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그리는 작가, 도시적 향수에 쌓인 ‘이흠’을 만나다
쇼윈도 그리는 작가, 도시적 향수에 쌓인 ‘이흠’을 만나다
  • 최재영 기자
  • 승인 2011.03.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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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예술로 바꾸는 일에 폭 빠져…예술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차고 매서운 바람이 그치면서 거리에 나온 사람들 옷도 조금씩 얇아진다. 따뜻하고 환한 햇살이 그립다. 생명이 일어나는 정겨운 기적의 시간, 봄이 왔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선다. 쇼윈도에 진열된 예쁜 상품을 구경하면서 마음이 설렌다. 그 설레는 마음을 담아 상품을 예술로 바꾸는 일을 하는 젊은 작가가 있다. 그가 스치는 손끝에서는 상품이 예술작품이 된다. 도시의 향수는 추억이 된다. 작품색깔만큼이나 독특한 이름, 이흠을 만났다.

-일반 작가들에 비하면 좀 젊은 편이다. 어떻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나.
미대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하다가 문득 그림으로 진로를 택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예고에서 미리부터 준비한 아이들보다는 늦은 시작이었지만 평균적으로는 비슷했다. 거의 학교를 안 나가다시피 하면서 학원에서 그림을 그렸다.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대학 3학년 때였다. 미술학원 강사도 하고 벽화도 그리면서 미술관련 직종을 찾아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음이 답답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미대까지 들어왔는데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접어야 한다는 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양화과는 작가를 키우기 위한 과다. 취업을 목적으로 한 수업은 하지 않는다. 작가로서 작품을 하는 교육만 받았다. 이제 전공을 버리고 취업을 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가 되는 학생은 드물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하고 싶었다.

-미술을 하면 배고프다 한다. 생활고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없었는지.
3년인가 4년 전에 미술계가 호황이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하기 전이었다. 그때 신인작가가 많이 나왔다. 시기가 잘 맞아서 그런지 작가 수가 부쩍 늘었다. 그러다 몇 년 전 경제불황이 오지 않았나. 경제가 위축되면 가장 먼저 문화분야가 축소된다.
잘 팔리던 그림이 하나도 안 팔리기 시작했다.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탓이라는 생각보다 그림에 대한 회의를 느낀 작가들이 많았다. 작품활동을 그만두는 작가도 나왔다. 내가 전시를 하기 시작했을 때가 바로 그때다. 당연히 불안했고 솔직히 지금도 불안하다. 그림이 안 팔리는 건 둘째 치고 아무도 내 그림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걱정될 때가 있다. 갤러리 관장님들을 만나면 그래도 불황일 때 시작한 작가들이 오래 간다며 오히려 좋은 케이스라고 말한다.

-첫 전시는?
대학 4학년 때 했다. 28회 화랑미술제가 부산에서 열렸다. 아는 선배 도움으로 작품 하나를 걸게 됐다. 주목받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내 작품이 걸린다는 생각에 수업도 제치고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땐 최소한의 학벌이 없으면 작가활동을 할 수 없는 풍토가 남아 있었던 때다. 운이 좋았다 생각한다.
 
-지금 여러 전시를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작품을 알리게 된 계기가 있나.
첫 전시 뒤 작은 규모지만 전시를 했다. 그 와중에 국대호 선생님과 함께 전시를 한 적이 있었다. 국 선생님은 4학년 마지막 학기에 강의했다. 출석을 체크하다 이름이 특이했던지 나중에 따로 부르셨다.
그때만 해도 학생이 전시를 한다는 건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국 선생님이 많이 도와줬다. 학기 말에는 부산에 있던 코리아 아트 갤러리에서 기획전을 할 때 소개를 시키기도 했다. 그 덕분에 다른 화랑에 날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드문드문 전시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림이 재미있고 관심이 많아서 잘 팔릴 것 같다
좋아하는 그림인 건 확실한 것 같다. 판매가 이루어지는 연령대 분들은 대부분 사회지도층 분들이라 취향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내 작품은 사실화다. 그 분들은 추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생활고와 싸우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많다. 그에 비해 순탄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자기 나름대로의 싸움 같은 건 없었나.
순탄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그림 그린다는 직업 자체가 그냥 덤비면 결코 순탄하지 않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림을 걸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하지 않는다. 작가라면 누구나 좋은 작품을 그리고 싶지만 정작 뭐가 좋은 작품인지 잘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 되겠지 하고 덤비면 나중에 좋아했던 그림이 싫어지게 되면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그림을 많이 보러 다녔다. 미술시장에서 찾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분석하기도 했다. 내 적성과 맞는 작품을 찾으려고 했다. 교수들도 자주 찾아갔다. 그림 그리면 배고프다는 생각에 빠지고 싶지 않았고 꾸준히 작가활동을 하고 싶었다.

-쇼윈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솔직히 말하면 쇼윈도로 작품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남자가 케이크에 관심 있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건 그냥 케이크가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케이크다. 상품은 예술이 아니다. 대다수가 예쁘게 진열대에 놓여서 소비를 촉진시키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상품이 그림으로 그려지면 작품이 된다. 그런 현상을 작가와 관객이 함께 공감하고 싶었다. 단순히 상품을 넘어서 예술품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목적이다. 한편으로는 표면적으로 예쁘면 예술로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에 반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히려 흉하고 지저분한 건 예술로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예쁘고 아름다운 건 공예품이나 상품으로만 생각한다. 미술은 아름다울 미(美)가 들어가는 예술 아닌가.
현대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되는 인스턴트적인 요소를 찾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작업중인 작가의 작품들

-상품이 판매를 위해 예쁘게 만들어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작가 의도에 의해 예술로 전환되는 것을 노리지만 그 반대로 상품성에 의해 예술성이 함몰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대표적인 경우가 팝아트다. 앤디 워홀 같은 작가가 그다. 무엇에 중점을 맞추는가 그게 정말 중요하다. 마를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를 예술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만약 그들의 대중성이나 스타성에 묻히면 기획했던 의도가 묻힐 수밖에 없다.
상품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내 작품에도 분명 그런 위험부담이 있다. 더구나 사진을 보고 그린다. 사진을 그냥 걸지 왜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이 반드시 나온다. 사진을 봐야 대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담을 수 있기 때문인데,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단순하게 그리는 걸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이 작품을 보고 양날의 칼과 같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 잘못 보면 팔기 위한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작품으로 모든 의도를 확정짓는 그런 생각은 없다.
예술의 영역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가 실험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모두 예술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바라보는 사람은 물론 다양한 요소에 의해 변화한다. 마치 대화하듯이. 그 모든 부분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사실적이다. 팝아트와 조금 다른 것 같다. 구분이 가능한지.
현대작품을 보면 어떤 사조의 그림에 맞추라는 말이 많다. 내 작품은 보통 포토 리얼리즘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상품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는 팝아트다. 한 작품이 어떤 사조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면 오히려 그건 예술이 아니다. 전에 그렸던 걸 답습한다면 그건 장인이다. 어떤 구분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현대 회화라는 말로 통칭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케이크에서 부엉이, 크리스탈 등 다양한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 앞으로도 계속 소재를 옮겨갈 것인가.
소재를 옮긴다기보다 확장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한국에 소재주의가 만연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사실 나한테 컨셉이 있다면 쇼윈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속에 들어가는 소재의 변화는 넓은 의미에서 변화랄 것이 없다. 만약 변화가 있다면 그건 내가 나이 들면서 내 그림이 변하게 된다는 의미가 가장 적확할 것이다.
사실 나 같은 경우는 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젊은 작가들이 명화나 유명 고전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다보니 나이가 20~30대인데도 불구하고 70대 같은 작품이 나온다. 나쁜 현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내 변화에 맞춰 그림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싶다.

-작업실을 보니 작업 중인 작품이 여러 개다. 작업 중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는 셈인데 부담감은 없나
솔직히 굉장히 힘들다. 그리는 과정이 아직 많이 버겁다. 게다가 기껏 그렸는데 아무도 안 찾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적지 않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나 혼자만 만족하는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닌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 작품세계와 다른 사람들의 이해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이다. 주변에 3년째 준비하는 동기도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상황에서 전시를 위해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런 사람도 끝까지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겠나.

-아직 젊기 때문에 작가로서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솔직한 작업을 하고 싶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느끼는 스스로와 타협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내용부터 작품을 보는 시각까지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만족한 적도 있다. 힘들 때는 작업이 잘되지 않는다. 일정 때문에 억지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 부분은 후회가 된다. 특히 한 소재를 접고 다른 소재로 옮길 때 용기를 가진 작가가 되고 싶다.
특정 소재로 그림을 오래 그리면 팬 층도 넓어지고 찾는 갤러리도 늘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소재를 바꾸면 팬도 갤러리도 잃을까 주춤거리는 경우가 많다.
갤러리나 사람들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존경하는 작가가 있다면.
분야는 다르지만 데미안 허스트라는 영국 설치작가다. 자기 작품으로 자본이라는 거대 체제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가 최후에는 자본 위에 자기 작품을 올려놓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유명한 일례 중에 천만 원짜리 상어를 박제해 980억에 팔았다.
작품성이나 예술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슈를 만들어 작품을 판 것이다. 작품성이나 예술성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유명하고 화제가 된다는 점에서 작품 가격에 거품이 생기는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실제로 옥션을 직접 만들어 자기 작품을 적정가에 팔았다.
오죽하면 데미안 허스트 때문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미술학도가 많을 정도다. 예술적으로 깊이를 가진 작가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재미있는 작가가 좋다.
닮고 싶은 작가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라다. 그는 젊었을 때 세심한 사실화를 그렸다. 중엽에는 사실과 추상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을 창작하다 말엽에는 추상으로 넘어갔다. 평생 구상과 추상을 다한 셈이다.
그야말로 작품과 함께 늙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