고 사기꾼으로 몰리기도 했어요.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의 김병만 씨한테 ‘채널링 해봤어요? 16년 동안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대사를 부탁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자기하고 수행하고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하는 것부터가 저급하지요. 어디가서 이런 이야기 하면 바보되기 딱 좋지만요”

사람들이 너무 하늘을 안 봐서 그렇지 이외수와 그의 가족들은 UFO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달 친구들은 기본 구조들은 우리와 비슷하나 달에는 독소가 없기 때문에 간이 퇴화돼 있고 극히 소량의 수분을 섭취하고 살아가서 위도 퇴화 되어 있다고 전했다.

남녀구분이 없고 상하위 개념도 없다. 태어나는 것을 ‘난다’, 죽는 것을 ‘스민다’라고 한다는 것. 정치나 예술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럼 존재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는데 존재자체가 행복이라는 대답을 들려줬단다.

“일본으로 끌려간 옛 우리 도공들이 의식을 물질하고 섞어 쓸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이나 철학을 자기가 만든 작품에 투영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일어난 일이지요.”

일반인들이 근접하긴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이외수에게 종교를 창시하려는 마음은 없는지 질문을 하자 손사래를 친다.  

“종교도 진화해야 하는데 지금은 종교도 본질로부터 많이 떠나있습니다. 사랑·자비 같은 것에서 말이지요. 교세 확장과 신도의 증가 그런 것에 너무 주력하니까 사랑의 실천에 등한시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요.또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전통 토속 종교도 사교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정해 줘야하는데 그렇지도 않지요.”

◆ 나눔 세상 이외수, 그가 화천군을 사랑하는 이유?

“일본 식민지 시대 때 이 곳에 독립군이 숨어 있다가 해방 소식 들어서 화천군이 해방골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지금은 문단 독립군 이외수가 들어와 있군요.” 

이외수가 화천에 와서 감성마을 촌장을 맡게 된 이유는 화천 군수의 초청 때문이다. 화천군수는 화천군의 문화공간 조성이 낙후화 되어 있는 것에 소명을 느끼고 군민들을 다 설득하고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지금의 감성마을을 조성하고 이외수를 초청했다.

 

“산천어 축제가 조금 알려져 있고 수력 발전소로 유명했을 뿐 사실 화천이 내세울 만 한 것이 물과 공기가 맑고 인심이 순박하다는 것 정도겠죠.

사실상 군사지역이라 문화적으로 낙후 되어 있어서 제가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이곳을 널리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송 매체의 섭외가 들어오면 가급적이면 화천에서 찍어 주십사 부탁을 합니다. ‘해피 선데이’도 여기서 찍는데 보통은 식당차도 같이 와요.

그런데 저는 마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서 이 곳에 오면 식사를 사서 먹으라고 하지요. 조금이라도 지역 발전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공식적 홍보 대사지만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주변에 고정적으로 지원의 손길을 펴고 있는 이외수는 저 멀리 남의 나라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기본적으로 주변에 당장 어려운 사람들을 해결해야 그게 훨씬 정직한일이라고 한다.

술을 먹었던 스타일처럼 무언가를 줄 때는 확실하게 준다. 그러나 자기가 극복해 보려는 의지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맹목적인 도움을 구하는 사람은 사양한단다.

◆ 속 시원한 독설가 이외수...갈증 풀어주는 시원한 청량제

정치에도 따끔한 일침을 가해온 그에게 현 정부에서 가장 맘에 안 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가장 맘에 안 드는 건 못 들은 척한다는 겁니다. 자세를 낮추고 섬기겠다고 하고서는 정책하나를 낼 때에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 다수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치고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다는 거지요.

정부만 옳다고 나서면 국민들은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요. 그동안은 정부는 그런 과정이 전혀 없고 그냥 내세우기만 했지요. 미디어 법, 쇠고기 개방문제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헌법 제 1조에도 분명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맞춰야지 법을 뜯어 고치치 말고 국민 기본법인 헌법에 맞게 운영해야 합니다.”

또 최근 고인이 된 탤런트 장자연 씨의 일을 들어 문화인식과 구조적인 폐단을 꼬집는다.

“우리나라만 있는 일은 아니라는데 어쨌건 이런 일들은 본질 바깥의 것이지요. 연예인이라고 하면 대중 문화를 창조하고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 밖의 것들은 외적인 것으로써 쓰여져서는 안 되지요. 예인들이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거룩하게 인정받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조악해요. 누구의 잘잘못 따지기 이전에 함께 개선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비극이 연속되고 있는데 개선하려는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강연가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경제가 막강하고 군사력이 좋아도 문화 인식이 낮으면 만년 후진국이지요. 선진국 대열에 진입 하려면 문화예술 가치와 인식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은 자기가 보려고 소설 쓰거나 자기가 들을려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어요.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나누어가지려고 하니까 직업 자체부터가 사회적 기여도가 크지요”

◆ 다음 작품은 언제쯤?

“이종 격투기 선수가 대회에 한번 출전하면 일 년 정도 쉬지요. 외국에서는 작품 하나 쓰고 평생가는 사람도 있고요. 작품을 하나 쓰고 나서는 몇 년 휴식 취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작품을 쓸 때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아 데미지가 진짜 크거든요. 준비는 하고 있는데 3~4년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소재나 주제는 행복에 대해서 한번 써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모든 소설들이 불행해 행복한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동향에 휩쓸릴 필요없다는 이외수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행복할 수 있는 비법을 전했다. 

 

▲ 노래하는 이외수 선생

“산아 제안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지구가 멸망할 것 처럼 인구가 모자란다고 난리를 치고 있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부하뇌동하고 살겠습니까.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늘 창조하고 남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몰두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 은은한 색깔의 야광장미를 개발해서 마을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소득 창출에 기여를 했다지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인생을 창조적으로 사는 사람들이예요.

그렇게 살 생각해야지 자기만 잘 살려고 애를 쓰고 꼭 싸워서 이여야 되는 걸로 생각을 하고 친구도 적 이웃도 적 전부 적이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담배를 끊고 나서 천식도 거의 다 나았다는 이외수는 체중이 45Kg에서 57Kg로 불어나 앞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예의 유감없는 재치를 발휘했다.

장장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친 후 이외수는 먼길을 찾아온 기자들을 위해 서재에 있는 노래방기기를 이용해 멋드러진 노래 한 곡을 선물하는 ‘센스’ 또한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88만원세대'로 고통당하고 있는 오늘날의 20대 청년들을 향해 "벼랑끝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인터뷰 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

<이외수 작가연보>

1946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태어남
1958 강원도 인제군 기린국민학교 졸업
1961 강원도 인제군 인제중학교 졸업
1964 강원도 인제군 인제고등학교 졸업
1965 춘천교육대학 입학
1968 육군 입대
1971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
1972 춘천교육대학 중퇴
1972 강원일보 신춘문예 [견습어린이들] 당선
1973 강원도 인제 남국민학교 객골분교 소사로 근무
1975 《世代》지에 중편 [훈장勳章]으로 신인문학상 수상, 강원일보에 잠시 근무
1976 단편 [꽃과 사냥꾼] 발표, 11월 26일 전영자와 결혼
1977 춘천 세종학원 강사로 근무, 장남 이한얼 출생
1978 원주 원일학원 강사로 근무, 장편 [꿈꾸는 식물] 출간
1979 단편 [고수高手] [개미귀신] 발표,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전념
1980 창작집 [겨울나기] 출간, 단편 [박제剝製]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붙잡혀 온 남자] 발표, 차남 이진얼 출생
1981 중편 [장수하늘소] 단편 [틈] [자객열전] 발표,장편 [들개] 출간
1982 장편 [칼] 출간
1983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Ⅰ,Ⅱ 출간
1985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출간
1986 산문집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출간
1987 서정시집 [풀꽃 술잔 나비] 출간
1990 4인의 에로틱 아트전-나우갤러리
1992 장편 [벽오금학도] 출간
1994 산문집 [감성사전] 출간
仙畵 개인전-신세계 미술관
1997 장편 [황금비늘] 1, 2 출간
1998 산문집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출간
2000 시화집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출간
2001 우화집 [외뿔] 출간 
2002 장편 [괴물] 1, 2 출간 
2003 사색상자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출간 
2003 산문집 [뼈] 출간 
2005 장편 [장외인간] 1, 2 출간 
2006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 입주
  문장비법서 [글쓰기의 공중부양] 출간 
  중단편모음집 [장수하늘소] [겨울나기] [훈장] 출간 
  선화집 [숨결] 출간 
  시집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쉴 때까지] 출간 
2007 산문집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출간
  문장비법서 [글쓰기의 공중부양] 재출간 
  [사랑 두 글자만 쓰다가 다 닳은 연필] 출간 (뼈 개정판)
2008 산문집 [하악하악] 출간 
  仙畵 개인전 - 포항 포스코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