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공연예술의 파이오니아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을 만나다.
전통공연예술의 파이오니아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을 만나다.
  • 이은영 편집국장ㆍ최재영 인턴기자
  • 승인 2011.02.0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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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국악 아닌 살아있는 전통 예술 공연 부흥에 앞장설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편집국장ㆍ최재영 인턴기자] 국악은 현대의 음악이 아닌 지루하고 낡아버린 과거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앞선다. 현란한 조명과 다양하고 웅장한 음악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공연물이 즐비한 요즘, 이제 국악은 공연예술계의 중심에 있지 않다.
 그러나 국악은 현대인과 자유롭게 어울리며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의 보고(寶庫)이다. 지금 그 열쇠를 가지고 문 앞에 선 한 남자가 있다. 설을 앞두고 매서운 바람이 사정없이 불던 어느 날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김승국 관장을 만났다.

▲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어 감사하다. 올해 노원예술회관은 어떤 계획으로 운영될 전망인가

타 문화공간도 그렇겠지만 우리 노원문화예술회관은 금년 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당초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지난 해 예산이 23억 원이었는데 금년에는 19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시설, 운영, 전시, 교육 등 일반운용경비는 손대기가 어려워 공연비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됐다.
 그래서 올해 공연계획을 세우는 데 많이 애를 먹었다. 이미 레퍼토리가 된 작품을 공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노원예술회관을 ‘지역 문화예술인의 인큐베이팅 센터’로 만든다는 취지에 어긋난다. 노원예술회관은 지역 내 문화예술인을 발굴해 공연 및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브랜드화하고, 나아가 강좌를 설치해 예술인은 물론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상주단체인 이원국 발레단을 브랜드화 하는데 성공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 회관이 예산 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긴 하지만 설립의 초심을 잊는다면 그것보다 더 큰 손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역공연예술단체 및 신진작가를 대상으로 공모사업을 할 예정이다.

말한 것처럼 이원국 발레단은 이미 각종 언론에도 보도가 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회관의 입장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고 해도 공연 수익과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가지는 건 아니다. 사실 얼마 전 공연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경우도 객석점유율이 낮았다. 이름이 알려진다고 해서 관객들이 무조건 공연을 보러 올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원국 발레단의 브랜드화는 미완의 성공일 뿐이며 오히려 지금이 더 중요한 시기이다.  당연히 계속적인 브랜드화를 이뤄나가야 한다.
 아직은 잠정적이지만 현재 진행하려고 하는 것은 흔히 국악이라고 부르는 전통공연예술의 브랜드화다. 개인적으로 30년 가까이 전통공연예술계에 종사했던 만큼 축적된 경험 및 인적 인프라를 총동원해 적어도 한 가지 정도의 전통공연예술을 특화시킬 생각이다.
 오늘날 공연되고 있는 전통예술 공연물들은 대다수가 관객이 외면하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무리하게 밀어붙일 수는 없고, 우선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들의 정서와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공연물들을 선보일 작정이다.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되어지는 다양한 공연물 중에는 전통공연예술도 포함된다. 전통 공연예술이 현대 음악과 만나 새로운 형식을 도출해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현재 생각하고 있는 방식은 말한 것과 같이 전통공연예술의 현대화다. 아무래도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현대 음악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표현방식은 현대적인 방식을 도입할지언정 전통공연예술의 원형질은 지켜나갈 것이다.
 이를테면 KaTA같은 단체는 전통공연예술을 하지만 단순하게 장구를 두드리는 식의 지루한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IT를 사용해서 소리에 따라 장구의 색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의 문양 역시 IT와 융합하여 달라진다. 관객이 고루하다고 여기는 전통 예술을 현대적인 방식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타악에는 신명이 있고 그 신명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실시간으로 관객의 눈을 현란하게 사로잡는다. 이른바 전통 예술의 본질은 훼손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과 악수를 나누는 셈이다.
 하지만 전통예술의 원형 자체를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다. 금년부터는 우리 회관 소극장에서 산조, 대금 등 각 분야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는 예능보유자 및 전통공연예술가들을 출연시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관객이 얼마나 찾아올지는 아직은 예상할 수는 없지만 공격적인 홍보와 마케팅 등을 통하여 객석점유율을 높여 갈 생각을 하고 있다.

◆ 전통 예술 공연 발전 및 현대적 해석에 주목해야… 그러나 지역문화예술인의 인큐베이팅 센터로서의 기능 우선

▲ 인큐베이팅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승국 관장

원형 공연은 관객의 입맛에 맞춘 현대적 해석이 불가능한 이상 명인 명창전의 형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전통 예술에 무관심한 관객들이 흥미를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마 처음에는 반응이 냉담할 거다. 하지만 실패한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경험을 살려 똑같은 전례를 남기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노원예술회관의 목적이 ‘지역문화예술인의 인큐베이팅 센터’를 추구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인큐베이팅 센터라는 용어에 걸맞게 지역예술인들을 배출해낼 수 있는 문화예술아카데미 설립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에도 다양한 문화 아카데미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현존하는 문화강좌는 많다. 그러나 강좌의 의도와 목적이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 회관은 보유하고 있는 전시공간이나 극장을 활용할 수 있는 특성화되고 차별화된 강좌를 설치할 생각이다.
 이를테면 연극 아카데미의 경우 극장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은 이론 수업에 그치지 않고 직접 무대를 체험하면서 연극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단순한 여가활동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연극을 만드는 단체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즉, 일반 시민에서 지역문화예술인이 되는 것이다.

지역문화예술인을 양성한다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원예술회관의 인지도 상승을 위해 참여도 높은 공연이 필요하다. 전통 예술 공연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실 노원구는 클래식음악에 비하여 국악과 연극이 다소 인기를 얻지 못하는 곳이다. 물론 그렇다고 국악을 우리 음악이니까 무조건 보러 와야 된다는 강요는 억지나 다름없다. 우리 것이라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 ‘지금의 것’으로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세계적인 공연으로 성장한 <태양의 서커스>는 불과 27년 전인 1984년에 캐나다 퀘벡의 작은 마을에서 12명의 길거리 공연자들의 집단으로 출발하였다. <태양의 서커스> 단원들의 연기력은 한 치의 실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며 예술적 수준도 세계 정상급으로 손색이 전혀 없다. 그들은 공연 퀄리티의 완벽성을 지키기 위하여 작품에 대한 라이센스나 복제를 하지 않으며 각 공연 마다 한 액트를 담당하는 연기자도 한 명 뿐이며 더블 캐스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대다수의 국악인들은 무대를 가볍게 생각한다. 우리 것이고 전통 예술이니까 변화에 대한 인식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 듯한 태도가 만연해 있다. 그래서인지 어설픈 연기와 음악으로 무대에 서고 실수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당연히 현대적 입장에 맞춰 정제화하고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

◆ 천편일률적 공연 구성 악습 없애야… 전통공연예술인 양성하는 적절한 교육기관 양성 필요

▲ 김란 무용단의 전통춤 공연 中

 전통공연예술이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 하는가?

현재 한국의 전통공연예술에는 어쩔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일제 식민지에 국권을 뺏기면서 우리 악가무의 전통이 단절됐고, 해방 후에는 서양 문물이 들어와서 연결이 될 틈이 없었다. 88올림픽이 되어서야 인식의 전환이 본격화되었지만 단절의 기간이 길었던 건 분명하다.
 따라서 현재 연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전통공연예술은 100년 전에나 인기 있었던 공연인 셈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관객의 요구도 달라지는 게 당연한데 그대로 내놓으면 외면당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발전기를 맞으려 할 때 단절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 흐름을 계속 살리기 위한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렇다면 전통 공연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전통공연예술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필수적이다. 현재 중등 전통공연예술 교육기관은 기형적인 대학입학 실기전형제도에 종속되어 학생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발전 가능성을 차단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원래 우리 전통공연예술은 악가무의 기본 교육이 튼튼해야 하는 예술이다. 단순히 전공 실기에만 집중하는 교육이 아니라 악가무 전체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의 기반 위에 전공교육이 이루어져야 좋은 예술가가 배출되고 좋은 공연이 나온다.
 그러나 현재 지금은 입시에 종속되어 전공실기 교육에만 치중하고 기본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 교육과정에는 외양상 다양한 커리큘럼이 짜여 있지만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대학에서 창의성과 악가무의 기본 학습을 평가한다면 현재의 기형적인 교육환경이 분명히 개선될 것이다.

한국에는 이미 전통공연예술 교육기관이 산재해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런 논의가 한 번도 없었나?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물론 조금씩 바뀌고는 있고, 초견이라고 해서 악보를 보고 바로 연주를 한다거나 기본적인 역량을 보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미미하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전공은 평생 해야 하는 부분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등학교 때 다양한 악가무를 접해보는 건 국악 전반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전공 선택에 폭을 넓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사실 새로운 교육기관의 양성보다 기존 교육기관의 사고전환이 급선무다.

교육기관 뿐 아니라 기존 전통 예술계의 닫힌 태도가 문제인 셈인데, 그렇다면 오정해나 박애리 같은 젊은 전통 예술인이 부족한 것도 여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나?

박정희 대통령 때 처음 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져 최초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분명 단절될 수 있는 전통 예술을 보존ㆍ전승한 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통공연예술인을 서열화하고 문화 권력화한 면도 없지 않다.
 보유자가 아니면 자신의 기예를 입증하지 못할 형편이니 결국 보유자의 선택에 예인의 운명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수많은 예인들이 문화재 보유자의 권력 안에 예속된 것이다. 눈치 보기만 급급해서 새롭게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공연이 아닌 윗사람 눈에 들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당연히 실험이란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어디 가서 제 맘대로 공연 한 번 할 수도 없다. 자기 것을 만들어도 될 시기인데 한 보유자 문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부분을 가로막히는 것이다. 문화재 제도 자체는 필요하지만 이런 병폐적인 부분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공연 중인 오정해

이런 병폐도 어쩌면 전통공연예술이 아직 대중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음지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통공연예술을 알리는 홍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당연히 홍보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사실상 실력이 부족한데도 언론의 힘으로 과다하게 부풀려져 평가받고 있는 국악인들이 있다. 실력 이상으로 평가받는 일은 시정되어져야겠지만 반대로 재야에 묻혀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을 언론이 조명해 줘야 한다.
 이른바 문화재 제도에서 주지 못하는 기회를 언론이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적절한 홍보가 동원된다면 예능보유자 밑에서 실험정신을 억제당하고 있는 예인들이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전통 예술 공연이 부흥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끝으로 서양 음악에 비해 전통예술이 지니는 매력과 강점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음악의 특징을 보면 시작과 끝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열려있다. 개인적인 비유를 들면 자연친화적이다. 특히 시나위 음악 같은 경우 일정 장단만 약속을 해놓고 나면 선율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도 묘한 어울림을 지닌다.
 이처럼 우리 전통 예술은 자유분방하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정밀한 구조를 세우지 않아 비정형성을 지니고, 그로 인해 배우는 물론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이 열린다. 이 점이야 말로 한국 전통 예술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이다.

※ 김승국 관장은 (사)전통공연예술연구소 소장 직에서 지난 2010년 9월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문화재위원,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교감, 한국전통연희단체총연합회 상임이사, 부천 무형문화엑스포 조직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정책 TF 위원 등을 역임한 전통공연예술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