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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이집트, 그들이 되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수경의 이집트 여행기
2011년 02월 11일 (금) 15:05:02 이수경 / 이수경 도쿄 가쿠게이대학 교수 press@sctoday.co.kr

중동 아시아 최대 도시인 이집트의 카이로시 중심가인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찬반 세력들의 충돌로 인해 살상자가 발생했고, 흥분한 민심은 급기야 한국 기자들을 비롯한 외국 기자들에 대한 폭력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일본에서는 닛산이나 스즈키 등의 59개 기업이, 한국에서는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36개 기업이 진출하고 있지만 폭력사태가 심해지는 상황이기에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파견 직원 및 가족들을 철수시키고 있다.
중국 등 신흥 경제국의 아프리카 투자 경제가 활발한 만큼, 그러나 중동 아프리카 최대 도시인 카이로를 비롯한 이집트 각지의 격렬한 이번 사태는 세계 경제는 물론 종교적 문화적 충돌까지 내포하고 있는 탓에 상당히 예민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다.


필자가 이집트 상황에 이토록 민감히 느끼는 것은 지중해를 둘러싼 EU, 중동, 아프리카 지역과 연결된 요지 지역이고, 종교적으로도 비교적 이슬람 외의 종교권과의 교류도 가지며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있는 곳이라서 과격 이슬람 정권의 태두와 국제 정세에 관심이 있는 것도 있지만, 바로 한 달 전에 카이로와 룩소르, 중동의 시나이 반도의 모세산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카이로를 방문했을 당시도 상당히 삼엄한 분위기였다. 같은 케임브리지대학 방문교수로 와 있던 이 지원 교수가 마침 한국 근대사는 물론 서양사에 대한 저서도 갖고 있어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일강의 문명을 보려고 북부 아프리카인 이집트행을 결심했다. 우리는 카이로 시내와 떨어진 피라미드가 보이는 기자의 메르디안 호텔에 숙박을 하였는데 호텔 입구에 들어서려니 경찰들이 우리들 가방을 공항처럼 검사한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카이로 박물관으로 향했다. 결코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언급하는 가이드와 더불어 박물관에 들어가니 참으로 웅대한 인류사의 흔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각종 유물들, 미이라 등, 이집트 각지에서 운반해 온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열심히 카이로 대학 영문과 출신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박물관을 바쁘게 돌아 본 뒤 차를 타고 나오니 사람들이 모여서 데모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지방 선거 결과가 좋지 않다고 농성을 하는거라고 한다. 그러나 일부의 정치적 움직임 치고는 카이로 시내 곳곳에는 총을 든 검은색 제복의 경찰들이 너무도 많았던게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카이로에서의 움직임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게다가 여자들끼리다 보니 전차나 택시를 마음대로 쉽게 탈 수 없었다.
이집트 여성들의 여권 신장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카이로 시내의 분위기가 외국인, 특히 여성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고(유독 그 시기가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회 전체의 불경기와 빈부의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넓은 나일강을 건너 먼지 가득한 회색빛 돌산과 전쟁사 기념관을 지나서 산 쪽으로 가다보면 거대한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가 나온다. 그 곳에서 보는 카이로 시내는 과연 어마어마한 도시였다.
이국적인 모스크가 각지에 들어 선 카이로와 이슬람의 역사에 취해 있자니 우리를 모스크로 안내한 가이드가 마침 누비안족의 무슬림(이슬람 신자)이라서 그들의 예배에 대한 의식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모스크를 나온 뒤, 시내의 무슬림 대학 근처의 마켓에 갔는데 호객 행위가 심해서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거나 쇼핑을 할 수는 없었다.


파피러스(고대 이집트 종이)나 이집트 면의 옷, 각종 가죽 제품, 향료 등을 많이 팔고 있었지만 모든 가격은 협상이 우선이었고, 같은 제품의 가격도 점포에 따라서 차이가 나기에 시장통의 혼잡을 피해서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 곳이 지금은 무바라크 대통령 퇴임을 놓고 100만인 데모를 하고 있다고 하니 카이로 시내의 움직임이 피부로 와 닿는다.  


다음 날,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뒤로 하고 고대 신전과 왕가의 묘 등이 있는 룩소르(Luxor)를 향해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였다. 룩소르는 나일강을 따라서 이어지는 이집트 최대의 고대 도시이고, 리비아 산맥의 붉은 바위산 아래로 넓은 사막이 펼쳐진 곳이다.
과거 이집트 제국의 수도로서 수 세기를 번창해 온 테베의 고도인 룩소르는 나일강 동쪽으로 아멘 라(카르낙) 대 신전 등이 조성되어졌고, 서쪽으로 파라오의 장례식을 치루는 전당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토토메스 1세가 1700년의 전통을 깨고 역대 왕들이나 왕비의 무덤을 거대한 바위산에 숨겨진 계곡의 지하 깊숙한 곳에 비밀리에 매장하기 시작하면서 왕가의 묘, 왕비의 묘, 귀족의 묘 등이 조성되어졌다고 한다.


계곡으로 들어가서 먼저 왕비의 묘 등을 본 뒤, 차를 타고 중간의 험난한 계곡으로 가서 이집트를 통치했던 여왕 합세수트의 장제전(장례식/제사를 치르는 신전)을 구경하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제전이 바위 계곡의 품 속에 안겨 있고, 입구에는 돌계단과 거대한 파라오 석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런던에서 온 커플과 우리는 곧 이동을 하여 왕가의 묘 계곡으로 갔다.

   
▲관광객에게 낙타를 태우는 베수인족

입구에는 사진 촬영을 제지하는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벽에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 문자와 화려한 문양을 더듬으며 지하로 내려가니 왕의 석관 등이 나타난다. 물론 석관 속의 미이라나 중요 유물은 카이로의 국립 카이로 박물관이나 고고학 박물관에 옮겨진 상태라서 그 형체만 남아있었고, 전부를 다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화제가 되고 있는 투탕카멘이나 라무세스 왕 등의 무덤을 구경하는데 그쳤다.
스카라베(Scarab,풍뎅이)는 영원한 생명과 풍족, 다산을 의미하는 이집트의 신성한 동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장식구 등으로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검은 돌로 만든 스카라베를 여왕 티티의 무덤을 보고 오는데 현지인이 신문에 둘둘 말고서는 계속 사라고 귀찮게 해서 하나 구입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집트의 기념품을 구입하지 않았던 터라 하나 정도 기억의 물건을 갖고 싶었는데, 200이집션 파운드를 부르길래 나중에 50 이집션 파운드면 사겠다고 하면서 우리 차로 오려니 그렇게 팔겠다고 하여 50 이집션 파운드에 구입을 했다.


다음 날에는 동쪽의 아멘 신을 모시는 카르나크 대 신전과 룩소르 대 신전을 갔는데, 두 신전은 3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사람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나란히 놓인 길을 따라 가면 그 끝부분으로 이어지는 곳에 룩소르 신전이 있다. 신전 앞에는 웅장한 탑문과 25M의 오벨리스크와 라무세스2세를 나타내는 거대한 화강암의 대 좌상이 나타난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2개가 짝이었는데 하나는 1833년에 파리로 운반되어 지금은 콩코드 광장에 있으니, 대영 박물관을 예로 들지 않더래도 인류의 유물은 힘의 논리에 의해 분산되었음을 재삼 느낄 수 있었다.
어딜가나 복지 제도가 정비되어 있으면 수입이 적어도 생활할 수 있지만 교육도 복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회일수록 빈부 차이가 격심하고 민심이 흉흉해지니 이집트의 현실도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으로 그런 사회적 폐단을 해결하지 못 한데서 시위 사태가 격렬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들 말로는 10대 초반부터 사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호텔에서 만난 튀니지아 출신의 20대 여성 직원도 저임금의 노동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라고 한탄을 하던 것을 보면 반드시 개인적인 사정만이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의 쳇바퀴에 염세적인 반응의 발로가 시위 사태로 번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의 나일강은 잔잔하였고, 크고 작은 유람선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자그마한 공항에 도착하여 중동쪽의 시나이 반도(Sinai Penisula, 사이나이 반도 혹은 시내반도라고도 부름)행 비행기를 탔다. 꽤 날아왔건만 비행기 아래에는 온통 바위산과 사막밖에 보이지 않는 시나이 반도가 신비하게 보였다.
시나이 반도 전체가 약 62,000㎢의 면적을 가진 이 곳은 세계 각지의 정재계 인사들도 즐겨 찾는 휴양지에다 지리적 요충지가 되다 보니 때때로 과격파에 의한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나이 반도는 제3차 중동전쟁(1967)때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점령을 당하다가 제4차 중동전쟁(1973)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그 후 미국이 중재를 하여 캠프 데이빗 합의(1978)로 인해 1982년에 이집트로 반환되었으나 북부 아프리카의 카이로와 달리, 시나이는 지역상 중동 아시아에 속한다.


필자는 다합 지역보다도 남쪽 해안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여정을 풀었는데 탁 트인 넓은 로비의 바깥 쪽을 내려다 보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과 수 없이 많은 풀장이 계단식으로 설비되어 있고, 하얀 방갈로 건축물과 짚으로 만든 전통적인 파라솔이 늘어선 프라이베이트 비치가 에메랄드빛 홍해 바닷물과 어우러져 멋진 정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소파에 걸터 앉으니 호텔 직원들이 웰컴 드링크로 빨간 하이비스카스 주스를 가져다 주길래 남국 향기를 맡으며 짐을 옮겨주는 이동차가 올 때까지 별세계의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동행한 이 지원 교수의 도움으로 차를 빌려서 현지 가이드(비쇼이라는 이 청년은 이집션이지만 기독교 신자였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는 시나이 산의 성 카트리나(Monastery of St. Catherine, 혹은 캐더린) 수도원으로 떠났다.


이 수도원은 험난한 바위산의 사막이 만들어 온 [와디(건조천)]를 타고 산정의 눈 녹은 물이 흐르고, 수도원 내의 샘물이 솟는 은혜로운 장소라고 한다. 종교적으로 모세가 신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성지이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성 카트리나의 유해가 카트리나 산 정상에 나타난 것을 수도사들이 옮겨와서 수도원에 안치했다고 하며, 교회 안에는 카트리나의 손목 뼈가 놓여져 있다. 믿음이 있는 신자들은 그 뼈를 보면 감동에 벅차리라.

   
▲교회에 모스크가붙어있는 성 카트리나 수도원 

이 수도원이 세워진 경위로는 330년에 콘스탄티누스 제왕의 어머니 헬레나가 카트리나에 감명을 받고, 그녀는 불타는 떨기(덤불)나무(the burning bush)가 놓인 곳에  작은 챠펠(교회)을 세우라고 명했다 한다(Sharm El Sheikh and Sinai 영어판 47항 참고).
그 뒤, 6세기 경에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사막 원주민인 베두인(Bedouin)족의 습격을 막기 위해 요새와 같은 수도원 창건을 명했다고 하는데, 좁은 바위 계곡의 1570미터에 자리잡은 이 수도원의 특징은 기독교를 나타내는 교회(그리스 정교회 소속)와 이슬람의 모스크가 붙어 있고, 그 건물들을 둘러싼 높은 벽(성벽같다)은 유대교 방식이라고 한다.
즉, 사막 속에서 생겨나 원류를 같이 하는 유일신을 모시는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의 세 종교가 하나의 수도원을 이루고 있는 평화적인 시설물이라고 할까?


언젠가 정세가 안정이 되면 필자는 룩소르와 샤름 엘 셰이크, 무엇보다 베두인족의 마을에서 밤을 지새고 싶고, 시나이 반도를 다시 한번 천천히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에서 본 물질 중심주의적 환경은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고, 필자가 어릴 때 한국에서도 봐 왔던 풍경과 오버랩 된다. 우리도 사회의 개선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며 각고의 노력을 해 왔고 지금은 한류 문화의 선진 문화 발상지가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복지문제와 평화 인권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 문화에 대한 성찰과 발전을 모색한다.


이집트의 움직임도 우리가 걸어 온 전철을 답습하며 자신들의 삶을 보다 민주적이고 풍요롭게 살기 위한 사회로 거듭나려는 산통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 하다.
부디 평화적이고 세계적인 움직임과 다양성도 인정하며 자신들 고유의 문화를 계승하고, 교류적인 국제화 사회의 현실을 받아들여서 더 발전적이고 안정적인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빌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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