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지진속보2]이수경 교수가 경험한 악몽의 일본 도쿄지진현장에서 느낀 인간애
[도쿄지진속보2]이수경 교수가 경험한 악몽의 일본 도쿄지진현장에서 느낀 인간애
  • 이수경 교수(도쿄가쿠게이대학)
  • 승인 2011.03.1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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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상황에서도 국적 차별없이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며 한국사회에도 도움 요청

 


이 글은 현재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도쿄가쿠게이대학 이수경 교수가 지진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현장기를 감동적인 사연과 함께 보내온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애를 이 교수는 국적을 떠나 국가를 떠나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에 크나큰  감명을 받고, 우리 국민에게도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주-

[1편에 이어]결국 매서워오는 밤 바람을 피하기 위해 경찰에게 물어서 근처의 피난처로 가기로 했다. [신바시(新橋) 평생 교육 센터]로 안내를 하기에 들어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일본을 움직이는 정부 관청인 가스미가세키(霞ヶ?)의 직원들이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이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구청 직원들이 나와서 모포와 건빵과 5년 보존 가능한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2층과 3층은 난방이 되었지만 의자에 앉아서 지새야 했고, 4층은 체육관이라서 누울 수 있지만 난방이 안 들어왔다. 처음엔 새벽4시30분까지 2층의 의자에 앉아서 밤을 지샜다.

▲필자가 배급받은 물과 건빵과 모포
옆의 사무실에서는 TV와 컴퓨터 연락망으로 직원들이 부산하게 도쿄 시내를 달리는 지하철이나 전차 등의 움직임을 알리느라 안내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구호 물자 배급과 피난민의 편리 도모를 위해 구청 직원들은 질서 정연히 움직이며 철야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성실한 태도가 불안 속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도 가족이 있으니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을텐데 사명감으로 웃으며 일하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처음엔 40여명 있는 곳의 의자에 앉아서 버텼지만 허리와 다리가 불편해서 4층으로 옮겼다. 넓은 체육관에는 200여명 남짓의 사람들이 아래에 두꺼운 보온 시트를 깔고 위에 모포를 덮고 자거나 일어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가방을 배개 삼아서 누워 잤었고, 여성들 몇 명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필자는 여성들 옆으로 가서 다치하라 국장이 가져다 준 모포를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20 분 정도 있자니 긴급 지진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4층 건물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일어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급히 그곳을 빠져 나오니 건물 앞에는 모포를 뒤집어 쓴 채로 밖으로 뛰쳐 나온 사람들로 가득 했다.
▲피난처에서 수시로 내용을 알리는 도쿄 교통 안내판
새벽이 오고, 마침 몇 몇 교통 시설은 운행을 한다기에 우리는 첫 지하철을 타고 일단 신쥬쿠를 가자고 했다. 신쥬쿠는 필자의 집과 1시간 이내의 거리기에 신쥬쿠까지 가는 첫 지하철을 탔지만 모두 새벽을 새우고 귀가 하는 터라 지하철 안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운행 중인 전차를 몇 번 갈아타고 필자의 집까지 가는 차를 탈 때 까지 다치하라 국장은 동행을 해 줬다. 그 부인이 2차 재난(사람으로 인한 재난)은 여성 혼자일 경우에 많이 생기니 절대 혼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세심한 배려를 해 줬던 것이다.

불안이 극도에 달 해 있을 때라 그 분들의 인정 어린 배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39층의 계단도, 그 뒤의 여진 피난도 만약 혼자였다면 고립 상태에서 이동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유학생들이나 언어가 안 되는 외국인들이 이런 경우엔 상당히 약자가 된다고 느껴졌다. 다행히도 그런 배타적인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정보를 통한 안심감과 피난 대처 방법이 적절히 행해졌던 것 같다.

필자는 다치하라 국장 부부의 배려를 받으며 전차를 타고 귀가 길에 올랐지만, 몇 번이나 도중에 긴급 지진 정보와 여진으로 인해 전차가 멈췄고, 전차 시간도 지연되는 바람에 고생을 좀 하며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전신의 고열과 다리 근육통으로 앓는 중이지만 처참한 동북 지방의 피해를 보며 가슴이 아파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 문제의 정확한 정보를 줬으면 하는 바램으로 가득하다. 대학원때 원자력과 중성자에 대한 기본 수업(지구환경론)을 받았기에 방사능 유출의 폐해가 또 다른 재해를 낳는다는 것은 비교적 알고 있는 편이다. 신속한 정보가 대처를 가능하게 하므로 이런 비상 사태일 경우엔 적절한 대처 방법의 제안과 정확한 정보가 중요한 것이다.
▲피난처 4층 상황

그리고, 어서 피해상태의 파악과 오갈 곳 없는 피해자를 위한 가설 주택 확보, 식량, 난방, 물, 위생문제가 해결되어 사회 복구가 서둘러 이뤄졌으면 좋겠다. 자위대 10만명을 투입했다지만 피해 상태는 심각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그렇기에 현지 피해자의 물심 양면의 배려도 향후 큰 과제이다. 기업과 개개인의 지원, 모금도 국경, 민족을 초월해서 필요한 시기다. 상대가 [자연]인만큼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에서 지원팀 5명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다방면에서 한일 협력관계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끝으로, 뉴스를 보고선 필자를 걱정하여 한국으로 나오라며 수없이 전화로 걱정해 준 내 가족과 친구들, 제자들, 한국과 영국, 일본의 먼 곳에서 같이 눈물을 흘려주며 따스한 격려를 해 준 벗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분명 사회적인 역할이 있어서 살아 남은거라 생각하며, 필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행동하는 교육자 연구자가 되어야겠다고 각오를 해 본다.

 2011년3월13일 아침 이 수경