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음악가들, 세상으로 나오게 하다’
‘소외된 음악가들, 세상으로 나오게 하다’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4.10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인 작곡가들 위해 ‘작곡마당’ 펼치며 아래로 사랑을 보내는 작곡가 신동일

“어느 대학이든 4학년 졸업반을 맞은 학생들의 취업을 고려해 주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음악을 전공 한 사람들은 오갈 곳 없이 되고 마는 것이 안타까웠죠.”

그는 지난 2001년 작곡마당을 만들게 된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어린이 공연 기획 전문회사 톰방과 작곡마당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작곡가 신동일. 그를 어떤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라고 단정짓기는 참 어렵다. 클래식, 영화음악, 국악관현악, 어린이 민요작곡에 이르기까지 장르불문 종횡 무진하는 대식가이기 때문이다.

▲ 작곡가 신동일씨
그러나 그의 음악이 중구난방 한 것은 아니다. 순수함이 묻어나는 음악, 꼭 그의 모습 그대로다.

그런 그가 더 돋보이는 것은 음악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돈이 없어서 음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러나 음악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열정 있는 사람들을 작곡마당에 모은다.

이를 통해 음악의 커뮤니티를 키우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왔다. 

“피아노 한마당의 공연을 준비할 때였죠. 새로운 창작 작품을 찾던 중에 작곡가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묘한 그림이 나올만한 인재들을 골랐어요.

공대를 졸업했지만 작곡에 몰입하는 회사원, 노동운동을 하다가 낙인 찍혀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고 가까스로 음악의 길로 들어선 그런 사람들이었죠. ‘이거 스토리 좀 되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아일보 기자가 인터뷰 좀 하자고 전화가 온 거예요.” 

지난 8년간 작곡마당의 곡 발표 활동들이 오래 쌓이다 보니 회원들은 단순 발표를 넘어서 좀 더 전문적인 것을 하고자하는 욕구들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민요만 주로 다루는 ‘민요 작곡마당’을 비롯해 어린이 음악을 위한 ‘아이가’, ‘성가작곡모임’, ‘부산 작곡마당’과 같이 세분화 됐다. 특히 지난 2007년 각 도에서 뱃노래를 뽑아 국립국악원 무대에 올랐던 ‘민요 작곡마당’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각 모임별로 활발한 음악활동이 벌어지고 있어 신동일의 이름을 걸고 해왔던 ‘신동일의 작곡마당’은 오는 10일 나루아트센터에서 20회로 마감한다. 판이 커져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달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공연을 했을 때 서울의 멤버들이 내려갔던 적이 있었지요. 새벽녘 즈음에 바닷가에 모여 그 간의 일들을 얘기하며 그랬다고들 하더군요. 작곡마당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안 된다고 말이죠. 이제는 제가 심혈을 기울여 돌보지 않아도 각 단체의 장도 있어 잘 굴러가고 있어요.”

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몇 안되는 전업 작곡가인 그는 오직 작곡을 위해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학교 다니면서 꿈이 교수 같은 직업을 안 가져도 음악가로서 당당히 먹고 사는 것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국어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부터 민족주의 성향을 가지게 됐죠. 저는 첫째 정체성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이민을 가 미국에서 석사 공부를 할 당시에도 한국을 향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의 음악이 미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93년 카네기 홀 소속의 소극장에서 우리나라 음악에 관심을 가진 김승남, 이건용, 김대성 등이 주축이 된 음악모임 ‘열림’의 멤버들과 함께 ‘브레스 오브 코리아’(Breath of Korea)라는 한국 민족주의 음악 음악회를 하면서부터였다.

96년에는 그의 첫 앨범 ‘푸른자전거’ 작업이 한국에서 들어갔다. 그것 때문에 미국에 돌아갈 수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완전히 한국에 눌러앉게 됐다.

국악을 좋아했지만 처음에는 열렬히 국악을 배우려는 생각 보다 서양악기로 어떻게 우리 음악을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에 주력해왔다.

그러다 국악소리꾼 김용우의 2집에 함께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국악기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가 작업한 ‘천안도 삼거리’라는 곡은 음반 첫 트랙으로 수록되기도 했고 심지어 FM가곡 프로에서도 소개됐다.

그런 연고로 그의 음악에는 국악적 소재가 사용된 것이 많다. 어린이를 위한 동요들만해도 그렇다. 그가 어린이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소위 ‘대박’을 맞고 부터다.

“2002년 초에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지요. 비가 잔뜩 오는 날에도 사람들이 인천에서부터 공연을 보러 왔어요.

그래서 아예 어린이 공연으로 테마를 바꾸고 연강홀로 옮겨서 공연을 했는데 매 공연마다 400석이 한꺼번에 매진됐어요.”

당시 어린이 공연으로는 연극이 주류였던 풍토에서 음악을 중심으로 꾸민 음악극을 무대에 올린 것은 획기적이었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열정적인 공연을 만든 것도 관객들의 호응을 입은 주요 이유였다. 

“관객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제가 되려 감동을 받아요. 주말이면 아빠들도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무언가 주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지곤 하지요.”

그의 유명 동요집 ‘귀뚜라미’는 아들 도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만든 것이 히트를 쳤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 도을이와 단이, 두 아이의 아빠인 작곡가 신동일은 행복하다. 최근 아이들을 돌보다 한쪽다리를 깁스까지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다.  

“작년에 집사람하고 연애했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서 ‘연애담’ 공연을 했었는데 오는 9일에 홍대 근처 클럽 오뙤르에서 집사람과 또 함께 공연을 합니다. 클럽에서의 첫 공연이라 어떨지 기대가 되는 군요. 4월 17일~19일은 국립극장 청소년 하늘 극장에서 제가 음악을 맡은 ‘안숙선과 함께 떠나는 민요 여행’ 이 공연될 예정입니다. 8월에 여름에는 톰방에서 음악극 ‘베토벤 개구리 왕자-프록스’를 수정판으로 준비중이고요.”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

<작곡가 신동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및 뉴욕대학교 석사
2004년 KBS국악대상 작곡 및 지휘부문 수상
문화관광부 2003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2 뉴욕타임즈 선정 올해의 최우수 그림책 CD-Book '노란우산‘
현 톰방 및 작곡마당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교대대학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