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놓친 영화]연재를 마치며...
[다시보는 놓친 영화]연재를 마치며...
  • 황현옥 / 영화평론가
  • 승인 2011.02.2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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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일은 소수의 사람들이 봤던 영화를 알려주는 기쁨

대상을 받은 작가는 작품이 맨 앞에 실리고 뒷부분에는 평론가들의 작가 평론과 작가의 수상 소감을 밝힐 수 있는 영광이 있다. 2000년도 이상 문학상은 이인화의 <시인의 별>이었다.
어김없이 뒷부분에 이인화씨의 글- 나의 문학적 자서전 : 문학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그 순간순간들-이 붙어 있었다. 필자는 이글을 읽고 무척 울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또래의 솔직한 인생 성장기를 읽고 있으니 마치 나의 내면을 보는 듯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또한 인간이 느끼는 감성이란 건 내재적인 삶의 불안과 영혼을 달래주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었다. 글이라는 문학적 예술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이인화씨가 당시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등장하는 기자들, 평론가들, 인터넷의 수많은 블로거들은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으로 글을 써댄다. 과연 이들의 얘기들 속에서 필자의 영화 소개는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영화평을 쓰며 고민했었다.

사람마다 영화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해도 반론의 여지가 있으며 몇개의 키워드로 영화적 감상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했지만 어려운 작업이었다. 요즈음 독자들은 거의 다 평론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행복했던 일은 소수의 사람들이 봤던 영화를 알려주는 기쁨, 어떤 영화로 독자들을 만날까 고민하며 어느 순간 영화적 테마를 발견해내는 즐거움에 있었다. 대략 지금까지 30여편의 영화평은 인터넷 서울문화투데이 홈페이지 검색창에서 필자의 이름을 치면 다시 볼 수 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2002>만 올라와 있지 않고 모두 그대로이다.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나쁜 교육,2004>도 소개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영화평 연재 내내 필자와 코드가 맞았을 것이 틀림없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무도 모른다,2004>와<걸어도 걸어도,2008>를 말하고 싶었는데 봐서 느껴야하는 작품이지 글로 옮길 수 없었다.
훌륭한 영화들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몇 작품들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좋다고 소개해왔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끝내 쓰지 못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두편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만든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평작이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전쟁속에 인간의 위치를 뒤돌아보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한,중,일본,홍콩 합작영화 <묵공>은 안성기와 유덕화의 호흡이 잘맞은 중국 사극이었다. 일본 모리 히데키의 만화를 저본으로 삼은 이 작품은 홍콩 감독(장즈량)에 한국(안성기·최시원)과 중국(판빙빙)·홍콩(유덕화)·대만(우치룽)의 배우들이 참가하고 한·일 두 나라의 제작자들이 손잡았다는 점에서 묵자 집단(춘추 전국시대에 급진적인 생각-사해동포주의를 부르짖었음)만큼이나 국제주의적 마인드를 지닌 값진 성과였다.
소개하려다만 아쉬운 영화리스트에 있다.


독일영화 <신과 함께 가라,2002>는 한밤중에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으나 쓸 기회가 없었던 반면, 이즈츠 카즈유키의 <박치기>를 쓸 수 있어서 벅찬 순간이었다.
작가 이인화만큼은 아니더라도 영화가 있었기에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이제 고백한다. 2000년도 작가의 이야기에서 느꼈던 나의 내면의 외로움은 10년이 지나니 치유된 듯 하다. 인생에서 영화같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필자는 지금 그렇다. 인생은 살아볼만함을 나이가 들면서 더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