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호흡하는 소리꾼 국악계의 '비' 남상일
대중과 호흡하는 소리꾼 국악계의 '비' 남상일
  • 인터뷰 -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 엄태원 인턴기자
  • 승인 2011.02.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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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은 언제나 대중을 울고 웃길 수 있는 광대가 되어야 한다”

[서울문화투데이=이은영 편집국장, 엄태원 인턴기자] 판소리는 언제나 대중과 함께 호흡한다. 대중이 판소리를 잊었을지언정 판소리와 소리꾼들은 대중인 우리를 잊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살붙이처럼 함께 울고 웃고 있다. 이러한 시대 우리 곁에서 속 시원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소리꾼이 있다. 남상일이 그다. 그는 언제나 유쾌하다.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도 언제나 소리꾼이라는 뿌리를 지키고 있는 사내. 여러 가지 소리를 통해 때로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때로는 해학을 통해 웃음을 전하는 유쾌한 소리꾼. 오는 25일과 26일 이틀간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남상일 100분쇼'라는 타이틀로 우리에게 유쾌 통쾌 상쾌한 소리를 날려줄 그를 만났다. 2월 어느 날 남산 기슭에 있는 ‘한국의 집’에서 전통 두루마기를 두른 자타칭(?) 국악계의 '비' 남상일을 말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난 2008년 KBS 시사투나잇에서 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어요. 그 코너를 어떻게 맡게 되었나요?

“당시 제의를 받고 시사에 관심은 있었지만 이런걸(시사풍자) 방송해도 될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소리꾼이잖아요. 프로그램을 맡아 우리 소리와 소리꾼들 속내를 보여줌으로써 판소리를 대중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했어요. 판소리에는 해학과 풍자의 미학이 있잖아요. 이 점이 프로그램과 일맥상통한다고 판단했어요. 그때부터 매주 주제에 맞게 소리를 윤색해 부르기 시작했죠. 판소리 다섯 바탕 안에 온갖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소스는 무한하거든요.”

반향이 컸겠네요. 그때 대중들 사이에서도 신선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남상일 씨가 소리를 하게 된 것은 조상현 선생님 영향이 컸다고 하던데요.

 “제가 어렸을 때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하도 자꾸 울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이상이 없다고 했대요. 그래도 제가 계속 우니까 부모님께서 동네 점집으로 절 데려 가셨어요. 무당이 하는 얘기가 ‘이 아이는 소리를 할 녀석이다’라고 했답니다. 그런 어느날부턴가 국악프로를 TV에서 방영하는데 그걸 제가 곧잘 따라했었나 봐요.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 후로 국악을 계속 저에게 들려주셨어요. 그게 바로 조상현 선생님 소리였던 거죠. 아버님께서 조상현 명창 연락처를 수소문해 편지와 제 연습 테이프를 보냈대요. 그때 조상현 선생님이 답장을 하신 거죠. 판소리 관련자료도 보내주셨지요. 저는 그걸 듣고 또 연습하고...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턴 조소녀 선생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게 됐어요.”

-그렇다면 조상현 선생님께 소리를 직접 배우신 건 아닌가요?

“선생님께 직접 사사 받은 적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서울에 계셨고 어릴 적 저는 전주에 있었거든요. 거리 때문에 사실상 조상현 선생님께 소리를 배우기가 불가능했어요. 제가 전주에 계신 조소녀 선생님께 소리를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었죠. 판소리 계통은 아시다시피 ‘스승과 제자’ 이런 계보가 철저해요. 예를 들어 제가 동편제를 했다고 하면 서편제로 옮기기가 어렵다는 거죠. 소위 라인을 탄다고 하죠? 대학에 들어가서도 조상현 선생님께는 배우지 못하고 한예종 교수인 안숙선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죠.”

남원 춘향제 장원은 물론 여러 대회에서 상을 많이 타셨어요. 수상 후에 조상현 선생님께서 뭐라 하시던가요? 제자로 키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진 않으셨나요?

“저는 한때 KBS에서 국악특집 라디오 방송을 했어요. 그 방송에서 조상현 선생님과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었어요. 조 선생님께서 그때 말씀하시길 ‘니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나를 한번쯤은 찾아오지 그랬느냐’ 하시더라구요. 제가 선생님을 찾아뵙기 어려웠던 까닭은 계보가 달랐기 때문이었죠. 이쪽 계통에서도 조 선생님을 직접 찾아뵙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하지만 조 선생님은 저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기에 늘 마음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는 작은 체구에 한복이 무척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남상일은 지금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연준비에 한창이다. 국립창극단이 그를 앞세워 오는 25~2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남상일 100분 쇼’를 열기 때문이다. 이 무대는 다채롭고 화려한 춤과 노래, 음악이 어우러질 예정이다. 그에게 이 쇼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이번 공연 이름이 <100분 남상일 쇼>. 재미있는 타이틀인데 이렇게  붙인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사람들은 보통 판소리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가진 것 같아요. 사실 판소리를 직접 듣는 분들은 재미있다고들 많이 하시거든요. 제가 노력도 많이 하고요. 판소리는 예술성이 아주 중요하지만 재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0분 남상일 쇼>라고 이름 붙였지만 단순히 볼거리만 많은 건 아니에요. ‘삼도 굿소리’라고 제가 짠 것이 있어요. 그건 재담 하나 안 들어가고 소리, 음악, 춤을 한데 모은 대목이거든요. 처음엔 ‘봄날은 간다’와 같은 친숙한 노래로 눈길을 끈 뒤 본론으로 들어갈수록 국악의 뿌리에 좀 더 가까운 공연을 보여드릴 겁니다. 이번 공연 이름은 제가 지은 건 아니에요. 국립극장 공연기획 총괄을 맡은 이상흡 부장이 지었어요. ‘남상일 100분 쇼’. 제목은 맘에 듭니다. 이 부장은 예전에도 이와 같은 쇼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번 공연에서 그런 예전 향수를 되찾는 느낌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연 이름을 가끔 착각하는 분도 계시지요. 언젠가 한번은 ‘100분 토론 언제 하느냐?’는 전화도 받은 적이 있어요.(웃음)”

<남상일 100분 쇼>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먼저 국립국악관현악단 30여 명이 출연해 ‘봄날은 간다’로 시작해 각설이 노래인 ‘장타령’, 창작판소리 ‘노총각 거시기가’를 연주합니다. 희극적인 요소가 강한 심청가 뺑파전 대목에서는 국립창극단 단원인 연극배우 서정금 씨와 창극인 김학용 씨, 이렇게 셋이 심봉사, 뺑덕어멈, 황봉사로 출연해 단막극 형식으로 무대를 꾸밀 겁니다. 남도민요 육자배기, 흥타령, 새타령은 재즈와 함께 버무려 공연할 예정입니다. 특히 ‘삼도 굿소리’는 진도 씻김굿, 동해안 오귀굿, 서울굿 중 대감놀이를 저희 팀 수리의 반주에 얹어 소리를 합니다. 본래 우리 소리의 근원이 무속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제가 진짜 무당은 아니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꿰뚫어 시원시원하게 소리를 내지를 생각이에요.”

◆ <남상일 100분 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판소리 공연… 우리 국악의 다양한 가능성 선보여

현재 국악실내악단 ‘수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수리’는 어떤 악단입니까?

 “판소리 성음 중 최고의 성음을 ‘수리성’이라고 합니다. ‘수리’라고 이름 지은 것도 ‘좋은 소리를 내자는 의미’지요. ‘수리’는 본래 국악실내악단으로 출발했어요. 창작악, 젊은 코드 위주로 말이에요. 그렇게 음악의 무게를 겹겹이 쌓아가며 생각하니 창작악은 그다지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거에요. 악보 놓고 편곡된 작품만 연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지요. 그때 우리는 전통음악 중에서도 민속악을 주로 하자 생각했죠. 민속음악은 일반 서민들이 연주한 거잖아요. 판소리, 산조도 그렇고. 그런 것은 또 악보가 전해지지도 않아요. 그런 작품들은 모두 구전으로 내려왔어요. 이 작품을 위주로 공연을 하자는 생각에 지난 2010년에 민속악회 ‘수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현재는 단원 10명으로 꾸려지고 있지요.”

남상일은 윤색해 만든 창작 판소리보다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우리 소리를 발굴하고, 그 소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얼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악실내악단’였던 수리악단을 ‘민속악회 수리’로 이름을 바꾼 까닭도 여기에 그 뿌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창작 판소리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민속악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혹 창작 판소리가 우리 판소리의 깊은 맛이 안 난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음악적인 부분입니다. 판소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리라고 생각해요. 기본기도 잘 갖춰지지 않은 사람의 성음은 설득력이 없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문학성은 있을지 몰라도 음악성은 제로에요. 한번은 제가 kbs에서 공연의뢰를 받았어요. 작창과 노래를 불러 달라 그래서 의무감에 그냥 불렀죠.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전문소리꾼이 창작 판소리를 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때 만들어진 게 <노총각 거시기가>입니다. 창작 판소리 중 유일하게 국악 관현악으로 편곡이 되었지요.”

▲ 시원시원한 소리를 뽑아내는 남상일

지금 국립창극단에서 많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주연을 맡고 있는데 힘든점도 많을 듯합니다.

 “주연을 맡았는데 각자 성향이 있잖아요. 유영대 감독은 객관적인 음악극을 추구하면서 뮤지컬 같은 공연을 합니다. 저는 이와 다르게 전통 창극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수도 놓고 대금 독주를 한다든지, 아니면 소극장 규모의 창극 같은 것들이 많이 공연되면 좋겠어요. 너무 대작들만 하려고 덤벼드니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는 맛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창극 판소리는 굳이 대규모의 무대를 갖추지 않아도 소리나 연기를 위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배우도 드물거니와 외적효과만 강조하죠. 그렇게 공연하면 판소리의 문학성이나 음악성이 묻혀버려요. 해학적이고 소박하고...

그는 우리나라 판소리는 객석에 앉아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닌, 구경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함께 호흡하고 어울리는 것이 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음악의 뿌리에 가까운 무대, 그런 판을 벌이고 싶은 소리꾼이다. 우리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우리만의 느낌을 갖고 세계 여러 무대에서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해외공연을 몇 차례 열었다고 했습니다. 해외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국악의 해외 진출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악의 인지도가 생각보다 무척 낮더라구요. 11월에 벨기에와 네덜란드 공연을 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어요. 관계자 말에 따르면 한국이란 나라 자체가 인지도가 없대요. 그때 산조와 판소리를 했는데 사람들이 전율을 느꼈다고 하더라구요. 퓨전국악팀은 이에 비해 흥행에 실패했어요. 저는 우리 전통의 좋은 컨텐츠를 개발해서 우리나라 인지도를 더 높였으면 해요.”

 창극이 오페라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면?

 “어떤 나라든 고전이 갖고 있는 힘이 있잖아요. 창극은 요즘 ‘청’이나 ‘춘향 2010’ 등 이미지만 떠올려  스타일만 다르지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뭐가 달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차별화가 안 된다는 거죠. 사실 우리의 극에서는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춤이거든요. 창극은 동작에 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연출자도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오직 뮤지컬과 오페라만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 창극과 오페라의 차별화를 위해 국악 전문 연출자, 무대 기술자 필요… 기본기와 실력 갖춘 능숙한 소리꾼 나타나야

 기억나는 공연, 혹은 곤란하다거나 재밌는 에피소드는?

 “판소리 열두마당 중 ‘적벽가’라는 게 있어요. 관우가 포위된 조조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는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소리지요. 이 적벽가에서 저는 조조를 맡았어요. 적벽가는 싸우고 힘자랑하는 내용이거든요. 들어가자마자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때 컨디션이 아주 엉망이었어요. 무척 힘들게 공연을 했어요. 정말 창극단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지요. 연출하는 분이 얼마나 절 잡던지(웃음) 소리꾼 최악의 병인 감기도 찾아왔어요. 저 같은 사람은 목이 악기잖아요. 관객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서 더 힘든 점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니 이후 작품들은 오히려 쉽게 느껴지더라구요.”

‘국악계의 아이돌’, 자타칭 국악계의 '비'라는 수식어가 붙은 남상일. 그가 높은 인지도를 얻게 된 데는 실력은 물론이지만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하게 된 점이 컸다. 그에게 <아침마당>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아침마당에 출연하고 있는데 방송이 재미 있나요?

 “아침마당에서는 제가 고정패널로 출연하고 있어요. 나오는 분 사연에 따라 제가 재담도 하고 소리도 합니다. 80% 정도는 대본에 있는 말이 아닌 애드립으로 꾸려가고 있구요. 이 방송을 하게 된 계기도 재밌어요. 국악방송 PD님이 결혼을 해서 축가를 부르러 갔어요. 그때 박애리 누님하고 사랑가를 하는데 재가 재담을 좀 했거든요. 그때 바로 이금희 씨가 온 거에요. 그분께서 저를 출연시키자고 하셨대요. 그래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당은 아시다시피 20년 동안 방영되었습니다. 주로 주부들이 주 시청층이니 조금 부담되었던 건 사실이에요. 전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패널로 앉아있으면서 어르신들께 많은 배움도 얻고, 판소리 소스도 얻어 참 재밌어요. 그 방송을 할 때부터 지나가다 보면 아주머니들이 많이 알아봐요. 어쩜 소리가 시원하고 재밌냐고 칭찬하시는 분들도 꽤 있지요.

 앞으로 어떤 꿈을 가졌을까요?

 “좀 더 전통적이면서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런 작품들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수리악단에는 노래, 무용,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이 모두 있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그만 극장에서 우리 소재로 공연을 하고 싶어요. 창작판소리로 청소년을 위한 ‘청년 애로가’, 주부를 위한 ‘초보운전’ 판소리를 만들었어요. 무척 좋아하시더라구요. 그것도 물론 어느 판이든 다 그러면 안 될 것이지만 무게를 실을 때는 실어야겠죠. 그렇지만 먼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 때문에 공연하러 가면 관객에게 추임새를 꼭 가르쳐요. 판소리에 대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느리고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에게 추임새를 알려드리면 긴장이 풀려 잘 따라하더라구요. 본래 판소리 자체가 주고받고 끼어드는 형식으로 이어지잖아요. 앞으로도 우리 고유의 것들이 충분히 재밌고 가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