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이라도 해야 할 우리문화
농성이라도 해야 할 우리문화
  • 유인철 / 수필가
  • 승인 2011.01.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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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 앞마당에서 해오던 수문장 교대식을 새로 건축한 광화문 앞에서 하고 있었다. 공사가 끝난 지 4개월 밖에 안 된 터라 하얀 대리석은 깨끗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졌다.
태평소 소리에 맞춰 의장을 갖춘 군사들이 홍예문을 통해 나오고, 둥둥둥 북소리를 신호로 수문장 교대식이 절도 있게 진행됐다.

입김이 곧바로 하얘질 정도로 추운 날씨임에도 많은 내·외국인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교대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지금까지 나는 수문장 교대식을 비롯해 기로연(耆老宴)이나 영조 오순 어연례(英祖 五旬 御宴禮)처럼 고궁에서 열리는 궁중의식 시연회(試演會)와 종묘대제 같은 전통 문화행사를 부지런히 찾아 다녔다.
그런 행사를 참관하면서 우리 것을 하나하나 배운다는 즐거움과 더불어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아무 의미 없는 겉치레 같았다. 오히려 현판에 금이 좀 갔다고 무슨 큰 대수냐? 이만하면 전통문화를 제대로 계승하고 있지 않냐? 고 호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수문장 깃발이 공허했고, 추운 날씨로 빨갛게 언 행사 요원들의 얼굴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었다. 새털구름이 낀 하늘 속에 광화문의 날렵한 처마 끝이 박혀있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금이 간 현판도 눈에 들어왔다.‘금강송이다 아니다. 건조가 덜 됐다 아니다.’며 네 탓을 하는 말들이 상처 난 현판을 더욱 아프게 하는 듯했다. 
내 상념은 광화문을 지나고 회랑을 넘어 근정전 위에서 멈췄다.
부당한 권력은 어서 옥새를 내 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상서원(尙瑞院) 관리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내놓지 못하겠다며 꼿꼿하게 버티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런데 그 후손인 우리는 어떠한가? 나라의 상징인 국새를 거짓으로 만들고, 300년은 고사하고 석 달도 못 돼 현판에 금이 가게 하지 않았던가?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 궁내청에 있는 조선왕실의궤가 조만간 돌아올 예정이라 한다.
의궤(儀軌)란 나라의 중요한 의식이나 공사에 관해 그 전말·경과·소요 인원과 물품·경비 등 모든 사항을 하나에서 열까지 철저하게 기록하고 거기에 그림을 더해서 만든 책이다.
그럼 왜 만들었을까?
차후에 같은 일을 치를 때 전례를 살핌으로써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물자와 돈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의궤를 만들었던 정신이 10분의 1이라도 우리에게 남아있었더라면 국새와 광화문 현판을 그런 식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궤만 돌아오고 그 속에 들어있는 고귀한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의궤가 우리 손에 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흰 종이, 까만 글씨, 울긋불긋한 그림일 뿐이다.
차라리 프랑스나 일본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줌으로써 그네들을 감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수문장 교대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금세 흩어졌다. 나도 추위를 피해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며 농성중인 야당의 천막과 취재를 나온 언론사 차량으로 어수선한 시청 앞 광장과 여전히 가림 막에 가려져있는 숭례문이 차창에 스쳐 지나갔다.  
이 순간 정말 농성이라도 해야 할 것은 정치꾼들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이며, 가림 막으로 가려야 할 것은 금이 간 광화문 현판과 불에 탄 숭례문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의 자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