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선,지구촌 곳곳에 한국 창작음표 걸치고 싶다.
조인선,지구촌 곳곳에 한국 창작음표 걸치고 싶다.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1.03.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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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조인선 (사)한국여성작곡가회장

여성! 이 낱말은 지난 30년 앞에는 여성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내세우며 여권신장이나 평등을 주장하는 그 어떤 외침 같은 것이었다.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그 꼬리표가 제법 남아있다. 여러 분야에서 남성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여성이 꽤 많지만 여전히‘여성’이란 꼬리표를 붙인 여성단체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여성단체 중에 음악분야 가운데 창작음악계에는 30년 전부터 지금까지‘한국여성작곡가회’라는 여성단체가 있다. 올해 30주년을 맞아 화려하고도 야심찬 국제음악제를 펼쳐 지구촌 곳곳에 한국 창작음표를 걸치는 꿈을 꾸고 있는‘한국여성작곡가회’, 그 속내를 꼼꼼하게 살펴보자.

(사)한국여성작곡가회는 1981년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던 여성작곡가 6명(이영자, 홍성희, 오숙자, 서경선, 허방자, 이찬해)이 창립했다. 한국여성작곡가회는 그때부터 꽤 불평등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여성작곡가들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자주 마련했다. 이들은 정보교환· 소그룹 연구활동 등을 통해 각자 창작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83년 7월에는 문교부 학술단체에 등록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한국음악협회 산하단체로 가입했다. 2006년에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승인받아‘사단법인 한국여성작곡가회’로 거듭났다.
사)한국여성작곡가회는 사단법인이 되면서 지방에 있는 회원들에게도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대전/대구지부를 설립한 것이 그 주춧돌이다. 이는 서울에 몰려있는 연주기회를 지방으로까지 드넓혀 지방 창작문화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한국여성작곡가회는 1991년 10주년 행사를 통해 여성작곡가로서 국내 창작계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확대를 목표를 삼아 초석을 다졌다. 2003년에는 세계여성음악제를 한국에서 개최함으로써 우리 창작음악을 세계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서울문화투데이>는 2011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사)한국여성작곡가회가 펼치는 국제현대음악제에 따른 깊이와 넓이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 조인선(중앙대 음대 교수) 회장을  만났다.

-(사)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을 맡은 지 몇 년인가?
“2008년 선출되었으니 3년이 됐다. 임기는 3년 단임제다. 임기 마지막 해에 큰 행사를 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만족스럽다.

-회장으로 처음 선출될 때 여성작곡가회를 어떻게 이끌고 싶었나?
“여성으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부드럽게 여성작곡가회를 이끌고 싶었다. 여성이 지닌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아우르고 감싸는 부분이 많은 점 아닐까. 누군가를 본능적으로 보살피려는 점 같은 거, 그런 거.”

-개막연주(3월 24일)를 보니까 국악연주로 시작을 하던데.
“국립 국악원 예악당에서 한양국악앙상블 연주로 개막연주를 갖는다. 30년을 회고하며 한국여성작곡가회를 이끈 역대회장들의 국악작품 연주와 함께 본 협회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국악기를 이용한 다양한 시도들도 소개된다. 순수 국악기만으로 (이영자, 서경선, 이찬해) 혹은 서양악기와 혼합한 작품(김혜자, 박재은)이 연주된다.

-마지막 연주회(3월 27일) 창작품 주제를 보니 흥부놀부전이더라. 어떻게 주제로 삼았나? 사실 독특하면서도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다. (웃음)
“현대음악을 친숙한 소재를 사용해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고 싶었다.‘새로움’은 다양한 것을 담는다 생각한다. 현대음악에 대한 보편적 개념들-이해하기 어렵다. 소리가 생경하다. 특수 계층만이 연주하거나 듣는다 등등... 이런 개념들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다른 요소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현대음악을 시도하고 싶다.
청중들을 아이들까지 확대해 재밌고 친숙한 현대음악을 모두‘즐기게’하고자 기획했다.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래동화를 통해 물질주의 시대에 교훈을 줄 수 있는 주제가 담겨있는 것을 선택했다.”

-폐막공연에 참가하는 연주단체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 전통문화와 휴머니즘이 담긴 전래동화‘흥부와 놀부’를 각본으로 13명의 작곡가가 참여하여 무대예술로 완성했다. 연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어린이 합창단인 월드비전 선명회합창단과 현대음악앙상블 Reconsil, E-Mex가 참가해 연주한다.

-작곡가 13명이 참가한다. 스타일이나 작곡과정, 혹은 공동작업과정은 어떻게 진행했나?
“기악부분과 합창부분을 담당한 13명의 작곡가들에게 내용과 가사만을 주었다. 그 외에는 어떤 스타일로 가야하는지 제시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맡겼다. 13가지 색깔이 어떻게 펼쳐질지 저도 궁금하다. 획일화되지 않다는 것만 확실할 뿐이다. 하하하.”

-아이들이 현대음악을 소화할 수 있을까?
“사실 현대음악을 아이들이 연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07년 세계 어린이 합창단에 위촉작품으로 30분짜리 곡을 쓴 적이 있다. 과연 어린이 합창단이 현대음악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열심히 하고 재밌어 하더라. 아이들은 정말 스폰지 같다. 바로 흡수하고, 새로운 음악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완성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물론 기악연주는 외국 연주단체가 하지만 아이들이 중심이니 많은 관객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폐막공연이야 말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연이 될 것 같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서 새로 시도하는 프로젝트는 없나?
“폐막공연은 음악회에 오기 어려운 아이들을 월드비전을 통해 초청한다. 현대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열어주는 계기를 마련하는 거라 할 수 있다. 다른 작곡가협회에서는 시도하지 않은 일이다.

-훌륭한 음악인 양성을 위한 기회를 확대시키기 위해 멘토멘티를 맺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좋은 생각이다. 합창단도 그런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5일과 26일 개최되는 음악회는 어떤 성격인가?
“이번이 30주년이기 때문에 30대 여성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위주로‘젊은 음악인의 밤’으로 꾸몄다. 30년이라는 것은 숫자 3을 중시하는데 안정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숫자라 생각한다. 여자로서 30대에는 주로 무엇을 하나 생각했다. 20대에 지녔던 정열적인 사랑보다는 남들을 포용하며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나이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들 세대의 목소리를 음악으로 기획하게 됐다.”

-현대음악을 왜 좋아하기가 쉽지 않을까?
“일단 이해가 쉽지 않다. 항상 듣는 음악이 아니니까. 이해가 되더라도 어디로 갈지 길을 모르기 십상이다. 원래 새로운 길은 설레기도 하고 길을 잃을까 두렵기도 하지 않나.”

 -현대음악은 어떤 것인지 설명해 달라  
“현대음악은 현대에 작곡되고 움직이는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과 길이 다르다. 기존에 클래식은 조성이라는 바탕 아래서 화음이라는 기대가 정해져 있다. 현대음악은 백지상태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정표가 때론 없지만 마음을 열고 따라가면 숨어있는 보고를 볼 수 있기도 하는 게 현대음악이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는 길이다.”

-요사이 방송에서는 현대음악을 들을수가 없다.
“방송은 많은 사람이 좋아해야 하는데, 그것은 독자층이 많지 않아 그렇다. 전에는 현대음악 프로그램이 많이 있었다. 점점 없어지고 있는 이유는 대중매체가 대중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송 특성 때문이다. 그들은 청중이 듣기 어렵고 난해한 곡은 방송하기 어렵다고 한다. 특별기획 아니면 접하기 힘든 상황이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어린아이들은 도리어 쉽게 열려 있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편식을 갖지 않도록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하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일문화원과 오스트리아문화원에서 후원을 받던데.
“E-Mex는 독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현대음악 앙상블이다. 독일문화원에서 연주자들에게 항공료를 지원한다.”

-이번 심포지엄 주제가‘문화생산과 소비의 사회적 지평’이라 되어 있다. 어떤 내용인가?
“소비적 음악이라는 문화경향에 대해 현대음악은 과연 소비성과 관계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진행된다. 음악 자체에 대한 편중성 논의를 탈피해서, 문화전반에 대해서 작곡가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음악에 관계된 사회적 부분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작곡가들에게 제시하리라 본다.”

-워크숍 진행하던 내용이 궁금하다.
“하버드 대학에 재직 중인 Chaya Czernowin 교수가‘경험하지 않는 소리에 대해서 우리는 들을 수 있나’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이번 30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갖는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이번 30주년 음악회는 모든 연령층이 같이 와서 같이 공감하며 들을 수 있는 음악제가 되었으면 한다. 젊은이들에게 미래지향성을 제시하고, 일반인들에게는 현대음악도 즐길 수 있고 어렵지 않다는 발견을 하도록 해주고 싶다.”
1953년에 태어난 조인선 교수는 아직도 단발머리 소녀 같다. 여성회원 150명을 이끌 것 같지 않은 수줍어 보이는 소녀처럼.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작곡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 작고 가냘프게 보이는 체구 안에서 뿜어 나오는 거대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어머니 같은 관대함을 품은 따뜻하고 강한 기운 말이다. 
“우리는 불이 꺼져 있는 서커스를 해요. 조명이 나타날 때 나는 없어져야 해. 조명이 무대를 밝히면 서커스가 시작되고, 즐거운 서커스가 끝나길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지요. 음악제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쓸쓸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청중들과 함께 하는 새로움을 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